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승장구하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첫 번째 좌절. 여러모로 귀중한 결과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2014년 9월 한국 축구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이후 처음으로 유럽 원정에 나섰다. 부임 후 대부분 평가전을 안방에서 치른 슈틸리케 감독은 이번 기회가 “계속 기대했던 경기”라며 “아시아권에서 어느 정도 수준인지 확인한 만큼 세계적인 수준의 유럽 강팀을 상대로 평가받을 기회”라고 상당한 의지를 부여했다.
슈틸리케 감독의 유럽원정 성적표는 1승 1패. 국제축구연맹(FIFA) 세계랭킹 6위의 스페인을 상대로 1-6 역사적인 패배를 당했지만 4일 뒤 열린 세계랭킹 30위 체코와 경기는 2-1 기분 좋은 승리를 거뒀다.
이 두 경기의 결과는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이번 유럽 2연전은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을 앞둔 ‘슈틸리케호’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특히 두 경기에서 보여준 선수들의 경기력이 중요한 의지를 가진다.
축구대표팀의 유럽 2연전을 통해 손흥민과 석현준(왼쪽부터)은 엇갈린 활약을 선보였다.(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 손흥민과 석현준의 엇갈린 희비누가 뭐래도 최근 한국 축구의 에이스는 단연 손흥민(토트넘)이었다. 2015~2016시즌을 앞두고 역대 아시아 선수 최고 이적료인 2200만 파운드(약 400억원)으로 바이엘 레버쿠젠(독일)을 떠나 토트넘 핫스퍼(잉글랜드)에 이적할 때만 해도 손흥민은 소위 잘나가는 선수였다.
토트넘 이적 후 빠르게 팀에 적응하는 모습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부상이 손흥민의 발목을 잡았다. 프리미어리그 7라운드 맨체스터시티와 경기에서 왼발 족저근막염 부상을 당한 손흥민은 시즌 내내 제대로 된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영국 현지에서는 이적 한 시즌 만에 손흥민의 방출설이 제기될 정도로 팀 내 입지가 약화됐다.
부상의 여파로 소속팀에서 안정적인 출전 기회가 줄어든 손흥민이 대표팀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일찌감치 리우 올림픽에 출전할 와일드카드 3명 중 한 명으로 공식 발표된 손흥민은 이번 유럽 원정 2연전을 그 누구보다 기다렸지만 결과는 최악이었다.
반대로 석현준(포르투)의 경우 팀 내 불안한 입지에 대한 우려를 유럽 2연전을 통해 완전히 씻었다. 비토리아 세투발에서 맹활약하며 지난 시즌 겨울이적시장에서 ‘거상’이라는 별명을 가진 FC포르투 유니폼을 입을 때만 해도 석현준의 승승장구는 이어졌다.
하지만 포르투 입성 5일 만에 훌렌 로페테기 감독이 경질되고 호세 페제이루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며 위기가 시작됐다. 결국 석현준의 후반기는 ‘인내’로 가득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유럽 원정 평가전에서 석현준은 자신의 존재감을 분명하게 선보였다.
스페인과 경기에서 비록 팀은 패했지만 상대 골문을 향한 투지를 선보였던 석현준은 여전히 유럽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페트르 체흐(아스널)가 지킨 체코의 골망을 힘차게 흔들며 차세대 한국 축구의 주전 공격수를 향한 경쟁에서 한발 앞서나갔다.
국가대표 골키퍼 정성룡(가운데)은 8개월 만에 A매치 출전이었던 체코와 평가전에서 맹활약하며 치열한 주전 경쟁에 다시 불을 붙였다.(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 윤빛가람과 정성룡, 잊혀진 이들의 화려한 귀환유럽 2연전을 통해 가장 큰 관심을 받은 선수가 있다면 바로 미드필더 윤빛가람(옌볜 푸더)과 골키퍼 정성룡(가와사키 프론탈레)일 것이다. 이들은 정말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를 완벽하게 손에 넣으며 ‘슈틸리케호’에 건강한 긴장감을 선물했다.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이 미세골절로 유럽 원정 참가가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슈틸리케 감독은 K리그 시절부터 눈여겨봤던 윤빛가람을 호출했다. 마침 대표팀 합류 직전 리그 경기에서 1골 3도움의 맹활약을 선보인 만큼 최상의 컨디션으로 대표팀에 합류한 그는 체코전에서 1골 1도움으로 맹활약하며 ‘잊혀진 천재’의 귀환을 알렸다.
2012년 9월 우즈베키스탄과 2014년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이후 무려 3년 8개월 만에 A매치에서 전반 26분 프리킥 상황에서 직접 슈팅을 때려 선제골을 뽑았고, 전반 40분에는 석현준의 결승골을 만드는 패스로 도움까지 기록했다. 말 그대로 만점 복귀전이었다.
정성룡 역시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최근 축구대표팀의 주전 입지를 굳히는 듯했던 김진현(세레소 오사카)이 스페인전 6실점으로 체면을 구긴 상황에서 정성룡은 8개월 만에 찾아온 A매치 출전에서 자신의 기량을 유감없이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