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규 대구대 한국재활정보연구소 부소장. 장애인운동과 시민운동을 병행해 온 그는 "장애인운동을 하면서 장애인 복지에 관심을 가진 진보정당들과 연대하게 됐고 자연스레 정치에 닿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 정 부소장 제공)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 인권운동가인 정중규(58) 대구대학교 한국재활정보연구소 부소장에게 소회를 묻자 아쉬운 심경을 토로했다.
"어린이날에는 어린이들이 기뻐하고, 어버이날에는 부모님들이 행복해 합니다. 하지만 장애인의 날이 오면 장애인들은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언제부턴가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로 이름을 바꿔 부르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장애인들의 그 마음을 우리 사회가 헤아려 줬으면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 예산은 국내 총생산(GDP) 대비 0.51%다. 이는 OECD 회원 34개국 가운데 밑에서 세 번째로, OECD 평균 2.19%의 4분의 1 수준이다.
정 부소장은 "이마저 박근혜 정부의 '지자체 유사·중복 사회보장사업 정비지침'에 의해 축소 위기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의 장애인들은 이동권·교육권·노동권·주거권·참정권·정보접근권·문화향유권·자립권 등 한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권리에 목말라하고 있어요. 비장애인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런 이 모든 것을 장애인들이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그는 지난 4·13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당 비례대표 16번으로 지명된 바 있다. 정 부소장뿐 아니라 여야 4당의 장애인 비례대표 후보가 모두 당선권 밖 순번으로 밀린 것을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장애인을 홀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잇따랐다. 정 부소장 역시 "비례대표제의 취지에 어긋나는 사태"라고 꼬집었다.
"장애인 복지를 위해서도 250만 장애인을 대변할 장애인 국회의원들이 국회로 많이 진출했어야 하는데, 각 당의 비례대표 장애인 후보들이 모두 당선권 밖으로 밀려났어요. 결과적으로 20대 국회에서 장애인 비례대표가 한 명도 없다는 충격적인 사실 앞에 장애인계는 여야 정당 모두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례대표제 취지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각 당이 이번 총선에서 내건 장애인 공약 실천에도 먹구름을 드리우는 염려스런 사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 부소장은 젊은 시절부터 장애인운동과 시민운동을 병행해 왔다. "이 두 가지가 제게는 같은 의미로 다가온다"는 것이 그의 전언이다.
"제 트위터(twitter.com/bulkoturi) 프로필에는 '인간복지 사회개혁 교회쇄신'이라고 쓰여 있어요. 일생을 두고 제가 추구하는 꿈입니다. 인간복지는 장애인 당사자로서 운명적으로 지닌 소명이죠. 오랜 세월 장애인 복지로 성취하고자 하는 꿈입니다. 사회개혁은 민주화운동을 비롯해 시민운동으로 우리 사회를 인간답게 만드는 작업입니다. 마지막 교회쇄신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사회를 복음화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꿈은 제 인생을 떠받치는 삼발이라 할 수 있죠."
정 부소장이 재활과학 박사 학위를 딴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는 "직업재활이란 장애인에게 소득이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말 그대로 직업을 통한 재활"이라고 설명했다.
"장애인 복지의 궁극 목표를 '장애인이 사회 구성원으로 자립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볼 때, 장애인 재활의 최종 목표가 직업임은 당연한 것이죠. 직업재활을 '장애인 재활의 꽃'이라 하는 이유입니다."
◇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무관심…우리 사회 참으로 독하다"
지난 14일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가 선대위 회의를 위해 서울 마포 당사에 들어서며 정중규 부소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노컷뉴스)
장애인 당사자로서 정 부소장은 장애인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선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제가 처음 장애인운동에 뛰어든 수십 년 전에 비하면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광화문 지하보도에서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요구하며 장애인들이 지난 2012년 8월 21일부터 1300일 넘게 노숙농성을 펼치고 있어요. 물론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비롯한 관련 법과 제도들, 곧 인프라는 일정 수준 구축 됐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실질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미흡하기 짝이 없고 구두선(행동이 따르지 않는 실속 없는 말)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해요."
