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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미래는 평신도에 달려 있다- 에라스뮈스

책/학술

    기독교의 미래는 평신도에 달려 있다- 에라스뮈스

    신간 '기독교의 역사'

     

    에라스뮈스의 '그리스도인 군사의 지침서'의 많은 특징이 특히 흥미롭다. 첫째, 에라스뮈스는 기독교가 미래에도 살아남을 것인가가 성직자가 아니라 평신도에게 달려 있다고 이해한다. 그는 성직자들을 교육자로 보면서, 평신도가 성직자와 같은 수준의 이해를 갖게 하는 것이 성직자의 기능이라고 본다. 성직자에게 그들이 맡고 있는 평신도보다 우월한 지위를 영원히 부여하는 미신이 들어설 자리는 전혀 없다. 둘째, 에라스뮈스는 내면의 종교를 아주 강조하는데, 이는 결국 기독교를 교회와 무관한 것으로, 곧 교회의 의식이나 사제나 제도와 무관한 것으로 이해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에라스뮈스는 죄를 하나님께 직접 고백할 수 있는데, 굳이 다른 사람에게 고해해야 할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 종교는 개인의 마음과 생각에 관한 문제다. 그것은 내면 상태다. 분명 에라스뮈스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다룬 그의 강설에서 성례(성사)에 관하여 어떤 의미 있는 언급도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는 '종교인의 삶'(다시 말해 수도사나 수녀가 되라는 부름)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고매한 형태라는 견해도 무시해버린다. 에라스뮈스는 성경을 읽는 평신도도 여느 수도사만큼 자기 소명에 신실한 사람이라고 본다. _289쪽

    신간 '기독교의 역사'는 기독교의 과거·현재·미래를 객관적 시각에서 개관한 책이다. 기독교 신앙의 등장과 확산에서부터 20세기 남미·아프리카·동아시아 기독교의 성장 그리고 인터넷 시대의 교회까지. 특정 교파의 시각에 갇히지 않고 전 세계 주요 기독교 분파의 흐름과 운동을 두루 아우르며 2천 년 기독교 역사의 이정표를 빠짐없이 서술했다. 사회적, 정치적, 지적 현상인 기독교가 당시의 세계에 미친 영향을 꼼꼼히 분석한다. 뿐만 아니라, 예술과 건축, 자연과학에 남긴 유산까지도 세세히 다루고 있다.

    이 책은 기독교의 3대 줄기인 가톨릭, 개신교, 정교회의 발전 과정을 추적하고 기독교가 등장한 맥락과 함께 기독교와 유대교의 관계도 꼼꼼하게 다룬다. 시야를 서구에 한정하지 않고 기독교가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로 확장해 간 내력과 관련 문제들까지 망라하여 다룬다. 국내에 번역된 대개의 기독교 통사의 내용은 대부분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멈추어 있다. 반면 이 책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기독교의 흐름, 즉 세속화된 서구 세계의 신학, 미국의 기독교 우파, 라틴 아메리카 및 아시아 교회의 부흥, 공산권의 몰락, 메가처치 현상, 인터넷상의 예배 등 최근의 현상까지 다룬다.

    저자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기독교 역사의 주요한 이정표들을 골라 서술하는 방식을 택했다. 전문용어와 중요한 신학 논쟁은 빠짐없이 소개하고 설명하면서도, 역사의 세부 내용을 넘어 그 건너편을 바라보려 하면서, 더 광대한 역사 패턴들을 밝혀내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독자가 기독교 역사를 거의 모른다는 전제 아래, 가능한 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저자는 이 책이 '교회사'라기보다는'기독교사'임을 강조한다. 교회사 책은 대개 교파의 제도권 역사에 치중하는 데 반해, 이 책은 기독교의 발전과 그러한 발전이 문화에 끼친 영향을 다룬다. 즉, 교회사의 핵심 테마들을 모두 다룰 뿐 아니라, 기독교가 예술, 문학, 과학과 주고받은 상호작용 같은 문제도 탐구한다. 아울러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20세기 후반 가톨릭교 형성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물론, 같은 시기에 등장한 더 사사로운 차원의 기독교 접근법에서 C. S. 루이스가 차지하는 중요성도 살펴본다.

    이 책은 최근에 나온 가장 훌륭한 문헌들을 기초로 삼아 집필되었다. 이 책에서는 세부 사항과 관련된 것이건 더 큰 이슈와 관련된 것이건 옛 교과서에서 발견되는 오류를 최대한 바로잡았다. 최근의 연구는 전 세계 사람들이 인정하고 옛 책들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던 몇몇 주장을 폐기하거나 완전히 바꿔놓았는데, 이를테면 '중세 후기에는 종교가 쇠락했다' 같은 주장이 그렇다. 이 책은 이렇게 정설처럼 굳어진 오류들을 바로잡는 동시에, 독자를 독려하여 사실이나 사물을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보도록 한다.

    책 말미에는 84개의 ‘기독교 용어 해설’, 항목 수가 1,800개에 이르는 색인을 수록해, 관심 있는 내용을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본문에는 43컷의 도판을 수록했다.

