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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소설 '대통령의 골방' / '머리부터 천천히'



책/학술

    신간 소설 '대통령의 골방' / '머리부터 천천히'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하나의 이름, 노무현. 2016년 5월 23일은 그의 서거 7주기이다. 그는 어떤 대통령이었으며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이끌었는가? 그것이 그의 사후 우리 사회에 주어진 화두였다. 바보 노무현, 보통사람 노무현, 혹은 ‘무능한’ 대통령이라는 우리의 기억은 얼마나 올바른 것일까? 사람들은 의문을 갖는다. 작가 이명행의 신작 '대통령의 골방'은 그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작가 이명행. 그는 그 자리에서 “대통령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라는 유언 같은 말을 듣는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대통령으로서의 한 일’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이 시대의, 대통령의 역할이란 무엇인지를 상기시킨다.

    '대통령의 골방'은 대통령이 주인공인 소설이다. 하지만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국내정세의 이슈나 음모, 배후세계의 권력관계에 대한 비밀을 파헤치는 극적인 사건이나 긴장 등은 그리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직업이 대통령인,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한 개인의 모습이 가감 없이 투영된다. 주인공은 투표로 뽑힌, 국민의 대리인이다. 그는 그 당연한 일을 하러 가기 위해 대통령 자리에 오르나 어이없게도 곧바로 절망과 맞닥뜨린다. 그는 힘없는 대리인에 불과한 굴욕의 대통령이었다.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할 관료조직 속에 깊숙이 똬리를 틀고 있는 재벌과 열강의 힘! 이 상황에서 대통령이 국민의 편에 서서 그들과 맞서려 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의 고단한 굴욕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되었다.

    이 소설은 굴욕의 대통령을 보여줌으로써 물신주의에 경도된 우리들의 통념을 허물어버린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거의 없다. 권력은 실체 없는 이데올로기일 뿐이며, 그 상징적인 자리가 바로 대통령이다. 작가는 대통령의 모습을 통해 이 시대의 자화상을 투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거대한 이데올로기의 허상에 투사된 우리 자신들의 실체 없음이 거울처럼 자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실제 퇴임해 고향으로 돌아간 노무현 대통령과 마주하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내용을 소설의 주요 모티브로 삼아 이 작품을 완성했다. 하지만 노무현의 이야기를 쓰겠다는 뜻은 아니었다고 밝힌다. 실제 노무현 대통령은 비극적인 절망을 보여줬지만, 작가는 오히려 그를 통해 희망을 보여주고자 했다. 노무현을 통해 노무현이 원했던 대통령상을 보여준다고 할까? 결국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다시 말해 노무현이 아닌 노무현을 통해 작가는 이 시대의 대통령이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묻고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묻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대통령이야말로 그 무수한 물음 끝에서 한 송이 꽃을 피워낼 수 있지 않을까? 작가는 바로 그 지점에서 희망을 본다.

    이 소설은 정치소설이 그렇듯 팩트와 픽션을 혼합한 팩션을 소재로 삼는다. NLL과 DMZ, 강정기지, 이어도 문제 같은 국제적인 이슈들이 그것이다. 어부를 죽인 북측의 NLL 포격과 함께 X밴드 이어도 프로젝트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그리고 국내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 사건이 대통령에게 은밀한 방식으로 보고된다. 이른바 7명이 한 사람을 밟아 죽인 답살 사건이다.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하나의 살인 사건이 중국, 미국이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이어도 프로젝트와 연장선상에 놓이면서 소설은 한층 더 거대한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굴욕의 대통령은 이 블랙홀 속으로 빠지지 않기 위하여 자신만의 골방을 만들게 된다. 그의 절망이 빚어낸, 오직 그만을 위한 그만의 세계이며 밀실이다. 그 좁은 공간에서 그는 허물을 벗는다. 알몸으로 아무렇게나 춤을 추고, 비로소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이 소설에서 대통령의 이미지는 권력, 힘, 상징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무능함, 연약함,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끊임없이 흔들린다. 그 속에서 대통령이 끝까지 놓치지 않는 것은 바로 성찰하고 질문하고 반성하는 자세다. 아이러니하게도 굴욕적일수록 그는 더욱 윤리적인 인간이 되어간다. 이것이 대통령이라는 상징으로 부풀려진 실체의 진짜 모습이다. 역설적으로 대통령은 자신의 ‘텅 비어 있음’을 공개함으로써 주체적인 한 개인이 될 수 있다. 힘이 없는 자의 내밀한 성찰은 부질없는 행위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질문하고 반성하고 비판하고자 할 때 이미 그는 텅 빈 기표에 불과한 자신의 자리에 스스로 균열을 내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대통령의 모습이야말로 현대사회에서 가장 윤리적인 인간이 아닐까.

