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MBC 제공)
MBC 음악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
가면을 쓰고 모든 편견으로부터 벗어난 상태에서 가창력만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프로그램의 취지가 시나브로 퇴색 되고 있는 것이다.
음악대장을 꺾을 도전자로 나서는 복면가수들의 면면이, "목소리가 지문"이라는 이승철의 표현대로 누구나 들으면 단번에 알 법한 인지도 높은 가수들로 채워지고 있는 까닭이다.
최근 '램프의 요정'(램프) 가면을 쓰고 가왕 자리에 도전했던 김경호가 그랬다. 특유의 강인함을 지닌 로커 김경호의 목소리를 모르는 한국의 음악 팬이 얼마나 될까.
1라운드 듀엣 대결에서 램프의 목소리를 접한 연예인 판정단은 그가 김경호라는 사실을 애써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내는 묘한 기류는 프로그램을 산으로 가게 만들었다.
김경호는 예정된 수순이라는 듯이 여타 복면가수들을 차례로 꺾으며 가왕 결정전까지 무혈입성했다.
흥미로운 점은 9연승을 달리고 있는 음악대장의 정체 역시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이날 가왕 결정전은 대다수 사람들이 정체를 아는 두 가수의 대결로 꾸며진 셈이 됐다.
이 가왕 결정전을 두고 누리꾼들 사이에서 "가면만 썼을 뿐 '나는 가수다'와 다를 바 없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이렇듯 아이러니한 흐름은 음악대장의 10연승을 저지하기 위해 출사표를 낸, 지난 29일 방송에서 모습을 드러낸 복면가수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에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날 방송에서 가장 큰 관심을 얻은 복면가수는 '하면 된다 백수탈출'(하면된다)이었다. 2라운드에 진출한 하면된다는, 앞서 1라운드 듀엣 대결에서 빅브레인 윤홍현으로 밝혀진 '노래 요정 바람돌이'와 조덕배의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을 불렀다.
이 무대를 접한 누리꾼들은 일찌감치 음악대장을 꺾을 만한 실력자로 꼽혀 온 특정 가수를 하면된다의 정체로 거론하고 있다.
계절을 바꿔가며 몇 달 동안 가왕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음악대장이 복면가왕에만 묶여 있어서도 안 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시청자들은 음악대장에게 한껏 매료돼 있다. 극단을 오가는 음역대와 진정성이 묻어나는 감수성이 폭넓은 연령대의 시청자들을 TV 앞에 묶어두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29일 방송된 복면가왕은 시청률 13.3%(이하 TNMS·수도권)를 기록하며 동시간대는 물론 이날 방송된 예능 프로그램을 통틀어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런 만큼 음악대장의 퇴장 시점은 복면가왕이라는 음악 예능을 대하는 시청자들의 태도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다가올 가왕 결정전에서 음악대장과 맞붙게 될 복면가수가 얼마나 설득력 있는 무대를 선보이느냐에 따라, 시청자들의 태도 변화가 호재로 작용할지 악재로 머물지 판가름 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편견을 깨고 실력 있는 가수들을 시청자들에게 소개한다는 프로그램의 취지를 지켜 나가려는 복면가왕 제작진의 의지일 것이다.
음악대장이 시청자들을 매료시켜 온 과정이 그러했으니 말이다. 음악대장을 꺾을 도전자가 꼭 대중에게 깊이 각인된 유명 가수일 필요는 없는 셈이다. 복면가왕 제작진의 고민이 깊어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