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에서 홍길동 역을 맡은 배우 이제훈.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3년 간의 공백은 이제훈에게 '독'보다는 '득'이 된 시간이었다. 그는 특히 군 생활을 하면서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는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배우 인생이 일시 정지하는 시점이었죠. 군대에 가서는 제가 늦은 나이에 데뷔를 해서 어떻게 인생을 걸어왔고 살아왔나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배우의 정체성을 정립할 수 있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네요. 대중들에게 잊힐까봐 조급해하기 보다는 그냥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 부분이 있었어요."
영화 '파수꾼'으로 신인상을 휩쓸고, 연기력으로 높게 평가받아 왔지만 그 역시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장을 거듭해왔다. 경력이 쌓이면 쌓일수록 '연기'는 거대한 산이 되어 그에게 묵직한 숙제를 남긴다.
"어느 정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작품에 임하지만 그 안에는 떨림과 무서움 또 잘 연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가득해요. 연기 경력이 쌓일수록 편해지는게 아니라 더 어려워지더라고요. 연기에 대한 고민을 많이 떠안고 사는데 배우로서 가져가야 할 몫이죠. 잘 이겨내고 유지해야 많은 대중들에게 길게 사랑받을 수 있지 않나 싶어요."
그는 존경하는 선배로 배우 한석규를 꼽았다. 이밖에도 오랜 시간 연기를 계속하는 선배들은 모두 그에게 귀감이 되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선배 배우들을 존경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오랜 시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하거든요. 저도 그분들이 닦은 길을 따라가고 싶고, 그분들이 계시기에 힘을 내서 할 수 있는 거죠. 한석규 선배 같은 경우에는 어렸을 때부터 선배 작품을 보면서 성장했거든요.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면서 자란 세대라 선배와 함께 작품을 했을 때 정말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었어요. 정말 행복했었고, 많이 배웠죠."
tvN 드라마 '시그널'과 영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을 통해 만난 선배들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었다. 배우 조진웅과 김혜수 그리고 김성균은 그에게 또 다른 배움을 안겨준 이들이다.
"감히 말씀드리자면 조진웅 형과 저는 서로 가장 믿음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이였다고 생각해요. 형과 함께해서 너무 완벽했다고 봐요. 김혜수 선배는 여배우로서의 존재와 아우라가 어마어마한 분이죠. 그런 방식으로 여배우와 함께 할 수 있었던 작품은 처음이었어요. '시그널' 때는 정말 현장에 가는 게 너무 좋았어요. 김성균 선배는 작품에 따라 굉장히 온도차가 극명해서 정말 궁금했고 만나고 싶었습니다. 제가 여태까지 호흡을 맞췄던 모든 배우들을 통틀어서 가장 편했어요. 개인적으로 친형이 없는데 정말 제 형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앞으로도 굉장히 의지하고 따라가고픈 형이에요."
영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스틸컷.
그가 스스로 시나리오를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 된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영화 '건축학개론' 이후부터 오디션을 보지 않아도 작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역시 연기 생활을 늦게 시작한만큼 무명시절 동안 고민이 깊었다.
"연기하고픈 의지와 열망이 있다고 해서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거든요. 그런 부침이 있다보니까 상당히 불안하고, 시간의 기회비용을 허튼 곳에 쓰고 있지 않나라는 불안감도 있었죠. 1~2년 안에 배우로서 뭔가를 이뤄내겠다는 환상이 있었던 것도 같아요. 그런 것을 버려야 됐던 시간이었고, 25세에 다시 배움의 길을 선택하면서 밑바닥부터 시작했죠. 그것이 배우로서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네요. 평생 연기해야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휴식 기간에도 그는 영화 보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볼 때가 가장 설레고 행복한 순간이다.
"연기가 잘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감정 기복이 심한 직업이거든요. 쉴 때 극장을 간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두근거리고 기대가 되죠. 좋은 작품을 봤을 때 각성이 되기도 하고, 출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연기하고 싶다는 꿈을 다시 한 번 꾸는 순간이랄까요. 영화를 보면서 배우의 꿈을 꿨고, 지금도 영화를 보는 시간을 통해 계속 상상의 나래를 펼쳐요."
'작품을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 찾아 나서고 싶다'. 그는 단순히 연기를 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작품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저는 좋은 작품을 할 수 있다면 힘들더라도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쉼없이 일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죠. 지금은 좋은 작품이 없는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좀 찾아야 되지 않나 생각해요. 만약 좋은 이야기의 아이템이 있고, 그걸로 작품을 만들려는 사람이 있다면 저도 같이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이야기를 좋게 발전시키는 부분에 있어 의견을 많이 내고,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하겠다' 혹은 '말겠다' 이게 아니라요. 제작에 관심이 있긴 한데 아직은 그릇이 작아 조금씩 능력을 키워나가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