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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나에게 미디어는 무엇이었는가? ' 등 2권

책/학술

    [새책] '나에게 미디어는 무엇이었는가? ' 등 2권

    신간 '미디어 숲에서 나를 보다' Ⅰ'모든 것은 세일즈다'

     

    이창근, 강준만, 조흡, 원용진은 미디어 학자다. 신간 '미디어 숲에서 나를 보다'는 30여 년 전 한 대학원에서 만난 이들이 공통의 전공인 매스미디어에 대한 각자의 체험과 기억과 생각을 풀어낸 것이다. 이들은 1980년대 초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학에서 처음 만나 강의를 같이 들었고, 강의실 밖에서 유학생으로 동고동락했다.

    이창근 교수에게 반세기 동안 지속된 정치ㆍ경제적 변동에 못지 않게 미디어의 대변혁이 그의 삶을 바꿔놓았다. 20세기는 전자매체의 세기였고 특히 후반기에 등장한 컴퓨터는 미디어뿐만 아니라 인간의 의사소통 방식을 혁명적으로 변화시켰다.
    전화, 레코드, 영화, AM, FM, 트랜지스터 라디오, 흑백ㆍ컬러 TV, 케이블 TV, IPTV, 텔스타 위성 전화, IBM PC, XT, AT, 펜티엄, 팩스, 윈도, 이메일, 월드와이드웹, 휴대전화, MP3, 문자……. 반세기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이창근 교수가 배우고, 사용하고, 즐긴 미디어들이다. 이들은 오관을 확장시켜주고 생활을 편리하게 해준 도구들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인간을 테크놀로지가 요구하는 특정한 방식으로 몰아세웠는지 모른다. 이 도구들을 사용하기 위해 복잡한 사용 방법이나 프로그램된 방식을 배워야만 했고, 또 그것이 요구하는 대로 사고와 행동양식을 기기에 적응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컴퓨터가 스스로 학습하는 제2의 기계시대, 4차 산업혁명의 막이 오르고 있다. 극동이라는 지구 한 모퉁이에서 미디어 혁명의 여명기에 태어나 라디오, 텔레비전의 전성기를 보낸 이창근 교수는 생각하는 컴퓨터가 손짓하는 ‘멋지고 놀라운 신세계’로 이끌려가고 있다.

    강준만 교수의 프로페셔널한 신문 수집은 전북대학교 교수로 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미국 유학 시절에는 '뉴욕타임스'는 물론이고 다니던 학교의 동네 지역신문부터 대학신문까지 모두 챙겨놓았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시 서울세관에서 이사짐을 보고 세관원이 좀 어이없어 했을 정도라고 한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각종 정치적 성명서와 전단이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대학 총학생회는 물론 단과대학 학생회, 학과학생회 성명서와 전단까지 모았다. 각종 교수 단체와 외부 운동단체들이 발표한 성명서와 전단도 모았다. 나중에 정리해서 기록해두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책과 자료가 학교 연구실을 가득 채운 뒤, 집안 곳곳에 파고 들어 나중엔 화장실까지 점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버리지 않으면 안될 지경에 이르렀는데, 강준만 교수가 내린 선택은 탈출이었다. 별도의 사무실을 얻어 책과 자료를 보관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한때는 수십 종의 신문을 정기 구독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발행되는 모든 중앙지는 물론 지역 일간지까지 구독했다. 왜 이런 수십 종의 신문을 정기 구독했을까? “내겐 야망이었다. 나는 평소 한국 사회가 빨리빨리 속도전으로 치닫는 탓인지 자신의 언행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풍토가 만연되어 있는 걸 개탄해왔기에, 그걸 바로잡는 데에 일조할 수 있는 실명비판 문화를 정착시키자는 취지에서 한국 최고의 인물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자 했다.”
    책도 부지런히 사들였다. 한동안 책값으로만 매월 200만 원 이상을 썼다. 2011년 덴버(교환교수)에 있을 때에도 아마존에서 중고 책 쇼핑에 빠졌고, 1년 동안 총 8,048달러 어치의 책(1,276권)을 구입했다. 서점에서 직접 산 책도 많았으니 그것까지 합하면 1만 달러 이상을 책 쇼핑에 바쳤다. 아마존의 전자책 킨들이 있지만, 강준만 교수가 왜 ‘아날로그형 인간’을 자처했겠는가. 강준만 교수는 신문의 죽음에 맞춰 자신도 죽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신문 구독률이 14.3퍼센트(2015년)라는 것은 ‘신문의 죽음’을 뜻한다(1996년 69.3퍼센트). 그러나 강준만 교수는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종이신문을 읽고 내일도 읽을 거라고 말한다. 종이신문이 없는 일요일 아침이 아쉽지만, 그날은 교회에 가서'성경'을 읽는다.

