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브랜드사인 비자(VISA)가 중국과 일본은 놔두고 한국에 대해서만 수수료를 인상한 것은 한국에 대한 역차별이다. 한국을 봉으로 본 것이다.”
“중국의 카드시장 개방은 비자나 마스터카드에 해당되고 우리 카드사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개방해도 우리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최근 카드업계의 빅이슈인 비자의 수수료 인상과 중국 카드시장 개방에 대해 카드업계의 입장을 대변한 말이다.
비자의 수수료 인상과 중국 카드시장 개방은 별개의 사안이지만 우리 카드사의 국제적인 위상을 드러내 준다.
소비의 80% 이상을 카드로 결제할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카드를 많이 쓰고 그에 따른 서비스가 가장 발달된 나라이지만 ‘우물안 개구리식으로’ 국제 카드시장에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 비자, 10월부터 국제거래수수료 10%~두배 인상
비자의 수수료 인상통보는 지난 4월 28일 각 카드사들에게 인터넷상으로 보낸 뉴스레터를 통해 이뤄졌다.
비자는 뉴스레터에서 오는 10월 1일부터 국제거래수수료를 올리겠다며 수수료 종류별 인상률을 고지했다.(해외이용수수료는 10월 15일부터)
수수료의 종류는 크게 나눠 발급사 쪽에 부과되는 서비스 수수료(Service Fee), 해외이용 수수료(Multicurrency and Single Currency International Service Assessment), 데이터 프로세싱 수수료(Data Processing Fee), 매입사 쪽에 부과되는 서비스 수수료(Service Fee), 데이터 프로세싱 수수료(Data Processing Fee), 해외매입수수료(International Acquiring Fee) 등 모두 6개 항목으로 돼있다.
* 매입사 : 비자카드를 해외에서 이용시 해외카드사나 금융기관이 제휴가맹점으로부터 해당 사용분을 모아 카드 발급기관에 청구하는 금융사
** 발급사 ; 비자카드를 해외에서 사용할 수 있게 발급하는 금융사
수수료는 적게는 10%(해외이용수수료 1%->1.1%)에서 많게는 두 배까지(해외매입수수료 0.1%->0.2%/ 매입사의 데이터 프로세싱 수수료 0.25달러->0.50달러) 인상하는 것으로 돼있다.
◇ "비자의 1년 수수료 수입 3천억원 넘어...이 가운데 소비자부담도 천억원"
수수료는 대부분 카드사가 부담하지만 해외이용수수료는 카드를 해외에서 사용하는 소비자가 부담한다.
예를 들어 해외에서 비자카드로 1,000달러를 결제하면 소비자는 지금까지 10달러를 수수료로 부담해 왔지만 수수료 인상으로 앞으로는 11달러를 부담해야 한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카드사들이 비자에 내는 수수료 총액은 카드사에서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1년에 3천억원이 넘고, 이 가운데 소비자가 부담하는 해외결제수수료가 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비자들이 내는 해외결제수수료가 천억원에 이른다면 이번 비자의 수수료 인상(해외이용수수료 10% 인상)으로 소비자들은 백억원의 돈을 더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 수수료 인상 통보, 동북아에서 중국과 일본은 빠지고 우리나라만...역차별 논란
비자의 수수료 인상통보는 비자 아태지역본부에 속해 있는 나라들에 대해서도 이뤄졌고 인상률은 각 나라에 따라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우리나라에 대한 인상통보가 일방적으로 이뤄졌고, 동북아 3국 중에서 중국과 일본은 빠지고 우리나라에 대해서만 인상한다고 통보가 됐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역차별’, ‘한국이 봉이냐’와 같은 볼멘 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카드사들은 여신금융협회를 중심으로 지금까지 두 차례에 걸쳐 모임을 갖고 대책을 논의했지만 뚜렷한 대책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에서는 비자가 국제 지급결제시장에서 독과점적인 지위를 갖고 있는 만큼 부당가격 인상이라며 공정거래당국에 문제를 제기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국제 지급결제시장에 공정거래법의 잣대를 갖다 댈 수 는 없다는 식으로 갑론을박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일단 비자 측에 수수료 인상에 대해 항의하고 그 결과를 봐가며 단계적으로 대응해 나가기로 했지만 수수료 인상통보가 비자와 각 카드사의 사적인 계약에 의해 이뤄진 것인 만큼 카드사들이 집단적으로 나서 공론화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 "인상통보, 절차상 문제없다... 해외이용수수료. 카드사들이 소비자에게 부담시킨 것"
현 시점에서 비자 측이 수수료 인상통보가 문제 있다고 보고 거둬들일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비자코리아 관계자는 “수수료 인상통보는 카드사와의 계약에 따라 본사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절차상 하등 문제될 것이 없고 중국이나 일본이 인상 대상에서 빠진 것도 사실이지만 시기적으로 다소 늦춰졌을 뿐 곧 인상통보가 이뤄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비자와 카드사들간의 계약은 B2B(기업대 기업) 계약으로 당초 계약을 맺을 때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돼 있는데도 인상을 집단적으로 문제삼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며 “각 카드사들에 대해서는 개별적으로 인상내용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비자는 수수료인상으로 소비자들의 부담이 커진 것과 관련해서도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비자코리아 관계자는 “해외이용수수료 인상으로 소비자들의 부담이 커졌다고 하지만 이 수수료는 비자가 소비자들을 겨냥해 인상하는 것이 아니다. 비자는 카드사들에 대해서만 수수료를 받고 있고 그 수수료에 대해 인상 필요성이 있어 인상했을 뿐이다. 그 가운데 하나인 해외이용수수료를 카드사가 소비자에게 물리고 있는데 이것은 카드사들의 결정에 따른 것이고 비자가 의도한 것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했다.
