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 폭탄 투하로 태평양 전쟁이 종식되고 수소 폭탄과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는 시기를 그린 논픽션이 출간되었다. '수소 폭탄 만들기: 20세기를 지배한 어둠의 태양(Dark Sun: The Making of the Hydrogen Bomb)'는 수소 폭탄의 개발사를 서스펜스 스릴러처럼 그려 낸다.
이 책의 저자 리처드 로즈(Richard Rhodes)의 전작 '원자 폭탄 만들기(The Making of The Atomic Bomb)'를 통해 20세기 초 원자 폭탄이 탄생하고 그것이 일본에 투하된 과정을 소설 형식의 다큐멘터리로 그려내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을 수상한 바 있다.
저자는 '수소 폭탄 만들기'에서 1000여 건의 문헌과 육성 증언을 통해 수소폭탄 만들기, 즉 20세기 냉전 탄생의 비화를 재구성한다.
수소 폭탄은 미국과 소련을 둘러싼 20세기 후반의 정치, 과학, 군사적 사안들이 충돌과 분열, 그리고 융합의 산물이었다. 강경파, 매파 정치가와 군인들은 적대국이 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에 대비해 전쟁 계획을 짰고, 심지어 아예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심어 주기 위해 국가와 민족을 말살할 수 있는 전략 폭격 계획과 전국, 전 도시 미사일 공격 계획을 짰다. 과학자들은 새로운 과학 원리를 발견하겠다는 바람에, 자신의 과학적 능력을 증명하겠다는 욕심에, 그리고 애국심과 공포에 추동되어 수소 폭탄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실상 쓰지 못한, 그리고 쓰지 못할 무기를 만들다가 냉전의 종말을 맞이했다.
왜 그들은 수소 폭탄에 뛰어들었고, 왜 그들은 영구적 무기 경쟁을 막지 못했을까? 무한 군비 경쟁을 통해 미국 4억 달러의 비용을 날렸고, 소련은 경제 위기에 몰려 결국 붕괴하고 말았다. 냉전은 사실 두 초강대국의 몰락으로 끝난 것이다.
리처드 로즈는 책 전체를 통해 왜 이런 '어리석음의 비축'과 '공포의 균형'이 기원하게 되었는지 묻고 또 묻는다. 그리고 이 이야기 속에서 현대 물리학의 별과도 같았던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 닐스 보어, 에드워드 텔러, 레오 실라르드, 스타니스와프 울람, 이고리 쿠르차코프, 안드레이 사하로프부터 오늘날의 세계를 만들어 낸 정치가인 트루먼과 스탈린, 흐루쇼프와 케네디, 이승만까지 수많은 거인들이 명멸하는 모습을 보여 주며 그들의 고민과 고뇌, 그리고 공포와 광기, 이데올로기와 지혜 사이에서 어떤 선택이 이루어졌는지 그려 낸다.
리처드 로즈는 1,160쪽에 이르는 이 방대한 책을 통해 어떤 진실에 도달했을까? 그는 수소 폭탄이 만든 역설적인 상황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수소 폭탄 개발 경쟁은 TNT 50메가톤 급의 차르 붐바(히로시마 투하 원자 폭탄의 위력은 15킬로톤에 불과하다.)를 개발하는 데 이르렀지만 한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내전과 국지전을 제외한 모든 대규모 전쟁은 소멸했다. 그리고 무한한 줄 알았던 국가의 주권은 과학이 보여 준 힘 때문에 제한되기 시작했다. 리처드 로즈는 "핵무기는 국가 주권을 제한해 국제 사회의 폭력을 줄이는 바로 그 순간에 역설적이게도 그런 주권을 위협하면서 동시에 보호했다."라고 말한다.
이 미묘한 균형 틈새를 뚫고 핵기술이 확산되었고, 중국, 인도, 파키스탄, 남아공에 이어 북한까지 핵무기를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인간사에서 원자력을 제거할 수 있는 딱 부러지는 영원한 방법은 없다. 원자력을 해방할 수 있는 법을 인간들이 알기 때문이다."라는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말대로 국제 정세와 관계없이 원자력에 대한 지식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핵무기의 정치학, 역사의 이면에서 작동하고 있는 인간 자신의 한계에 대한 소통과 학습의 과정이 지금도 작동하고 있다. 리처드 로즈는 냉전이 끝나고 펴낸 이 책에서 의미심장한 문장으로 이렇게 마무리한다.
"핵무기가 조만간에 전 세계에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목적과 용도가 아주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핵무기는 파괴 수단으로서 이미 오래전에 그 용도를 상실했다."
수소 폭탄의 공포가 다시금 피어오르며 냉전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는 한반도의 우리에게, 역사의 한 바퀴 순환을 목격한 목격자인 저자는 예언적인 역사의 진실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