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현정화(왼쪽)의 모습. (사진=대한체육회 제공)
[90년대 문화가 다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토토가'는 길거리에 다시 90년대 음악이 흐르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90년대는 스포츠의 중흥기였습니다. 하이틴 잡지에 가수, 배우, 개그맨 등과 함께 스포츠 스타의 인기 순위가 실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렇다면 90년대 스포츠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90년대 문화가 시작된 1990년 오늘로 돌아가보려 합니다.]
탁구라는 종목하면 누가 떠오르시나요.
1988년 서울 올림픽 남자 단식 금메달을 딴 유남규 또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단식 금메달을 목에 건 유승민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여자 복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현정화를 그리는 사람들도 유남규, 유승민 못지 않겠죠.
그만큼 현정화는 한국 여자 탁구를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현역에서 은퇴한 뒤에도 지도자로서 후배 양성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25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면 현정화가 한창 전성기를 누릴 시기였는데요. 1988년 서울 올림픽과 남북 단일팀으로 출전해 영화 '코리아'의 소재가 된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사이였으니 그야말로 절정의 기량을 뽐낼 때 였습니다. 국내에서는 복식은 물론 단식에서도 최강자로 군림하던 전성기였습니다.
동호회 선수들에게 원 포인트 레슨을 해주는 현정화 감독의 최근 모습. (사진=렛츠런파크 제공)
그리고 25년 전 오늘. 그러니까 1990년 12월23일에는 종합탁구선수권대회 사상 최초로 여자 4관왕에 오르며 탁구 여제로 발돋움한 날입니다.
제44회 종합탁구선수권대회가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는데요.
12월23일에는 여자 단식과 여자 복식 경기가 열렸습니다. 앞서 여자 단체전과 혼합 복식 경기가 치러졌죠. 단체전에서는 현정화의 한국화장품이 대한항공을 완파했습니다. 현정화는 1단식에서 김연숙을 가볍게 꺾었고, 홍차옥과 호흡을 맞춘 복식에서도 박경애-신은정 조를 제압했습니다. 혼합복식에서는 남자부 최강자였던 유남규와 손발을 맞춰 김택수-이정님 조를 꺾었습니다. 특히 혼합복식은 대회 2연패이자 통산 4회 우승이었습니다.
그리고 대회 마지막 날인 12월23일 여자 단식과 여자 복식 경기가 펼쳐졌습니다.
결과는 금메달, 또 금메달이었습니다. 여자 단식에서는 복식 파트너이자 단식 라이벌인 홍차옥을 힘겹게 누르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여자 복식에서는 홍차옥과 함께 고교생 복식조였던 박해정-손지연 조에 한 수 가르침을 줬습니다.
4관왕. 종합탁구선수권대회가 출범한 지 44년 만에 나온 첫 여자 4관왕이었습니다. 그동안 이에리사, 이수자, 양영자, 그리고 현정화까지 총 7번의 3관왕이 나왔지만, 4관왕은 현정화가 처음이었습니다. 남자부에서는 1977년 제31회 대회 윤길중과 1989년 제43회 대회 유남규 등 2명의 4관왕이 배출됐습니다.
4관왕의 가장 큰 고비는 역시 여자 단식이었습니다. 현정화는 1989년 대회에서도 4관왕을 노렸지만, 단식에서 홍차옥에세 패하면서 3관왕에 그쳤는데요. 189년 10월 실업연맹전부터 홍차옥과 세 차례 결승에서 맞붙어 모두 졌습니다. 단 한 세트만 따내는 등 완패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현정화의 경험이 돋보였습니다.
현정화의 전진속공을 홍차옥이 역습으로 받아치는 방식으로 경기가 펼쳐졌는데요. 1, 2세트를 내주면서 패배 직전까지 몰렸지만, 풍부한 경험에서 나오는 변칙 플레이로 3~5세트를 내리 따내면서 승부를 뒤집었습니다. 2년 만의 단식 정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