하지만 아무리 B2B의 사적인 계약이라고 하지만 비자가 일방적으로 수수료 인상통보를 하고 우리 카드사가 그것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은 국제적인 브랜드사로서의 우월적인 지위를 갖고 있는 ‘비자의 횡포’라는 것이 카드업계의 하소연이다.
◇ "1경에 가까운 중국카드시장 개방, 그림의 떡"
해외시장 개방은 항상 우리 기업에게는 기회였고 희소식이었다.
국내 시장이 한계에 이른 시점에 해외로 나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중국 카드시장 개방발표는 예외였다.
국내 카드업계에는 우리와는 상관없는 남의 일로 간주되고 있다.
비자와 마스터카드와 같은 국제 브랜드사에게나 희소식이라는 것이다.
중국이 카드시장을 개방한 것도 비자와 마스터카드가 중국 카드시장 진출을 위해 WTO(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해 승소하는 등 오랫동안 공을 들인 산물이다.
중국 카드시장이 개방돼도 국제 브랜드를 갖고 있지 않은 우리카드사들의 처지가 달라지는 일은 없고 우리카드사가 중국시장에 가서 개방의 혜택을 누릴 일도 없다.
1경에 가까운, 말 그대로 천문학적인 규모의 시장이 개방돼도 우리에게는 그림의 떡인 셈이다.
◇"우물안 개구리로 국제 지급결제시장에 나가려는 노력 기울이지 않은 탓"
일방적인 수수료 인상과 같은 ‘비자의 횡포’를 그대로 당할 수 밖에 없고 중국의 카드시장 개방이 그림의 떡인 현실은 우리 카드사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카드사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만큼 카드 사용이 많고 카드시장이 발달한 나라는 세계에 없지만 국제 지급결제시장에서 우리나라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비자가 수수료를 일방적으로 올려도 그대로 따를 수 밖에 없고 엄청난 규모의 중국 카드시장이 개방돼도 남의 일인 것이 우리 카드사의 현실이다”라고 한숨 지었다.
이것은 남을 탓할 일이 아니다.
우리 카드사들이 우물안 개구리식으로 국내에서만 잘 나가는데 만족한 결과이다.
힘을 모아서 국제 지급결제시장에 나가려는 노력은 기울이지 않았다.
그 값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국제적인 브랜드는 카드사들이 함께 힘을 모아야 가능한 일"
앞으로 이런 상황에 또다시 직면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국제 지급결제시장에 나가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윤종문 여신금융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일본의 ‘JCB’나 중국의 ‘은련’ (银联, UnionPay)처럼 우리나라가 국제적인 지급결제 브랜드를 갖고 있었다면 비자로부터 역차별을 당하거나 중국 카드시장 개방이 남의 일이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늦진 않았다. 다만 국제적인 브랜드를 갖는 일은 비용이 많이 드는 만큼 한두 카드사가 할 수는 없고 비자 등의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카드사가 공동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적인 브랜드를 갖기에 우리 카드업계의 역량이 부족하지는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리에게는 국내에서지만 은행이 공동으로 BC라는 브랜드를 정착시킨 경험이 있다.
BC카드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카드시장이 가장 발달된 나라 중의 하나인 만큼 국제적인 브랜드를 만들기에 우리 카드업계의 역량으로 충분하다. 우리나라의 지급결제 서비스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카드사들이 힘을 모을 생각은 않고 개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국제적인 브랜드는 함께 힘을 모아야 가능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카드사들이 이제라도 국내에서만 잘나가는 우물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국제 지급결제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 고민하고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