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11시 42분. 서울에서 차를 타고 200km를 달려 강원도 인제군 미시령로에 진입하자 휴대폰에서 강한 진동이 울린다. '포켓몬 고' 실행 화면에 포켓스탑과 함께 각종 포켓몬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동로에 나타난 '콘팡(Venonat)'을 터치한 뒤 몇 번의 실행착오를 거쳐 몬스터 볼을 던지자 첫번째 몬스터 포획에 성공.잠시 후 '십이선녀탕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주변을 탐색하자 곳곳에 숨어있던 포켓몬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멀리 십이선녀계곡 방향에 포켓스탑이 감지됐지만 거리가 멀어 아쉽게도 접근을 포기해야 했다.
강원도 미시령로에 진입하자 '포켓몬 고' 게임 앱의 GPS가 반응하기 시작하고 곳곳에서 포켓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진=김민수 기자)
취재팀이 미시령로 '십이선녀탕 휴게소'에서 포켓몬을 잡는 모습 (사진=김민수 기자)
◇ 속초 인접한 미시령 접근하자 포켓몬 곳곳에 나타나오후에 접어들어 속초에 이르자 GPS가 잡히면서 멀리 유명 리조트와 관광지, 해수욕장을 중심으로 포켓몬들의 거처와 몬스터 볼, 알을 받을 수 있는 포켓스탑이 나타나고, 주요 지점에 위치한 체육관에서는 트레이너들의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포켓몬 고 게임이 시작되자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기자의 레벨은 아직 3에 그쳐있지만 마음은 이미 포켓몬 트레이너가 된 기분이었다.
속초 시내 초입에 위치한 대명콘도 델피노에 위치한 '스톤헨지'에는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휴대폰을 들고 포켓몬 사냥에 여념이 없다. 마침 지난 11일부터 이곳에서 '한국컴퓨터그래픽스학회'가 열리고 있어 800여명의 학회 관계자와 관련 학과 대학생들, 휴가차 여행 온 사람들은 물론 콘도 직원들도 점심시간 짬짬이 스톤헨지 '체육관' 주변을 돌고 있었다.
학회에 참가하기 위해 리조트에 묵고 있다는 대학생 신지환(25·광운대)씨는 "속초에서 포켓몬 고 게임이 실행 된다는 소식이 알려지기 전에 먼저 속초에 오게돼 우연히 게임을 깔았다가 실행이 되서 깜짝 놀랐다"며 "어릴적부터 친숙한 포켓몬 게임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한국에서 먼저 해보게 돼 재미있는 경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함께 온 하완수(25·광운대)씨도 "이 곳에 있는 사람들이 아침 저녁으로 포켓몬을 사냥하고 있어 게임의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면서 "포켓몬이라는 친숙한 게임 캐릭터가 게임의 몰입도를 높여준다"고 말했다.
이는 인근 한화 쏘라노 리조트와 설악 워터파크도 마찬가지다. 실시간으로 체육관 관장이 바뀌는 치열한 격전이 펼쳐졌다.
학회에 참가하기 위해 리조트에 묵고 있다는 대학생 신지환(25·광운대)씨와 하완수(25·광운대)씨가 체육관인 스톤헨지 조형물 앞에서 게임을 시현하고 있다. (사진=김민수 기자)
포켓몬 사냥꾼이라고 밝힌 대학생 윤성원 씨와 신하늘 씨
◇ 속초 시내 포켓스탑·체육관 주변에 몰려드는 포켓몬 사냥꾼들속초 시내로 들어서자 곳곳에서 휴대폰을 보며 이동하는 젊은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나타났다.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선 한 유명 물회집 입구에는 '포켓몬 GO 트레이너들아 모여라!!' 라는 안내표지를 걸고 함께 운영하는 카페의 음료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있었다. 대기하는 가운데 이 근방에서 최고 격전지로 꼽히는 '속초엑스포타워' 쪽을 모니터링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포켓몬 사냥꾼들이 속초로 대거 몰려 매진사례를 빚고 있다는 루머를 따라 속초 시외버스터미널을 거쳐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평일인데다 아직 본격 휴가철이 아니어서인지 그리 붐비는 모습은 아니었다. 포켓스탑과 체육관이 위치한 고속버스터미널에 이르자 휴대폰을 들고 포켓몬을 사냥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만난 것은 이 지역 초등학생들. 학교를 마치고 유일하게 휴대폰을 가진 친구를 따라 함께 온 초등학생들은 오히려 취재진에게 '게임을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취재진의 질문에도 아이들은 이곳 저곳을 뛰어다니며 포켓몬 잡기에 여념이 없다.
