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 셰익스피어 극장'은 은 일본이 자랑하는 그림책의 거장 안노 미쓰마사가 그린 셰익스피어 전 희곡의 명장면을 담은 화집이다.
37편의 셰익스피어 희곡이 안노 미쓰마사의 격조 높은 그림과 현대 일본의 대표적인 셰익스피어 전문가인 마쓰오카 가즈코의 작품 소개와 함께 담겨 있다.
상상력과 재치에 넘치는 희극들이 거장 안노 미쓰마사의 붓끝을 통해 되살아나 마치 독자들에게 연극의 클라이맥스를 직접 보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안겨준다. 데스데모나의 비탄, 복수에 여념이 없는 햄릿의 고뇌, 관객들의 반감과 공감을 함께 얻는 샤일록, 허풍쟁이 폴스태프, 당나귀 머리의 보텀에게 사랑에 빠진 요정의 여왕 티타니아 등 다채로운 인물들이 극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절묘한 그림으로 묘사되어 있다.
글 끝에 엄선한 한두 줄의 희곡 속 명대사는 셰익스피어 명언집이라고 할 정도로 셰익스피어의 삶과 사회와 인생과 인간에 대한 촌철살인의 관찰력을 보여주는 명대사들이 즐비하다.
책 속으로셰익스피어의 극에는 몇 쌍의 부부와 연인이 나오는데, 그중 가장 강력한 유대로 맺어진 이들은 맥베스 부부가 아닐까? 그런 만큼 인생 최대의 위기에 빠졌을 때 아내의 죽음은 엄청난 타격이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이렇게 시간은 종종걸음으로 하루하루를 걸어가 끝내는 역사의 마지막 한순간에 이른다. 어제라는 날은 모두 어리석은 인간이 먼지가 되는 죽음으로 가는 길을 비쳐왔다. 꺼져라, 꺼져라, 한순간의 등불!” 이 독백을 한 뒤 최후의 일전에 임하지만 맥베스의 생명의 등불은 사실상 여기서 꺼진다. -《맥베스》
사랑이 시작되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하지만 왕도라고 할 만한 사랑의 시작은 첫눈에 반하는 것이리라. 셰익스피어도 이 극에서 ‘사랑에 빠진 사람치고 첫눈에 반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양치기 여자 피비에게 말하게 한다. 아무튼 셰익스피어가 그린 연인들이 사랑에 빠지는 속도는 말할 수 없이 빠르다. 전광석화. 그 대표가 로미오와 줄리엣이고 『좋으실 대로』의 올랜도와 로절린드다. -《좋으실 대로》
질투, 의심, 우정의 결렬, 무고한 죄, 죽음, 천벌 등이 그려지는 전반부의 비극적인 분위기는 16녕의 세월을 거쳐 보헤미아로 옮겨가 밝고 색채가 풍부한 목가적인 세계로 일변한다. 방물장수이자 똘마니 악당인 아우토리쿠스의 노래와 쾌활한 속임수, 퍼디타와 플로리젤의 사랑, 양털 깎기 축제, 그리고 등장인물 전원이 다시 모이는 시칠리아 왕궁에서의 클라이맥스는 헤르미오네 ‘조각상’이 움직이는 순간이다. 재생과 용서와 화해.
『겨울 이야기』는 현실 세계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있을 수 있다고 믿게 해주는 극이다. 다양한 시련을 겪으며 결백은 반드시 증명되고, 오해는 반드시 풀리고, 뿔뿔이 헤어진 사람은 꼭 재회한다는 우리의 궁극적인 바람이 여기서는 이루어진다. -《겨울 이야기》
광포한 야심을 품고 왕좌에 오르는 계단을 피투성이로 만들면서 올라가는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 신체적인 열등감을 발판 삼아 야망의 실현에 박차를 가한다. 정평 있는 악당이면서, 아니 악당이기에 그는 셰익스피어 극의 모든 등장인물 중에서 최고의 매력을 발한다. 이 인물의 경우, 악이란 도덕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함의 표현이자 자기 욕망의 충실한 구현이다. 갖고 싶은 것을, 수단을 가리지 않고 손에 넣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는다. 남에게 끼치는 폐가 극심한 일이라 보통 사람을 할 수 없는 일이다. 아울러 한층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연기력. 그의 훌륭한 연기는 앤에게 구혼할 때만이 아니라 곳곳에서 발휘된다. 그리고 에너지, 기지와 블랙 유머, 그가 전형적인 마키아벨리언으로서 악행을 거듭해가는 모습은 상쾌하기조차 하다. 악이 눈부시게 빛난다. -《리처드 3세》
온통 푸르게 우거진 잎들도 시들기 시작하고 거목이 쓰러지는 것 같은 오셀로의 최후이지만, 그보다 더 참혹한 것은 데스데모나의 마지막 외침이다. “오늘 밤에는 살려줘요. 죽일 거라면 내일 죽이세요.” -《오셀로》
리어 왕이 범한 가장 큰 실수는 애정이라는 계량할 수 없는 것을 재려고 한 일일 것이다. 사람의 진의를 간파하지 못한 점도 있다. ‘보다’ ‘눈’ ‘시력’ 등이 키워드인 『리어 왕』. 그렇게 흐려지는 것이 ‘늙는다는 것’ 자체인지도 모른다. -《리어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