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성(오른쪽 두 번째)과 김상욱(오른쪽 첫 번째) 형제는 한일전 두 번째 골을 합작하며 34년 만의 첫 승리에 힘을 보탰다.(자료사진=대한아이스하키협회)
34년 전 스페인 하카에서 당한 0-25 완패의 굴욕. 1982년 당시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대회 C풀(3부리그)에 출전한 한국은 '숙적' 일본에 무려 25골을 내주는 동안 한 골도 넣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다.
이후 한국 아이스하키는 세계선수권대회는 물론, 올림픽 예선과 동계 아시안게임, 아시안컵 등 각종 공식 경기에서 일본만 만나면 고개를 떨궈야 했다. 역대전적은 1무19패. 13번째 대결이었던 지난 2001년 중국 하얼빈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 1-1 무승부로 연패를 끊었지만 이후에도 계속해서 한국 아이스하키는 일본의 '밥'이었다.
하지만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가 확정된 이후 한국 아이스하키는 정몽원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의 대대적인 투자와 함께 무섭게 달라졌다. 2013년 캐나다 출신의 브락 라던스키(안양 한라)가 한국 스포츠 역사상 최초로 특별귀화해 한국 국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다수의 우수 인재가 한국 국적을 얻었고, 2014년에는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출신의 백지선 감독을 영입하기도 했다.
아이스하키에 대한 투자 확대는 성적향상으로 이어졌다. 한국 아이스하키가 '환골탈태(換骨奪胎)'했다는 호평도 뒤따랐다.
2014년 국내에서 열린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 디비전1 그룹A 대회(2부리그)에서 일본에 2-4로 패하는 등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대회 역사상 최초로 개최국이 승점을 얻지 못한채 대회를 마치는 수모와 함께 3부리그로 강등된 한국은 이듬해 곧바로 우승하며 올해 2부리그로 복귀했다.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리고 있는 IIHF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 디비전1 그룹A 대회에 나선 한국은 우승후보 오스트리아와 1차전에서 페널티 슛아웃 끝에 역전패하는 아쉬운 성적을 거두며 '이변'을 예고했다. 홈 팀 폴란드와 2차전을 4-1 승리로 장식하며 2013년 헝가리 대회의 5위(2승3패) 이상의 성적 도전을 위한 힘찬 행진을 이어갔다.
1979년 첫 대결에서 일본에 0-25로 완패했던 한국은 34년간 1무19패의 일방적인 열세를 극복하고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린 국제아이스하키연맹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 디비전1 그룹A 대회 3차전에서 3-0 승리를 거뒀다.(자료사진=대한아이스하키협회)
지난 26일(한국시각) 열린 3차전의 상대는 일본. 20차례 맞대결에서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한 일본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2년 만에 다시 만난 일본을 상대로 '백지선호'는 3-0 승리를 거뒀다. 결과뿐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상대를 압도한 완벽한 승리였다.
일본의 연이은 마이너 페널티(2분간 퇴장)에 5-3의 수적 우위를 가져간 한국은 1피리어드 4분 18초에 마이클 스위프트(하이원)가 이돈구(안양 한라)의 패스를 받아 3경기 연속 선제골을 터뜨렸다. 스위프트는 이번 대회에서 5골로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다.
5분 32초에는 김기성(안양 한라)과 김상욱 형제가 추가골까지 뽑았다. 이번 시즌 두 형제가 합작한 세 번째 골로 승기를 잡은 한국은 신상훈(안양 한라)의 세 번째 골까지 더해 1피리어드를 3-0으로 마쳤다.
2피리어드 7분 32초에 신상우(안양 한라)가 상대 머리를 향한 위험한 바디체킹이 지적돼 5분의 메이저 페널티와 함께 경기 완전 퇴장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이번 대회에서 6개 출전국 골리 중 최고 수준의 활약을 보여주는 맷 달튼(안양 한라)의 연이은 선방이 한국의 사상 첫 일본전 승리를 안겼다.
대회가 열리는 스포덱 아레나에 애국가가 울려퍼졌고, 에릭 리건(안양 한라) 등 '푸른 눈의 태극전사'들도 애국가를 따라부르며 '한일전'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이 승리로 2승1연장패(승점7)를 기록한 한국은 단 세 경기 만에 1979년 세계선수권대회에 처음 출전한 이후 역대 최고의 성적을 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