    조흡 교수는 대학 1~2학년 때 8개월이나 되는 긴 방학 동안 그 반절의 시간을 오디오에 소비했다. 하루 건너 한 번씩 아침에 일어나면 청계천 6가 중고서점거리에 있는 단골서점이었던 ‘외국서적’에서 새로운 원서가 나왔는지 확인한 다음 세운상가까지 걸어가 순례하듯 오디오숍 한 군데씩 들러 잡지에서 보았던 앰프며 스피커를 들어보고 만져보고 스펙이나 가격을 물어보면서 당장에라도 가격만 맞으면 살 수 있을 것처럼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세운상가에 있는 모든 가게를 훑어보고 나서 마지막으로 발길을 돌린 곳은 당시 최고의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충무로 오디오 전문점이었다. 충무로는 세운상가와 차원이 달랐다. 충무로에서는 영제, 미제, 독일제, 스위스제 전문 오디오를 구할 수 있는 그야말로 명기(名器)들의 집합소였다. 전설로 전해지던 알텍(Altec) 스피커, 리복스(Revox) 릴 테이프, 마란츠 7 콘트롤 앰프 등을 직접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으며 눈으로나마 그 제품들을 소유할 수 있는 꿈의 장소였다.
    조흡 교수는 오디오를 들으며 자주 현실을 초월한 고조된 희열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르고 유학을 가서 책을 읽다가 프랑스 문화학자 롤랑 바르트의 ‘주이상스(Juissance)’ 이론을 접하게 된다. 이 이론은 오금이 저리고 넋이 나가는 현상을 설명하고 있는데, 현실세계를 벗어나 또 다른 층위의 세상으로 진입해 전혀 새로운 몰아지경에 빠져드는 이 경험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자유의 기회이자 해방의 순간이라는 것이다. 주이상스는 몸이 갖고 있는 물질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수용자의 몸에서 찾아볼 수 있는 관능성인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그 정점은 오르가슴의 순간과 맞닿아 있다. 성적 오르가슴은 몸이 모든 사회와 문화적 영역을 초월했을 때만 가능한 개념이다.
    이 지각적 경험은 훗날 영화를 가르치면서 아주 소중한 비판적 자산이 되기도 했다. 음악이 듣고 느끼는 직접적인 지각적 자극이라면, 영화는 보고 느끼고 생각하게 만드는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음악이 영화에 비해 감성을 더 직접적으로 생산해 청중을 그 정서적 상태에 머물게 만드는 경향이 강한 반면, 영화는 한걸음 더 나아가 영화에서 자극받은 느낌의 강도가 관객의 현실세계와 연결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을 갖고 있었다. 음악도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그대’가 그리운 것은 그대가 아니라 ‘그때’가 그리운 것일 수 있듯이 음악이 시대와 사건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원용진 교수는 20년 넘게 미디어 학자ㆍ운동가로 활동해왔다. ‘문화 연구’의 자기 성찰적 ‘메타 연구’를 촉발한 데는 원용진 교수의 논문이 일조를 했다. ‘문화 연구’의 정체성을 묻는 의제를 던지고, 사회변혁 운동의 참여를 ‘문화 연구’의 목적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한국 자본주의 사회의 변혁 특히 대중의식과 대중 생활의 변혁에 기여할 가능성을 문화연구자가 모색하자는 제안이었다. 그러면서 ‘문화 연구’가 아카데미 너머를 바라보고, 그곳에서 학문적 성패 여부를 찾자고 역설했다.
    원용진 교수는 1998년 시민사회 운동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뎠다. 직접 조직을 만들고, 조직적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라는 이름의 문화운동 단체 설립에 힘을 보탰는데, 동인지 성격의 진보적 문화이론지 '문화/과학' 편집인이 중심이 되어 만든 조직이었다. 문화 이론에 관심을 가지며 이론과 실천의 이분법적 도식에 불만을 느껴왔던 연구자와 운동가가 한데 모여 벌인 일이었다. ‘문화연대’는 서태지, 이승환, 조용필 팬클럽 등과 함께 가요순위 프로그램 폐지를 위한 범시민적 운동을 펴나갔다. 이때 같이 활동했던 시민들은 자신의 활동을 사회봉사 활동으로 이어갔고, 가요순위 프로그램 담당자와 함께 연예 영역이 지닐 수 있는 사회적 영향력을 같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창근·강준만·조흡·원용진 지음/인물과사상사/256쪽/13,000원