그는 "가난한 장애인들은 국가 지원을 받는데, 가족이 있을 경우 부양의무제에 따라 지원에서 배제된다. 가족이라도 같이 안 살고, 호적에만 올라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도 말이다"라며 "부양의무제가 폐지돼야만 실질적으로는 도움을 못 주는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지원을 못 받는 경우가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장애등급제는 또 다릅니다. 뇌병변장애의 경우 겉으로 볼 때는 걸어다니고 하니까 3급을 받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이들은 실생활을 하기에 몹시 힘드니 사실상 1급을 받아야만 해요. 활동보조 서비스는 1, 2급에만 적용되거든요. 특히 장애인을 급수로 나눈다는 것 자체가 인격모독입니다. 국가에서 장애인들을 관리하려는, 행정 편의적인 측면이 큰 거죠. 1, 2급만 지원하는 서비스가 많은 현실에서 미국처럼 급수를 없애면 전체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결국 "여전히 생존권 쟁취에 목숨 거는 장애인들이 많고,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공허한 메아리로 빈 들을 헤매는 실정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 정 부소장의 견해다.
그는 사회적 약자를 무턱대고 혐오하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 대한 우려도 감추지 않았다. "사회적 약자를 혐오하는 문화는 바로 장애인 문제와도 직결돼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만큼 차별의식이 심한 나라도 없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차별만이 아니라 '다른' 것을 '틀린' 것, '나쁜' 것으로 여기는 풍조, 사회 곳곳에 널리 퍼져 있는 '이지메' 문화도 거기에 뿌리가 있다고 봐요. 인류 인권발달사는 울타리 밖의 사람들을 하나둘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100년 전만 해도 여성은 서구에서 시민이 아니었습니다. 50년 전만 해도 흑인은 미국 사회에서 시민이 아니었습니다. 20년 전만 해도 동남아 이주민은 한국 사회에서 시민이 아니었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장애인은 우리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이 아니었습니다. 지나간 역사로 본 인권발달사는 바로 우리에게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보다 더 성숙한 자세를 지닐 것을 촉구하고 있는 셈이죠."
그는 "장애인운동을 하면서 장애인 복지에 관심을 가진 진보정당들과 연대하게 됐고 자연스레 정치에 닿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번 총선에서는 국민의당 비례대표 후보로 유세현장에 함께했지만, 저는 정당활동 여부와는 상관없이 우리 사회를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드는 모든 활동을 정치라 여기고 있어요. 장애인운동과 민주화운동 그리고 시민운동을 하면서 달려 온 모든 활동이 그러합니다. 흔히들 정치를 비판하지만,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는 결국 법제화를 통해서만 실질적으로 이뤄지기에, 정치에 대한 희망을 거두어서는 결코 안 된다고 봐요. 물론 그 희망은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정치적 차원'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바위를 굴려 올려야 하는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처럼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 최선을 다하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그런 희망이죠."
'앞으로 어떠한 행보를 보일 텐가'라는 물음에 정 부소장은 "우리 사회의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데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고 답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 못지않은 문제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참으로 독하다고 봐요. 약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면서 텐트에서, 굴뚝 위에서, 크레인 위에서, 광고판 위에서, 철탑 위에서, 거리에서 예사로 수천 일을 넘기면서 울부짖고 있어요. 그런데도 관심조차 주지 않는 우리 사회를 보며 독한 것을 넘어 아예 잔인한 사회라고 느껴집니다. 부익부빈익빈, 양극화로 힘 없는 이들을 더욱 힘 없게 만들고, 아픈 사람들을 더욱 아프게 만들고, 소외된 이들을 더욱 소외시키는, 가진 자는 우대하고 가난한 자는 홀대하는 '부우빈홀'(富優貧忽)의 사회인 거죠. 한 번 무너지면 다시는 일어날 수 없는, 패자부활전조차 용납하지 않는 승자독식 사회에서 우리 모두가 하루빨리 빠져나오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담할 겁니다. 저는 장애인 당사자로 지난 58년을 살아오면서 우리 사회의 약자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뼈저리게 느꼈어요. 이번에 비록 국회로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이제껏 그러해왔듯이 우리 사회의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데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