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즌 여자프로농구에서 첼시 리(사진 오른쪽)가 남긴 모든 기록과 업적이 취소될 가능성이 높다 (사진 제공=WKBL)
특별귀화를 추진했던 첼시 리가 한국 핏줄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서 한국여자농구계가 발칵 뒤집혔다.
첼시 리와 그의 주변인이 벌인 황당한 '혈통 사기극'에 농구계가 농락당했다는 비판도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아니 뗀 굴뚝에 연기는 나지 않는 법이다. 첼시 리가 여자프로농구 부천 KEB하나은행에 입단하는 과정부터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먼저 남자프로농구와 여자프로농구의 혼혈 선수 영입 제도의 차이를 살펴보자.
남자프로농구에 존재했던 혼혈 선수 제도 하에서는 '하프 코리언', 즉 부모 중 한명이 한국인이고 이 사실이 완벽하게 입증될 경우에 한해 추후 한국 국적 취득을 전제로 국내선수 자격을 부여했다.
전태풍, 이승준, 문태종, 문태영 등 수많은 선수들이 이 제도를 통해 국내선수 자격으로 KBL 무대에서 뛰었다. 이들은 귀화 절차까지 깔끔하게 마무리지었다.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의 혼혈 선수 제도는 KBL보다 광범위하다. 조부모 중 한명이 한국인일 경우 국내선수 자격을 준다고 명시돼 있다. 선수 수급이 여의치 않은 리그 특성상 그 범위를 넓힌 것이다. 그만큼 자격 증명의 절차도 체계적이어야 했다.
그런데 첼시 리 파문의 경우 검증 과정이 체계적이지 않았다.
첼시 리의 에이전트가 처음으로 접근한 팀은 부천 하나은행이 아니었다. 몇몇 구단이 첼시 리의 영입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검증된 서류를 찾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첼시 리에 국내선수 자격을 부여할 수 있는 가족 관계 설명도 명확하지 않았다. 영입을 추진했다가 포기한 한 구단은 에이전트로부터 첼시 리의 아버지가 한국인이라고 전해듣기도 했다. 말이 계속 바뀌었다.
하나은행은 첼시 리의 할머니가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서류를 구해 이를 토대로 영입을 추진했다. WKBL도 법무법인에 의뢰해 검증에 나섰고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의혹은 계속 됐다. 첼시 리 논란이 거셌던 지난해 겨울 한 농구 관계자는 "첼시 리 측이 제출한 서류의 내용만 보면 문제가 없어보인다. 다만 제출한 서류 자체가 위조됐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나"고 말했다. 농구계가 의혹의 시선을 떼지 않았다.
돌아보면 첼시 리 자신이 의혹을 부풀리는 말을 하기도 했다. 첼시 리는 지난 3월 여자프로농구 시상식에서 통역을 통해 "할머니와 아버지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내가 충분히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국말 하기를 노력했다"고 말했다.
당시 첼시 리는 할머니 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한국인이라고 표현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왜냐하면 첼시 리는 부친이 아닌 조모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국내선수 자격을 얻었기 때문이다. 첼시 리 자신은 자신의 가족 관계에 대해 명확하게 알고 있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나은행 구단은 혼혈 선수에 대한 국내 구단의 수요를 겨냥해 벌인 에이전트의 사기극으로 보고 있다. 구단은 "향후 첼시 리와 첼시 리의 에이전트에 대해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하나은행이 위조된 출생증명 서류를 바탕으로 일을 추진한만큼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만약 위조 문서로 최종 판명날 경우 구단주가 사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하나은행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첼시 리는 지난 시즌 평균 15.2점, 10.4리바운드를 기록해 신인왕과 리그 베스트5, 득점상, 야투상, 리바운드상, 윤덕주상(공헌도상) 등 시상식 6관왕을 차지했다. 팀은 첼시 리 영입 효과에 힘입어 만년 하위권에서 탈출,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 모든 기록과 업적도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부정선수가 남긴 기록을 인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WKBL은 조만간 재정위원회를 열어 이 안건을 다룰 예정이다.
하나은행만 괴로운 것은 아니다. 여자프로농구계 전체가 피해를 입었다고 할 수 있다. 2위를 차지한 하나은행에 밀려 순위 한계단 차이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용인 삼성생명, 첼시 리가 활약한 하나은행에 패해 결승 진출 기회를 놓친 청주 KB스타즈 등 할말 많은 구단이 제법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