     

    신간 '모든 것이 세일즈다'는 는 원하는 것을 얻고 꿈꾸는 삶을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세일즈’를 제시하며 그 다양한 노하우를 제시한다.

    2조 원 이상의 거래 실적을 올린 뉴욕 최고 부동산 중개인 프레더릭 에크룬드는 저서 '모든 것이 세일즈다'를 통해 누구나 의식하지 않아도 평생 세일즈를 해왔다고 말한다. 예컨대 호화로운 건물을 팔거나, 직장 내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거나, 아이에게 채소를 먹이려고 하거나, 입사 면접을 보거나 하는 식이다. 자신이 가진 것과 상대방이 가진 것을 교환하도록 설득할 때마다 우리는 세일즈를 한다. 때문에 제대로 파는 법을 알 수 있다면 인생의 어떤 거래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강점을 더욱 강화해 궁극적으로 이를 판매하는 방법을 밝힌다. 진정한 자아 발견의 중요성에서부터 당장 수중에 큰돈이 없어도 멋지게 보일 수 있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개성이나 매력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들을 발견해 자신을 알리고 빛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세일즈의 신이 말하는 궁극의 세일즈 원칙

    첫째, 슈퍼스타를 뒤쫓아라
    빨리 성공하고 싶다면 당신이 꿈꾸는 일을 하고 있고 그 분야에서 정상에 있는 멘토를 찾아라. 그를 하루 종일 따라다니며 어떻게 옷을 입는지 보고 어떻게 말하는지 듣고 어떻게 하루를 관리하는지 배워라. 어떻게 그런 자리를 얻을 수 있을까? 이메일은 보내지 마라. 직접 그 스타의 사무실로 찾아가서 관심을 끌고 당신을 받아들이게 만들어라.

    둘째, 수입의 10퍼센트는 옷과 몸단장을 위해 써라
    다른 자기계발서에서는 수입의 10퍼센트를 은퇴를 위해 떼어놓으라고 할 것이다. 이런 조언은 당장 잊어라. 당신의 판돈을 올리고 싶다면 그 돈을 옷에 투자하라. 그러면 더 큰 거래를 따낼 수 있고 곧 더 많은 은퇴 자금을 떼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운동하고, 제대로 먹고, 충분히 자라
    당신도 나처럼 금메달을 원하는가? 게임에서 최고가 되고 싶은가? 잠 , 식습관, 운동은 일의 일부다. 신체적, 정신적 건강은 단지 경주할 수 있게만 해주는 게 아니다. 경주에서 ‘이길’ 수 있게 해준다. 8시간 잠을 자고 이른 아침 운동한 뒤 야채 주스를 들고 체육관을 떠날 때는 세상을 정복할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넷째, 사람들을 웃겨라
    나는 사람들을 처음 만날 때마다 발차기를 하고 사람들은 내가 자신감 넘치고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발차기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특징을 갖는 것, 사람들이 당신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 이 모든 일을 유머와 스타일을 가지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섯째, SNS를 활용하라
    당신이 의사든, 장의사든 당신이 하는 일에 돈을 지불할 사람을 찾아야 한다. 어떻게 찾을까?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집집마다 다니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동시에 여러 집의 문을 열 수 있다. 21세기의 방식인 SNS를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와 관심을 얻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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