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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없고 노동만 있던 나날, 나는 회사를 떠났다!

책/학술

    '나'는 없고 노동만 있던 나날, 나는 회사를 떠났다!

    [새 책] <사표의 이유> …나는 내 노동과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사진 제공= 서해문집

     

    한때 사람들의 마음을 직관적으로 파고들었던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이 보여주듯이, 우리의 노동과 삶은 점점 서로 다른 영역으로 분리되고 있다.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를 맞아 일상 전반을 노동이 지배하게 된 삶 속에서, 퇴근 후와 주말조차 노동을 위한 '재생산' 시간의 연장일 뿐이다. 이렇게 삶이 통째로 노동 속으로 수렴되는 현실 속에서, 모순적이게도 삶과 노동의 이분법은 더욱 선명해진다. 즉 삶과 노동이 일치할 수 없는, 삶이 지지받지 못하는 노동이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히 드러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과 삶 사이의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는 어쩔 수 없는 걸까? 양자가 일치하는 그런 노동은 불가능한 걸까? 지금과 같은 '불행과 빈곤의 평등화'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만 이 무력함과 고립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걸까? 노동 세계에서의 자본 중심성은 가속화되고, 그 속에서 개인들의 '개별성'(개인의 주체성, 결정, 판단, 생각, 의견, 개인 그 자체의 의미와 중요성)은 몰락해간다. 반면 모든 위험과 위협에 대처하는 생존과 힐링은 각자의 몫으로 전가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것과 대면해야 할까? '신자유주의적 개인'이라는 주체를 어떻게 해체하고, 어떤 다른 주체를 세울 것인가?

    이 책은 11명의 인터뷰이들을 심층 면접하여 이 시대 노동의 현실과 민낯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30~40대 직장인으로서 10년 안팎의 직장생활을 하다가 자발적으로 퇴사한 뒤 또 다른 삶의 전환을 이룬, 혹은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다. 물론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퇴사'와' '방향 전환'이라는 삶의 중요한 결단들은, 유별난 경험을 한 특이한 개인들의 것이 아닌, 지금 사회의 수많은 이들이 고민하고 맞닥뜨리고 있는 일상이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등장인물들의 직장생활, 퇴사하기까지, 그리고 퇴사 후 이야기다.

    제1장 "직장인으로 살아남기"는 등장인물들의 직장생활 이야기다. 금융계·대기업․IT기업 등 ‘고소득 엘리트 직장인’과, 문화 관련 직종의 ‘열정노동자’ 두 가지 유형의 노동 경험으로 살핀다. 이들은 직장 내에서 자신들이 꿈꿔왔던 재미와 흥미를 일치시킬 수 있기를, 혹은 자신의 재능을 살려 사회적인 인정과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몇 년간의 직장생활로부터 깨달은 사실은, 자신이 꿈꿔오던 직장생활이 점점 불가능한 방향으로 현실이 재편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결국 직장은 자신이 거쳐 가는 또 하나의 '정거장'으로 기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열정은 너무 쉽게 돈으로 환산되거나 착취되고, 모험과 개척자 정신이 있던 곳들도 이제는 '돈 버는 기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 안에서 자신도 언제 튕겨나가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과 싸우며, 때로는 기업의 대리인 역할을 맡아야 했다. '완생'을 꿈꾸지만 도저히 그 누구도 '완생'이 될 수 없는, 영원한 '미생未生 상태'만이 유지된다.

    제2장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예감"에서는 등장인물들이 퇴사하기까지의 이야기다. 직장 내에서 사람들 간의 연대의 고리는 점점 약해지고, 자신의 존엄과 타인에 대한 예의를 지킬 수 없는 ‘무례한 노동 공간’ 속에서 개인은 무력해진다. 실제의 얼굴을 가면으로 가린 채 소외와 모멸을 참아내거나, 불안을 자기계발과 힐링으로 '관리'하는 일만 남아 있다. 매일을 '견디기'만을 바라는 생활을 더 이상 지속할 순 없다. 그렇게 살다보니 '이렇게 버는 돈이 내 삶에 꼭 필요한가?' 싶기도 하고, '꼭 이 길이 아니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도 이르렀다. 열정과 창의력을 옹호하던 기업들은 어느새 싸늘하게 낯빛을 바꾸었고, 그 와중에 터진 2008년 금융위기와 3․11 후쿠시마 사태 등의 사건은 현재의 체제에 대한 강한 회의로 다가왔다.

    제3장 "그리고 삶은 '다르게' 계속된다"는 등장인물들의 퇴사 후 이야기다. 노동사회를 박차고 나와 '다른'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길목에서, 이들은 어떠한 방향 전환을 이뤄내고 있을까? 그들이 만난 것은 '더 좋은 삶'이었을까? 혹시 "밖은 더한 지옥"이라는 차가운 현실 앞에서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귀촌/귀농, 비영리단체, 협동조합, 대안학교, 대학원 진학, 제주 이민 등 그들이 새롭게 시작하는 노동/삶은 서로 일치되고 있을까? 온전한 독립자로, 함께 섞여 일하며 노는 제3의 길은 가능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노동사회의 안과 밖 그 경계에서, 이들의 새로운 실험을 조심스레 추적해 나간다. 물론 그것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리고 저자는, 구조 속의 개인은 무력하지만 다른 사람과 연대한다면 더 이상 무력하지만은 않다며, 지금의 이 '출구 없는 시대'를 대면할 용기를 제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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