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예상치 못했지만 해냈습니다. 영화 '귀향'은 350만 관객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며 이제 할머니가 된 '위안부' 피해 소녀들의 마음을 위로했습니다. 지난 3월 극장가를 따뜻하게 만들었던 '귀향'. 개봉 두 달이 지난 오늘, 그 기적같은 여정의 유산을 돌아보는 기획을 CBS노컷뉴스에서 마련했습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
① "난치희귀병 걸렸어도…'귀향'은 꼭 찍어야 했죠" ② '귀향' 본 日 유학생 "역사 알 권리, 국가로부터 빼앗겨" ③ "할머니들 돌아가시면? '위안부' 문제는 이대로 끝" |
민족문제연구소 김민철 책임연구원. (사진=유원정 기자/자료사진)
"이제 위안부 문제가 사라지지 않도록,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 김민철 책임연구원은 한일관계에 얽힌 과거사를 연구해 온 이 분야 베테랑이다. 그는 일부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영화 '귀향'을 보지 않았다. 고통을 드러내는 방식을 통해 상상할 공간이 사라질 것을 우려해서다. 그러나 '귀향'이 이뤄낸 성과만큼은 인정하고 있다.
"사실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들여다보면 잘 몰라요. '위안부' 문제 같은 경우는 애써 외면하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거든요. 직접 대면한다는 것에 굉장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저는 관객들에게 일종의 자기 투시나 분노들이 겹쳐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이번에 '귀향'이 그런 감정들을 촉발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는 '귀향'의 결정적 흥행 이유로 '굴욕 외교' 논란이 일었던 '한일 합의'를 꼽았다. 이에 대해 국민들이 분개해 그 반작용으로 '귀향'이 흥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를 파국적인 형태로 협상했죠. 거기에 사람들이 분노하고 반발한 겁니다. 1965년 한일 협정과 똑같은 형태로, 아버지의 과오를 증폭시켜서 협정을 한 거니까요. 국가의 책임을 전혀 추궁하지 못한 상태에서 소녀상 철거 비용을 받은 셈입니다. 국민들은 왜 저렇게 말도 안되는 협상을 했는지 납득할 수 없는 거죠. 이런 말도 안되는 외교 참극이 나온 이유가 뭘까."
가장 큰 우려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기억 왜곡과 과장이다. 너무 오래 전 기억일뿐 아니라, 고통스러운 기억이기 때문에 할머니들의 증언 중 일부는 역사적 검증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일본군이 자궁을 들어냈다고 증언한 분 중에서 그 이후에 아이를 낳은 분도 계십니다. 증언이 가지고 있는 착각이나 과장이 있다는 거죠. 할머니들의 증언은 여러 가지 검토될 필요가 있습니다. 피해자의 증언이 최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을 성역으로 여겨서 검토하지 않으면 오히려 빌미를 잡혀 공격을 받게 됩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본인 의사와 관계없는 성노예적 상태였다는 건 변하지 않지만요."
김민철 연구원은 현재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에 소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아직까지 청산되지 않은 길고 긴 친일의 역사 속에 있다.
"지금 박근혜 정부의 관심은 북한에 쏠려 있어서, 한미일 군사 동맹 관계를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지 않은가 싶어요. 그러니까 한일 관계 마찰의 핵심인 '위안부' 등 역사 갈등을 빨리 풀고 싶어 하고요. 일본처럼 한국도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기 싫어하는 정부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지금 박근혜 정부 들어서 과거사 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어요. 친일 이후 계속 기득권을 대물림해 온 이들은 자랑스러운 역사만 말하고 싶겠죠. 그런데 한국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가장 어두운 역사들이 다 터져나왔으니까 그게 싫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한일 과거사에서 상징적인 '위안부' 문제도 피해 할머니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면 이대로 문제가 종결될 수도 있다. 김민철 연구원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그런 부분이다.
"저는 사실상 할머니들이 다 돌아가시면 끝난다고 보고 있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더 이상 운동을 할 것인지, 더 이상 동력이 나올 곳이 없어요. 피해자였기 때문에 그 이야기가 이렇게 알려질 수 있었던 겁니다. 이제 다들 너무 고령이시라 길어야 5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고 봐요. 가장 창피한 것은 '위안부' 관련한 박사 논문이나 조사·연구 등의 자료가 전부 일본 것이라는 점이에요. 저희가 갖고 있는 것은 오직 피해자의 목소리밖에 없는 겁니다."
민족문제연구소 내 역사자료관의 전경. (사진=유원정 기자/자료사진)
◇ 한일 평행이론? '위안부' 아픔 공감 못하는 사람들그렇다면 왜 '위안부' 문제는 90년대에 들어서야 대두되기 시작했을까. 김민철 연구원은 국가의 문제와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가부장제 문화를 두 가지 이유로 들었다.
"군부 독재 시절에는 정권의 필요성에 따라 하는 거니까 당연히 피해자 인권을 찾겠다는 시도가 없었고요,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가부장제도 한 몫 했습니다. 그 분들을 피해자로 대우한 것이 아니라 '몸을 버렸다'는 식으로 바라본 겁니다. 지금도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가 있는데 그 피해자가 잘못한 것처럼 인식이 흘러가는 거죠. '전쟁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철저한 남성적 시각에서 '위안부' 문제를 인식하는 경우도 있고요."
실제로 일부 사람들은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일본'이기 때문에 과거사 문제에 분노한다. 피해자 개인의 아픔을 돌보지 않고, 철저히 국가와 민족의 관점에서만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냥 '일본'이니까 분노하는 겁니다. 피해자 관점이 아닌 한국 대 일본이라는 국가주의적인 시각인거죠. 본인과 국가를 동일시하도록 훈련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가부장제 의식과 민족과 국가 중심적인 의식들이 개인 인권 문제로 전환이 되어야 하는데 안되고 있어요. 전형적인 남성 중심의, 지배자들의 이데올로기가 반영된 결과입니다. 피해자는 철저하게 배제된 채로 말이죠."
일본 역시 '위안부'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를 반성하지 못하는 역사적 원인이 존재한다.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탓에 우리가 지금까지 진통을 겪고 있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일본은 스스로 민주주의를 성취하지 못한 국가입니다. 패전 이후 미국이 가져다 준 것이죠. 일본도 패전 직후 전쟁 관련자들을 엄격하게 처벌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미국이 냉전시대의 논리에 따라 전범자들을 다시 복권시켰어요. 아베 신조 총리의 할아버지도 그렇게 복권됐고요. 본인들 힘으로 과거를 청산해보지 못한 것이 결정적입니다. 그래서 본인들이 식민지배를 했고 침략을 했다는 의식이 상대적으로 약해요."
최근 일본 젊은이들은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들은 '평화법'을 지키고자하는 의지가 강하고, 아베 총리 및 우익들을 비판한다. 그러나 김민철 연구원은 이 역시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오키나와 등 내부 식민지 문제, 과거 식민지 침략 문제 등은 없습니다. 그들은 굉장히 대중적이고도 새로운 형태의 세대인데 민주주의나 평화법, 후쿠시마 원전 문제에 대해서는 문제 제기를 하죠. 그런데 역사 문제는 배제되어 있어요."
누군가는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갖가지 끔찍한 일을 저질러 놓고도 어떻게 일본 우익들은 뻔뻔할 수 있는가. 가까운 사례로 우리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