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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우 WKBL 총재 (사진 제공=WKBL)
지난 시즌 여자프로농구에서 신인왕, 베스트5 등 개인상 6관왕을 차지했고 부천 KEB하나은행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던 첼시 리는 알고 보니 '부정선수'였다. 한국계가 아닌데도 국내선수 자격으로 뛰었다.
타 구단들의 끊임없는 의혹 제기에도 불구하고 하나은행은 첼시 리 영입을 강행했고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은 승인했다. 그것도 모자라 WKBL은 첼시 리의 국가대표 특별 귀화를 추진했고 위조 서류가 발견되면서 망신을 당했다.
나라로 비유하면 국가 비상사태다. 한국 프로스포츠에서 전대미문의 사태다.
WKBL은 지난 16일 재정위원회에 이어 22일 이사회를 개최했다. 이사회는 구단주를 대신해 6개 구단 단장들이 참석하는 최종 의사결정 기구다. 그런데 징계와 후속조치가 바로 결정되지 않았다. 내달 5일 다시 한번 이사회를 열고 최종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하루 빨리 철퇴를 내리고 대책을 내놓아도 모자랄 판에 최종 결정을 미룬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는 신선우 WKBL 총재와 6개 구단 단장들이 함께 떠나기로 예정된 미국 연수와 무관치 않다. 그들은 지난 25일 미국으로 떠났다.
위기 국면에서 총재와 구단 단장들이 사태 수습과는 거리가 먼 연수를 떠났다는 것에 대해 시선이 고울 수 없다.
취지는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경기를 보고 선진 농구를 배우겠다는 것이지만 지금 한국 여자농구가 처해 있는 위중한 상황을 볼 때 '한가한' 소리로 비쳐진다.
하나은행 단장도 이번에 동행했지만 이들의 일정에는 첼시 리를 만나는 계획조차 없다. 사실상 외유를 떠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2년 전 미국프로농구(NBA)에서는 뜻밖의 인종차별 사태가 벌어졌다. LA 클리퍼스의 전 구단주 도널드 스털링이 여성과 대화를 나눈 녹취록이 공개됐는데 그 안에는 충격적이고 수준 이하의 인종차별 발언이 담겨 있었다.
여론이 들끓었다. 아담 실버가 NBA 총재로 부임한 지 두 달 만에 벌어진 일이다. NBA는 주저하지 않았다. 녹취록이 공개된 후 스털링 전 구단주를 영구제명하고 구단을 강제 매각하며 NBA가 내릴 수 있는 최대치인 25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한다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정확히 3일이 걸렸다.
NBA는 스털링의 인종차별 발언을 심각한 사태로 받아들였고 즉각 대응한 것이다. 3일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사태 파악과 대응책 논의, 갑론을박의 과정이 생략됐을까? 징계안의 수위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검찰이 첼시 리가 특별귀화 심사를 위해 제출한 문서 중 2건이 위조됐다고 발표한 지 12일이 지났다.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는 문서 위조가 최종적으로 판명된다면 구단주가 사임할 것이라는 하나은행의 입장과 해외동포선수 규정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WKBL의 입장이 전부다.
NBA의 신속한 대응과 비교할 때 분명 문제가 있다. 특히 구단주 사임은 허울 뿐인 인사 조치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여자프로농구 특성상 구단주는 모기업의 고위 간부가 맡는다. 구단주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일 뿐 모기업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요즘 하나은행과 WKBL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려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첼시 리와 에이전트가 벌인 사기극의 피해자라는 것이다. 가장 큰 잘못은 첼시 리와 에이전트가 한 것이 맞다.
만약 타 구단의 의혹 제기가 전혀 없었던 가운데 이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피해자 코스프레'가 통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하나은행이 첼시 리를 영입하려고 했던 순간부터 끊임없이 문제 제기가 이뤄졌다. 그때마다 WKBL은 아무 문제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WKBL과 하나은행은 피해자가 아니다. 여자프로농구 팬들에 배신감을 안겨준 가해자다. 그런 관점에서 심각하게 이번 사태를 다뤄야 하지 않을까. 지금이 미국에서 WNBA를 관람할 때인지 다시 한번 돌아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