    책 속으로

    스콜라신학에 관한 그릇된 설명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것 중 하나는 이 신학이 얼마나 많은 천사가 핀 꼭대기 위에서 춤출 수 있는가를 토론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주장은 17세기에 나왔는데, 중세의 어떤 문헌에서도 이런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고 중세 저술가들이 천사와 관련한 많은 문제를 토론했음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아퀴나스는 천사에 관하여 자세한 신학을 제시하면서, 천사들을 확실히 구별되는 아홉 유형으로 구분하고, 이 천사들을 수직 위계 구조로 배열했다. _224쪽

    에라스뮈스의 '그리스도인 군사의 지침서'의 많은 특징이 특히 흥미롭다. 첫째, 에라스뮈스는 기독교가 미래에도 살아남을 것인가가 성직자가 아니라 평신도에게 달려 있다고 이해한다. 그는 성직자들을 교육자로 보면서, 평신도가 성직자와 같은 수준의 이해를 갖게 하는 것이 성직자의 기능이라고 본다. 성직자에게 그들이 맡고 있는 평신도보다 우월한 지위를 영원히 부여하는 미신이 들어설 자리는 전혀 없다. 둘째, 에라스뮈스는 내면의 종교를 아주 강조하는데, 이는 결국 기독교를 교회와 무관한 것으로, 곧 교회의 의식이나 사제나 제도와 무관한 것으로 이해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에라스뮈스는 죄를 하나님께 직접 고백할 수 있는데, 굳이 다른 사람에게 고해해야 할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 종교는 개인의 마음과 생각에 관한 문제다. 그것은 내면 상태다. 분명 에라스뮈스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다룬 그의 강설에서 성례(성사)에 관하여 어떤 의미 있는 언급도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는 '종교인의 삶'(다시 말해 수도사나 수녀가 되라는 부름)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고매한 형태라는 견해도 무시해버린다. 에라스뮈스는 성경을 읽는 평신도도 여느 수도사만큼 자기 소명에 신실한 사람이라고 본다. _289쪽

    그렇다면 칼뱅이 전개한 중심 사상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되고 통일된 신학 체계를 성경에서 끌어낼 수 있고 성경에 기초하여 변호할 수 있음을 철두철미하게 강조한 점이다. 논쟁의 소지가 있긴 하지만, 칼뱅이 개신교에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은 어떤 특정 교리가 아니라, 성경이 어떻게 하여 기독교 신앙과 구조를 확실히 이해하게 해주는 기초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실증해 보인 점이다. 특히 칼뱅은 신약성경이 우리가 변호할 수 있는 어떤 독특한 교회 질서를 제시한다고 주장한다. 칼뱅의 신학은 루터의 신학과 많은 점에서 비슷하지만, 루터와 츠빙글리가 심히 격렬한 다툼을 벌였던 문제, 즉 성찬의 빵과 포도주에 그리스도가 실제 임재하시는가 하는 문제에서는 교묘하면서도 딱히 어느 편을 들지 않는 신학적 견해를 취했다. _372쪽

    개신교의 중심이 성경임을 고려할 때, 이런 새로운 흐름은 성경을 '신앙고백'(성경의 어떤 본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에 자주 영향을 미치고 때로는 결정하기까지 했던 신앙 선언)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읽는 경향이 생겼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더 중요한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변화는 성경 속의 어느 본문을 맥락과 상관없이 따로 떼어내 종종 다툼거리가 된 신앙고백 속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써먹는 '본문 증거삼기(proof-texting)'가 등장케 되는 요인이 되었다. 희한한 모순이지만, 이런 사태 진전은 실상 개신교 안에서 성경의 영향력을 떨어뜨렸다. 성경이 하는 말이 교리 체계를 결정하거나 심지어 기존 교리 체계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거꾸로 기존 교리 체계에 성경이 하는 말을 뜯어 맞췄기 때문이다. _403쪽

    비스마르크가 권위를 앞세워 독일 가톨릭교를 억압한 조치들은 실패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조치들은 종교의 활동과 영향력을 억누르고 싶어 했던 독일의 다른 재상들에게 어떤 틀을 제공해주었다. 제3제국 시절에 아돌프 히틀러가 개신교와 가톨릭교를 무력화하려고 펼친 전략들은 비스마르크의 정책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권위주의 맥락에서 펼친 바로 그 정책이 전체주의 맥락으로 그대로 옮겨간 셈이다. _505쪽

    하지만 이제 와 돌아보면, 선교 방향을 재설정하고 다시 검토해봐야 할 필요성이 커지던 때에, '1910년 에든버러 세계선교대회'는 개신교의 기존 선교 패러다임을 오히려 더 강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세계는 변하고 있었다. 새로운 선교 전략과 접근법이 분명 필요했다. 이 대회가 채택한 선교 접근법은 무엇보다 유럽과 북아메리카에는 완전히 복음을 받아들여 상당한 동질성을 지닌 기독교 세계가 존재한다는 지배적 가설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_5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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