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동화를 원작으로 하는 소설을 집필하는 미국의 소설가 캐서린 터전은 '인어공주: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를 통해, 인어와 왕자, 그리고 인간 공주 사이의 새롭고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를 강렬하고 아름답게 그려냈다. 원작에서 인간 공주는 잠깐 등장해 왕자의 사랑을 차지하는 주변 인물일 뿐이지만, '인어공주: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속에선 인어공주와 소설 분량의 절반을 나누어 갖는 중심인물이 된다. 삼각관계에 처한 두 여인 사이의 우정과 교감, 해저 세계와 지상 세계를 넘나드는 이야기가 중세를 배경으로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북국의 공주 마르그레테는 적국인 남국의 침입에 대비해 세상의 끝, 왕국 북쪽 끝자락의 수녀원에 은신해 있다. 우울한 마음에 해변으로 연결되는 계단 앞에 나와 바다를 바라보던 그녀에게 불현 듯 하얀 섬광처럼, 빛나는 은빛 꼬리가 보인다. 그리고 이내 여자의 얼굴이, 달빛 머리칼과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피부와 은빛 꼬리를 가진 인어가 보인다. 책으로만 알던 인어가 나타나자 당황하는 마르그레테. 육지로 다가오는 인어의 품에는 한 남자가 안겨 있다. 곧 “이 사람을 구해줘. 지금 이리 와줘” 하는 인어의 목소리가 들린다. 세찬 바람을 뚫고 달려가지만 인어는 이미 떠난 뒤다. 마르그레테는 바다로 걸어들어가 인어를 찾으며, 절망 속에 속삭인다. “돌아와.” 그것이 인어공주 레니아와 인간 공주 마르그레테의 첫 만남이다. 마르그레테는 왕자보다 인어를 먼저 만났다.
바다 여왕의 막내딸 레니아는 열여덟 살 생일에 지상 세계를 구경하러 갔다가 북국 왕자 크리스토퍼의 목숨을 구한다. 왕자를 뭍에 내려놓고 멀리서 인간 소녀에게 도움을 구한 뒤 바닷속으로 돌아온 후에도 레니아는 왕자를 잊지 못한다. 결국 레니아는 바다 마녀 시빌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주고 사람의 다리를 만들어줄 물약을 얻는다. 우여곡절 끝에 사람의 몸으로 남국의 성에 도착한 레니아는 크리스토퍼 왕자를 만나고, 그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행복한 나날도 잠시, 곧 왕자도 몰랐던 그의 정혼자가 나타난다. 그녀는 바로 북국 왕의 유일한 후계자 마르그레테 공주다. 그렇게, 사랑을 위해 인간이 된 인어 레니아, 조국의 평화를 위해 목숨을 건 공주 마르그레테, 두 여인 사이에 서게 된 크리스토퍼 왕자. 세 사람은 알 수 없는 운명의 흐름에 휘말린다.
캐럴린 터전은 '인어공주: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에서, 왕자와 결혼하는 인간 공주에게 당당히 주인공의 한 자리를 내어준다. 덕분에 소설은 지상 세계와 해저 세계 둘 모두를 충분히 아우르며 보다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선사한다. 땅과 바다가 하나였던 지난 시절 한 종족이었던 인간과 인어가 어떻게 단절되었는지, 그후 그들이 얼마나 서로를 갈망하며 살아왔는지. 캐럴린 터전이 새롭게 창조해낸 두 세계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RELNEWS:right}.
캐럴린 터전 지음/정숙영 옮김/문학동네/368쪽/ 13,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