    ‘대통령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인간이란 무엇인가’로 바꾸어보면 어떠한가? 소설에서 그려지는 나약한 대통령의 고뇌 속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인간이라는 공간의 운명을 우리는 어떻게 바꿔가야 하는가? 인간이, 인간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소설은 바로 그런 중요한 지점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고 있다.

    책 속으로

    그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집요한 욕망들이 들끓는 터널 속에 갇힌 존재다. 가끔 그는 그 터널 속에서 짓뭉개진다. 그러나 그가 짓뭉개지는 이유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대통령이 누군가에게 짓뭉개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더러 짓뭉개진다. 그 모습이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을 뿐이다. 그는 존엄한 지위에 있으면서 동시에 굴욕의 대리인인 것이다. 그 존엄함과 굴욕 사이에는 칸막이 따위가 없다. 존엄과 굴욕을 한 몸에 지닌 채 살아간다. 어쨌든 그날도 그는 짓뭉개지는 굴욕 속에 있었다.
    -9쪽

    그러고 보면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사실 그들에게는 좌든 우든 별 의미가 없다. 오직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극렬함이 아닐까. 분열하는 것은 좌파의 특성만이 아니다. 좌우의 이념으로 무장한 자들은 스스로 분열하며 그 긴장을 즐긴다. 그들은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것보다 적과동지로 구분되기를 원하며, 그 편 가르기에 제 운명을 거는 것이다.
    -66쪽

    그것은 겉보기에 매우 느슨한 저항이며 작용이지만, 반복되어 더께를 이루면 아주 묘한 정서적 압박을 불러일으킨다. 설명하기 매우 어렵고 불편하다. 그것은 형용할 수 없는 어떤 외로움 같은 것인데, 그것이 어떤 느낌인가 하면, 완강한 차벽에 갇혀 짓이겨지는 느낌이다. 차 안으로 밀려들어 가면서 슬그머니 명치께로 짓눌러오는 경호관의 무릎을 닮은 힘인 것이다. 그것을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다. 게다가 불법을 저질렀다는 죄의식마저 함께하면 그것은 절망의 빛깔이 된다.
    -79쪽

    권력을 이해하는가. 그것이 움직이는 것은 자연의 법칙을 닮았다. 그것이 스스로 그러하므로 자연이다. 그 뜻을 거스르는 것은 그야말로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그 속성이 이미 말하고 있다.
    권력자란 권력의 허울일 뿐이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휘두르면 그 스스로 다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것은 권력자가 되어서 권력이 움직이는 것을 실감할 때야 알 수 있다.
    -80쪽

    나는 대통령이다, 하고 벌거벗은 그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대통령이 없다니. 방 안에 아무도 없었으므로 그 말을 듣는 것은 오직 벌거벗은 자신뿐이었다. 텅 빈 방 안에 짧은 공명이 일었다. 그는 그것에 화답하듯 다시 또박또박 되뇌었다. 나 는 대 한 민 국 의 대 통 령 이 다. 그가 간절하게 느끼고 싶은 것은 말이 주는 무게였다.
    -97쪽

    나는 무엇을 하는 인간인가. 그것에 절실하게 대응하고 싶었다. 도대체 너는 무엇이냐? 목구멍에서 뜨거운 것이 치올라왔다. 그는 스스로 답했다. 대통령은 절망하는 자리다. 그 절망에 관해서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누구도 맛보지 못할 절망이었다. 영광은 없다. 영광이라면 훗날 장롱 속에 처박힐 족보 속에서나 찾게 되겠지.
    -98쪽

     

    희망 없는 세대와 미래 없는 시대를 사유하는 작가 박솔뫼가 네번째 장편소설 '머리부터 천천히'를 펴냈다.

