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사람의 인생이 시험으로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매년 65만 명 이상의 학생들이 전국적으로 똑같은 날,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문제로 출제되는, 국가 관리 시험인 수능을 본다. 그날에는 교통이 통제되고, 전국의 거의 모든 교회, 사찰에는 합격을 기원하는 학부모들이 가득 찬다. 학생들은 시험에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12년 동안 집에서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하루 종일 학교와 학원을 오간다. 심지어 잠자는 시간도 줄이면서 공부를 하게 된다. 시험에 대한 한국 사회의 맹신과 강박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 한국 사회에서도 큰 문제가 될 것이라는 점에 세계적으로 이견이 없다.
이러한 시험 제도는 모든 국민은 교육의 권리를 갖는다는 소중한 헌법적 가치마저 훼손한다. 시험 제도는 아이들에게 적절한 교육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점수와 등급을 매겨 서열화하고 그들의 인생에 낙인을 찍어 차별과 무관심, 무기력에 내몰리게 한다. 이것은 우리 사회를 위협하고 있는 극단적인 엘리트주의, 출세주의, 이기주의, 불공정한 분배를 더 널리 퍼뜨리고 심각하게 만든다. 아이들을 분리하고 서열화하고 경쟁심만 부추기는 시험은 결코 교육의 역할에 맞는 평가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현상을 멈추게 하고 우리 앞에 있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대안을 마련하려 노력하기 시작했다.
신간 '성장과 발달을 돕는 초등 평가 혁신'은 바로 그러한 교육적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혁신학교에서 지난 5~6년 동안 초등학생 어린이들의 성장과 발달을 돕는 평가를 실천해온, 현장 교사 8명이 자신들의 지혜와 경험을 모아 놓은 최초의 결실을 담고 있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공교육은 가르침과 배움의 상호작용을 통해 아이들의 잠재적 능력을 발전시키는 것에 목표가 있으며, 바로 그러한 잠재적 능력과 실제 능력 사이의 차이인 근접발달영역을 창출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는 관점을 이론적으로, 실천적으로 일관되게 전개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저자들은 과감하게 진단평가를 진단활동으로 대체하고, 아이들의 잠재력을 서술하고, 발전 방식에 대해 학부모와 함께 모색하는 평가 혁신의 여러 사례들을 독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평가는 시험이 아니며 교육과정과 수업의 연장으로서 아이들의 잠재력을 측정하고 적절한 조언을 제공한다는 원래의 목표를 되살리는 첫걸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으로발달적 교육관은 학교교육의 주목적이 학습자의 잠재성과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데 있다고 본다. 학교의 중심 과제는 모든 학생이 성장하여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잠재 능력을 키워 주는 것이다. 발달적 교육관은 교육을 통한 인간의 변화와 발달 가능성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태도를 취한다. 적절한 교수-학습 방법과 개인의 노력에 따라 학교에서 달성하고자 하는 교육목표를 거의 모든 학습자가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p. 24
학생들을 줄 세우기 위한 평가가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지원하기 위한 평가다. 평가의 객관성이라는 명분하에 교사를 옭죄고 있는 신뢰도, 변별도, 이원목적분류표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성취기준에 도달한 정도를 평가한다는 것은 정상분포를 가정하고 있지 않다. 100% 도달할 수도 있고, 100%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비정상분포를 가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많은 교사가 '객관성'이라는 자기 검열 속에서 상위 30%, 중위 50%, 하위 20% 같은 정상분포를 가정하고 평가 결과를 기록한다. 평가의 객관성이라는 것은 성취기준에 도달하지도 못했는데 교사의 '사심'이 개입되어 도달했다고 평가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지, 어떤 절대적인 객관성을 입증하라는 것이 아니다. 또한 학생 한 명 한 명에 대한 평가이지 학생들을 서로 비교하기 위한 평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성장과 발달을 돕는 평가는 ‘형식적 틀’로 강제되고 있는 '객관성'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pp. 29-30
수업 혁신이 나아갈 방향은 대체로 학생의 발달을 위해 수업 과정에서 근접발달영역을 창출하고, 차시 수업에서 단원, 주제별 긴 호흡으로 가는 수업, 학생들의 토론, 참여, 배움이 가능한 다양한 교수-학습 방법이 적용되는 수업, 체험-탐구-표현을 담는 수업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p. 73
이 시기에는 사물, 자연과 접하면서 느끼는 것이 감각이자 생각으로 발현되므로 활동에 몰입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보고 느낀 것을 자기 수준에서 표현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이때 주의할 것은 감각적으로 표현한 자체를 받아들여야지 '너는 어떠니? 무엇을 보았니? 어떻게 보았니' 등 '네 생각이 뭐냐'고 다그치는 것은 오히려 어린이들의 사고를 위축시킬 수 있으므로 주의한다.
이러한 1학년 어린이들의 일반적인 발달 특성과 더불어 요즘 어린이들이 자라 온 환경과 상황을 고려해 학년 교육과정을 계획해야 한다. 요즘은 많은 부모가 태교부터 시작해 어릴 때부터 독서나 언어 교육을 무리하게 시키거나 카드 학습을 지속적으로 시키는 등 일방적이고 편중된 선행 학습을 많이 시킨다. 한글을 해득했다고 해서 어릴 때부터 혼자 책을 읽게 하거나 사고의 여유를 주지 않고 끊임없이 시각, 청각만 자극하는 TV나 교육용 영상에 많이 노출시키는 것에 비해 몸을 움직여 활동하게 하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 결과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초 기능이 부족하고, 몸을 사용하는 능력이 미숙하며, 심하면 초독서증이나 유사 자폐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pp. 134-135
평가 통지문을 통해 수행하는 과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평가 통지문에 어린이가 도달한 성취기준과 발달 정도를 기술하여 안내한다.
② 평가 결과는 단정적인 것보다 잠재력에 중점을 두어 안내한다.
③ 어린이의 행동을 지나치게 꼼꼼히 서술하기보다는 성장과 발달의 관점에서 서술한다.
④ 관찰의 기준은 학습 준비성, 협력성, 수업 참여도, 자발성, 과제 해결력, 이해력, 표현력, 종합력 등으로 하되 어린이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점을 기술한다.
⑤ 학년별, 급별 특성에 맞는 성적 통지 양식을 학교 자체에서 개발한다. 평가 통지 양식은 어린이의 성장과 발달을 위한 자료이다. 따라서 교사에게 업무 부담이 과중되는 문서 작업은 지양한다.
p. 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