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구글코리아 제공)
"알파고의 수준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바둑천재 이세돌 9단과 바둑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의 첫 대국을 본, 바둑 애호가인 학자들은 알파고의 뛰어난 판단력과 통찰력에 모두 놀라움을 나타냈다. 그러면서도 2국 이후 대결 흐름에 대한 예측에서는 의견이 갈렸다.
이세돌 9단은 9일 서울 광화문에 있는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알파고와의 첫 대결에서 불계패(승부가 뚜렷하게 나타나 집 수를 셀 필요 없이 진 것)로 무릎 꿇었다.
이날 대국을 지켜 본 전기전자공학과 맹성렬 교수는 "알파고의 실력은 세미프로 수준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잘 둔다"며 "알파고가 첫 대국을 통해 이세돌 9단의 바둑 패턴을 파악한 만큼 2국부터는 더 세게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전기전자·재료과학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은 SCI(과학기술인용색인) 급 논문 50여 편을 발표한 그는 "알파고가 앞서 판후이랑 둘 때도 첫 판은 얼마 차이가 나지 않았는데, 이후에는 판후이의 심리적 부담이 커지면서 계속 불계승을 거뒀다"며 "첫 판에서 진 이세돌 9단의 심리적 부담 역시 커진 만큼 두 번째 판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고 내다봤다.
이어 "시간이 제한된 상황에서 수읽기를 할 때 컴퓨터가 유리한 만큼, 이세돌 9단 입장에서는 대국 초반에 판을 짜면서 압도적으로 판세를 잡지 못하면 뒤로 갈수록 불리해진다"며 "중반 이후 판이 어느 정도 짜여져 수읽기에 밀리지 않으려면 이 9단은 초반에 돌을 얼마 두지 않았을 때 상상력을 발휘해 창조적인 판짜기를 가져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맹 교수는 알파고를 통해 본 인공지능의 수준에 대해 "이 정도라면 우리가 SF영화에서 보던 것들이 현실화될 수 있지 않을까"라며 "판단하고 예측하고 사람처럼 행동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발전 가능성이 알파고를 통해 더욱 높아진 것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 "알파고, 이세돌 9단 패턴 바로 학습하기 어려워"두 번째 대국부터는 이세돌 9단이 유리할 것으로 내다보는 목소리도 있다.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학자인 감동근 아주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2국부터는 이세돌 9단이 초반에 무리 안하고 무난하게 시작하면 좋아질 것 같다"며 "알파고가 이 9단과의 대국을 바로 학습하기는 시스템적으로 어렵다. 판을 거듭할수록 이 9단이 유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패배로 인해 이세돌 9단의 심리적인 타격이 클 텐데, 무난히 이기는 길을 놔두고 이상한 수가 몇 차례 나온 것 같다"며 "이 9단이 첫 경기 전 컴퓨터 과학하시는 분들로부터 이야기도 많이 듣고 대국의 역사적 의미도 있다보니 긴장을 많이 한 것 같다. 초반에 실수를 하면서 나쁘게 시작했다"고 전했다.
IBM의 인공지능 '왓슨'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한 감 교수는 앞서 "알파고가 인간처럼 승부수(궁지에 몰렸을 때 승부를 뒤집거나 승세를 굳히기 위한 결단의 수)를 던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는데, 이날 경기를 본 뒤 "프로기사들이 중반 이후 우변에 들어간 알파고의 수를 승부수라고 말씀하시더라. 알파고의 기력은 예상했던 것보다 강했다"고 평했다.
이어 "알파고가 생각했던 것보다 악수를 많이 두고 있는 게 보인다. 2국 이후부터는 이세돌 9단이 너무 긴장하지 말고 사람을 상대하듯이 편안한 마음으로 두면 좋은 기보가 나올 것"이라며 "많이 앞서 있는 상황이라면 5국에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대국을 펼쳐 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인공지능 등이 현실에 미칠 영향력 등을 연구하는 미래학자 정지훈 경희사이버대 IT디자인융합학부 교수는 "중간중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기보를 검토했는데, 알파고가 생각보다 잘 뒀다"며 "알파고의 지난 기보를 봤을 때는 해석력 면에서 이 9단에게 안 될 것 같았는데, 이번 대국을 보니 남은 경기도 잘 모르겠다"고 전했다.
정 교수는 "첫 대국을 보니 초반에 이세돌 9단이 변칙수를 많이 두면서 흔들어도 알파고에게는 별 효과가 없더라. 오히려 알파고는 수읽기에서 맥을 바꿔치기하는 데 약점을 보이는 것 같다"며 "알파고가 초중반에 강한 것 같다. 이세돌 9단 입장에서 흔들기를 계속해야 한다. 특별한 방법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