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갑이다' 한화는 24일 에이스 에스밀 로저스(왼쪽)를 투입하고도 넥센 주장 서건창에게 결승타를 허용하며 1-2 패배를 안았다. 사진은 24일 경기에서 로저스가 팀 동료들을 격려하는 모습과 경기 후 서건창이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고척=한화, 넥센)
'성적은 연봉 순이 아니다'는 명제가 올해처럼 잘 들어맞는 시즌이 있을까. 최고 연봉 구단이 최하위에 머물러 있고, 최저 연봉 구단이 선전을 펼치는 역설적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24일 한화-넥센의 '2016 타이어뱅크 KBO 리그' 시즌 4차전은 앞서 언급한 명제가 두드러지게 드러난 한판이었다. 프로의 가치는 돈으로 매겨진다지만 또한 이를 실력으로 입증해야 한다는 묵직한 교훈이 서울 고척스카이돔에 메아리쳤다.
두 팀은 앞선 명제의 상징적인 구단들이다. 한화는 올해 최고 부자 구단이지만 넥센은 주머니가 가장 얇다. 그런 두 팀의 대결은 또 다시 의미있는 결과를 낳았다.
▲한화 연봉, 사상 첫 100억 vs 넥센은 40억대한화는 올 시즌 최고 연봉 구단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따르면 한화는 올해 선수단 총 연봉이 102억1000만 원으로 사상 최초로 100억을 돌파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최고 부자 구단이던 삼성(81억9600만 원)을 넉넉하게 제쳤다.
5년 연속 리그 최고 연봉 선수인 김태균(16억 원)과 몸값 3위 정우람(12억 원), 17위인 정근우, 이용규(이상 7억 원) 등 고액 연봉자들이 즐비하다. 권혁(4억5000만 원), 조인성(4억 원) 등도 몸값이 적지 않은 선수들이다.
여기에 이날은 외국 선수 최고 연봉을 자랑하는 에이스가 등판한 날이었다. 연봉 190만 달러(약 22억5000만 원)을 받는 에스밀 로저스다. 메이저리그(ML) 출신의 로저스는 지난 시즌 후반 70만 달러(약 8억 원)에 계약해 6승2패 평균자책점(ERA) 2.97의 성적을 냈다. 역시 현역 빅리거였던 거포 윌린 로사리오도 연봉 130만 달러(약 15억 원)를 받는다.
'QS는 양보할 테니 승리는 내가 갖는다' 한화 로저스(왼쪽)와 넥센 코엘로가 24일 고척 선발 맞대결에서 역투하는 모습.(고척=한화, 넥센)
반면 넥센은 연봉 순위에서는 맨 아래다. 선수단 전체 연봉이 40억5800만 원이다. 한화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선수 평균 연봉도 8116만 원이다. 한화 연봉이 넥센보다 2.5배 정도 많은 셈이다.
이날 선발로 등판한 로버트 코엘로의 연봉은 총액 55만 달러(약 6억5000만 원)이다. 로저스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외국 타자 대니 돈이 올해 받는 돈은 총액 75만 달러(약 8억 6000만 원)으로 로사리오의 절반 수준이다.
▲최고 몸값 로저스의 과욕…넥센, 경제의 야구로 승리두 팀의 연봉은 격차가 컸지만 실력은 거의 차이가 없었다. 몸값은 떨어져도 넥센은 이날 끈끈한 팀 워크로 거함 로저스와 한화를 밀어붙였다. 오히려 승부처 집중력에서는 넥센이 더 앞섰다.
이날 로저스는 7⅓이닝 4피안타 6탈삼진 2실점(1자책)의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시속 150km가 넘는 강속구와 140km대 슬라이더 등 빼어난 구위를 뽐냈다. 과연 최고 몸값 선수다운 투구였다.
하지만 실속은 없었다. 승리 투수의 영광은 이날 5이닝 5탈삼진 5피안타 1실점한 코엘로의 몫이었다. 로저스는 퀄리티스타트 이상의 호투에도 패전을 안았다. 코엘로는 시즌 4승째(4패)를 신고했고, 로저스는 3패째(1승)를 안았다.
여기에 넥센은 김상수(2이닝), 이보근(1이닝)이 홀드를, 김세현(1이닝)이 세이브까지 챙겼다. 김세현은 12세이브로 이 부문 단독 1위로 올라섰다. 코엘로 외에도 수확이 적잖았던 셈이다.
'부자인 패자와 승자의 기쁨' 서건창이 9회 자신의 실책에도 승리를 지켜준 마무리 김세현을 껴안는 등 넥센 선수들이 경기 후 서로 격려하는 모습. 뒷편으로 한화 선수들이 팬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그라운드로 나오고 있는 모습.(고척=넥센)
특히 로저스는 자신이 패배의 빌미를 제공해 할 말이 없게 됐다. 1-0으로 앞선 2회말 1사 2, 3루에서 박동원의 땅볼을 잡고도 의욕이 앞서 직접 3루 주자를 태그하려다 넘어지는 실책을 저질렀다. 공이 없는 빈 글러브로 태그하는 해프닝까지 일어났다. 동점을 헌납한 게 로저스였던 것이다.
한화는 1회 선취점을 뽑을 때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다. 정근우의 안타와 2사 뒤 나온 김태균, 로사리오의 연속 안타로 먼저 앞서갔다. 고액 선수들의 가치가 나오는 듯했다. 하지만 이후 침묵했다. 2회 2루타를 때린 선두 타자 하주석은 조인성의 포수 땅볼 때 아웃되면서 추가점 기회가 날아간 게 아쉬웠다. 이후 한화의 안타는 5회 송광민이 유일했다.
넥센은 상대 실책에 편승해 동점을 낸 뒤 경제적으로 결승점을 뽑았다. 5회 김하성이 볼넷을 골라낸 뒤 2루를 훔쳤고, 임병욱의 희생번트로 3루까지 간 뒤 서건창의 안타로 홈까지 들어왔다. 안타 1개로 낸 점수였다.
이날 넥센은 한화보다 안타 수가 1개 적었지만 이겼다. 진정한 의미에서 '경제의 야구'였다. 경제의 규모가 아닌 체질의 문제인 것이다. 왜 넥센이 적은 연봉에도 선전하는지, 또 한화가 왜 최고 몸값에도 최하위에 처져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경기였다. 투자의 방향성과 그 중요성을 강조한 한판이었다.
22승20패1무가 된 넥센은 가을야구 마지노선인 5위를 지켰다. 한화는 올 시즌 가장 먼저 30패째(11승1무)를 안으며 최하위를 면치 못했다. 넥센과 승차는 10.5경기나 된다. 올해 넥센은 한화에 3승1패로 앞서 있다. 25일 넥센 선발은 에이스 라이언 피어밴드, 한화는 무승의 장민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