    이 소설 속에서 발밑을 디딘 공간이 어디인지 모르고 “흘러가버리는 사람들”, 세계를 헤매는 점 같은 존재들은 자신들이 지도 위에 그리는 선이 영영 겹쳐지지 않는다 해도 절망에 빠지지 않으며, 이야기로써 서로의 존재를 증거한다.

    '머리부터 천천히'에는 '세계'가 있다. 그리고 혼수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헤매는 '어떤 세계'가 있다. 세계와 어떤 세계는 비슷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 우경은, 혼수상태에 빠져 '어떤 부산'을 맴도는 옛 애인 병준을 계기로 '부산'을 걷게 된다.

    책 속으로

    “커피 맛있어요.”
    역시나 아무 말이 없고 괜한 말들 그저 그런 말들 하나 마나 한 말들 입에 발린 말들 시시한 말들을 안 할 수 없을까 생각하지만 글쎄. 커피가 맛이 있었다는 말이 그 정도로 괜한 말은 아니지만 우경은 정말로 맛이 있었으나 그저 괜한 말로 들리게 말을 했으니 결국에는 하나 마나 한 말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말을 안 하고 살 수는 없겠지 우경에게는 긴장감이라는 것이 섬세함이라는 것이 좀 부족했고 그런 것에 훈련이 덜 된 사람이었고 그러니까 병준과 그런 식으로 함께 살았던 것일까. 어쨌거나 우경은 지금에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하나 마나 한 말들과 낭비되는 말들로부터 무언가를 지키고 싶다면 말이 되지 않는 말 이상한 주제와 결말 없는 말과 어젯밤 꿈 이야기 같은 것을 마구 말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말이다. 입을 다물고 싶지만 입을 다물 수 없다면 아무 말이나 해버리는 것이 더 좋다고 우경은 생각했다. 어딘가에 윤기를 내기 위해 하는 말들로부터 보호받고 싶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말들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대체. 나 자신, 나의 마음과 기분 그런 것인가. 아니 아니 우경은 스스로의 기분을 보호하고 싶은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자신의 기분을 위험한 곳에 내던지고 싶은 마음이었고 무언가를 잃고 싶지 않다면 그것은 이상한 말 그 자체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상한 말을 마구 함으로써 이상한 말을 보호하고 싶었다. 그저 그런 말 하나 마나 한 말 당신에게 사회적인 인간으로 보이기 위해 하는 말 모든 제스처와 같은 말로부터 말이다.
    (pp. 87~88)

    우경은 마치 백지에 선을 긋고 또 긋고 부산의 어떤 골목들을 헤매고 또 헤매면 어딘가에서 병준의 선과 만날 것이라고 어떤 부산에서 우리는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나. 병준, 우리는 이 부산에서 나와 이 길을 천천히 걸어가야 해. 너는 지금 부산을 헤매고 있는 거야 내가 너를 찾으려 세계의 많은 부산을 헤맸는데 너는 어느 부산에서도 보이지 않았고 나는 점점 어떤 부산이 남아 있나 얼마의 힘이 내게 남아 있나 걱정이 되었는데 바로 이 부산에서 너는 서 있었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 나는. 그것은 병준을 구하는 것인가 구하는 것이라면 하는 것인가. 우경은 다시 몇 번을 곱씹었던 질문을 던진다 병준을 구하고 싶은가, 병준을 살리고 싶은지, 병준이 살았으면 하는지 그것은 또한 아주 간절한 바람인지 하는 것들. 그제야 우경은 병준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강하게 바라는 자신이 느껴졌는데 그렇다면 병준이 사는 곳이 어디일지 어딘가의 부산에서 병준이 잘 지내고 있는 것이라면 그대로 좋은지, 병준이 중환자실을 나와 서서히 건강이 나아지는 것을 바라는 것인지 며칠 병원에 가지 않아 자신이 어떤 판단 기준이나 균형 감각 같은 것이 사라진 것인지 스스로도 혼란스러워 우경은 잠시 멍하게 앉아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둘 중 무엇에 가까운가. 아니 어느 하나가 없는 또 다른 하나는 가능한가. 그리고 그것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인가. (pp. 17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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