서울발 버스가 한 대가 도착했다. 방학을 맞아 서초고속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해 포켓몬 사냥을 위해 왔다는 대학생 윤성원 씨와 신하늘 씨도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휴대폰을 들었다. 포켓몬과 체육관이 등장하자 손놀림이 바빠졌다.
신 씨는 "서울고속터미널에서 12시에 출발했는데, 오전에 표가 매진되고 오후 표도 슬슬 빠지기 시작했다"며 "어젯밤에 속초로 가자고 결정하고 즉흥적으로 왔는데, 찜질방에서 지내면서 포켓몬을 잡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윤 씨는 "지금까지 나온 AR 게임 버전 중에서는 단연 최고인 것 같다"며 "다양한 곳을 돌아다니며 포켓몬을 잡을 수 있는 것이 흥미롭고, 내 자신이 캐릭터가 된 것 같아 더 재미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 씨는 그러나 "일부 유저들 중에는 'Fake GPS'라는 모의 위치 주행 앱을 이용해 속초가 아닌 지역의 안방에 있으면서 포켓몬을 잡고 레벨을 올리고 있다"면서 "포켓몬 고는 유저가 직접 일정한 거리를 이동하며 캐릭터를 키우는 게임인데, 일부 고렙자들은 이런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Fake GPS'는 실제 자기 GPS 위치를 다른 국가나 특정 위치로 변경하는 앱으로 일부 포켓몬 고 사용자들이 자신의 GPS를 미국이나 유럽, 속초 지역으로 설정한 뒤 게임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범죄에 악용될 수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한편, 윤 씨와 신 씨는 5레벨을 찍어야 관장에 도전할 수 있기 때문에 터미널 쪽에서 레벨업을 우선 한 뒤 다른 곳으로 이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게임을 잘 할 수 있는 팁에 대해서는 카카오톡이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다양한 정보가 올라오고 있어 이를 잘 활용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귀띰도 했다.
한 유명 물회집에 등장한 포켓몬 고 트레이너 혜택제공 안내문 (사진=김민수 기자)
전동휠을 이용해 다른 사용자의 알을 부화시켜주고 포켓몬을 사냥해 레벨업 시켜주는 이색 대행업이 등장했다. 이들은 즉흥적으로 게임과 관련한 아이디어를 들고 무작정 속초로 향했다고 했다. 문의도 꾸준하다고 했다.
◇ 지역경제 활성화?…틈새시장 노린 '포켓몬 대행업'도 등장포켓몬 고와 같은 증강현실(AR) 게임이 방문객들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주장도 나오는 가운데, 발빠르게 틈새 시장을 이용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른바 '포켓몬 사냥과 알 부화 대행업'이다.
인천에서 왔다는 20대 강대석(가명)씨와 우찬호(가명)는 등에 피켓을 매고 외발 전동휠을 타며 쉼없이 움직였다. 피켓에는 '알 까드립니다! 1Km=1000원'이라고 쓰여 있다.
강 씨는 "포켓몬 고 게임은 알을 부화 하려면 일정 거리를 계속해서 이동해야 하는데, 이런 번거로움을 우리가 전동휠을 타고 다니며 대신 부화시켜드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 씨도 "포켓몬을 잡거나 레벨업이든 알 부화든 시간과 이동하는 노력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빠른 시간 안에 우리가 km당 1000원 이라는 저렴한 노력비용을 받고 이를 대행해주는 것이라 보면 된다"며 "이런 사업이 처음이라 우리도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데, 꾸준히 문의가 들어오는 편"이라고 말했다.
아예 주급제로 맡기고 싶다거나 주말에 속초에 갈 예정인데 주말에도 예약을 받느냐는 등의 문의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주말까지 속초에 머물 예정인 강 씨와 우 씨는 반응이 좋으면 더 오래 있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혼자 차를 몰고 아야진항으로 여행을 왔다는 김성우(28)씨는 아예 속초 일대를 도는 '포켓몬 고' 여행으로 목표를 바꿨다.
속초해수욕장을 찾은 한 피서객이 포켓몬 사냥을 하고 있다.
◇ '포켓몬 GO 속초 GO' 여행자 급증…피서왔다 포켓몬에 빠진 사람들지난 8일 개장한 속초해수욕장에도 해수욕을 즐기러 온 관광객들 속에 해변가 주변에 휴대폰을 들고 이곳 저곳을 다니는 사람들이 목격됐다. 아직은 이런 모습이 익숙하지 않은지 함께 온 지인들과 혹은 개별적으로 조용히 움직인다. 혹시나 해변의 비키니 몰카로 오해를 받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러워하는 눈치다.
서울에서 혼자 차를 몰고 아야진항으로 여행을 왔다는 김성우(28)씨는 해변도로 일주를 계획했다가 포켓몬 고 게임이 열풍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속초 일대를 다니며 게임을 즐기는 여행으로 목표를 바꿨다.
속초해수욕장에서 만난 김 씨는 "오늘 속초에 왔는데, 다니다 보면 두 명 중 한 명은 포켓몬 고를 하고 있을 정도로 인기인 것 같다"며 "어릴 때부터 친숙한 포켓몬 게임을 이런 방식으로 실제 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초능력계 '슬리퍼'를 보유하고 있다는 김 씨는 체육관을 여러 번 점령해보기도 하고 관장을 하면서 뿌듯한 기분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 씨는 "속초가 정말 핫플레이스가 된 것 같다. 여행도 오고 포켓몬이 나타나는 상점이나 식당도 찾아가고 지역경제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속초에서 포켓몬 고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속초엑스포타워에는 청초호수 주변 산책로를 돌거나 타워 중심부에서 자리를 잡은 채 포켓몬을 사냥하거나 레벨 업그레이드를 하는 여러 무리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데 게임 앱 상에서는 실시간으로 체육관을 점령하기 위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레벨5 이상이 되면 체육관에 들어가 3개의 팀 중 하나에 가입해 자신의 포켓몬으로 상대와 대결을 펼쳐 승리하면 체육관을 점령할 수 있다. 이른바 '관장'이 된다.
대구에서 포켓몬 게임을 하기 위해 직장 동료와 함께 새벽 4시에 도착했다는 직장인 안수진(가명·28·여)씨는 "속초에 12시간째 머물고 있는데, 게임도 하고 물회도 먹고 관광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아직 레벨이 높지 않지만 귀여운 포켓몬을 수집하기 위해 다니고 있는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어둠이 내리자 속초 청초호수공원 근처로 포켓몬 고 게임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사진=인석진 인턴기자)
어둠이 내리자 속초 청초호수공원 근처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포켓몬 고 게임을 하고 있다. (사진=인석진 인턴기자)
◇ 저녁시간·주말들어 게임 즐기는 직장인·가족·학생·피서객 늘어
어린 아이들과 함께 '격전지'를 찾은 30대 젊은 부부도 만날 수 있었다.
휴가차 왔다가 뉴스에서 화제가 돼 궁금해서 엑스포타워에 들러봤는 김주연(가명·여)씨는 "게임은 잘 안하는데 속초에 왔다가 포켓몬이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해서 이곳에 와보게 됐다"며 "포켓몬 11마리를 잡았는데 아직 레벨이 3이다. 할 줄은 모르는데 포켓몬이 어릴적부터 친숙했던 캐릭터라 호기심에서 해보게 됐다"고 말했다.
남편 이주석(가명)씨도 "여행 왔다가 우연히 아이들이 포켓몬에 관심이 있어 해보게 됐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안 된다고 해 호기심에 와본 것"이라며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무더운 더위가 가시고 저녁 땅거미가 지자 퇴근한 직장인, 아이들과 함께 산책겸 나온 가족, 학생들, 뒤늦게 합류한 피서객들이 휴대폰을 켜고 '핫 플레이스'를 배회하며 포캣몬을 수집하는 모습이 더 늘어나고 있다.
본격 피서철과 주말이 다가오는 15일부터는 더 많은 사람들이 속초를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학교 방학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피서지와 바다 관광지로 유명한 속초는 당분간 '성지순례' 코스로 포켓몬 트레이너들의 발길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