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대지를 걷는다. 작열하는 태양, 바짝 달궈진 메마른 땅, 내딛는 자리마다 금세 허물어지는 모래언덕, 온몸을 덮치는 모래바람. 한낮의 사막을 걸으며 지독히 외롭고 고된 시간을 보낸 뒤엔 새벽녘의 지독한 추위와 맞서야 한다. 엄혹한 사막에서는 걸음걸이가 늘어나는 만큼 생각이 깊어진다. 생각이 깊어지면 마침내 생각이 없어진다. 그리하여 마주하게 되는 것은 정작 나 자신이다. 나를 조금씩 더 알아가고, 내팽개친 자신을 추스르고, 스스로와 관계를 회복해간다. 절대 고독의 세계, 사막을 건넌다는 것은 결국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세계 10대 사막 무동력 횡단’에 도전하고 있는 탐험가 남영호는 사막을 걷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사막에서는 고독함과 두려움, 기쁨과 그리움, 죽음, 사랑 등 솔직한 감정들이 끊임없이 스스로를 몰아세우므로 어떠한 가식이나 꾸밈이 없는 본래의 내 모습을 보게 된다. 2006년 230여 일간의 유라시아 대륙 횡단을 시작으로 이후 10년 동안 중국 타클라마칸 사막, 몽골 고비 사막, 아라비아 엠프티쿼터 사막 등 8개의 거대한 사막을 건넌 남영호는 여정 중 자신과 치열하게 싸우고 화해하면서 얻은 결과와 극한의 경험을 통해 배우고 느낀 것들을 '내게 사막은 인생의 지도'에 담았다.
멀리 떨어진 세상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이 가득했던 저자는 궁금한 것들을 기록하기 위해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고, 졸업 후에는 산악전문지 사진기자로 일했다. 그러다 직접 자연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탐험가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유라시아 대륙의 산과 사막, 강을 가로지르던 중 그는 특히 사막에 매료되었다. 사막은 육지의 1/10을 차지하지만 우리가 사막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다. 모두가 산의 정상에 오르려 할 때 그는 수직의 세계가 아닌 수평의 세계를 경험해보기로 했다.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곳이 많은 사막은 저자의 도전 의식을 자극했고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결과보다 과정에서 탐험의 의미를 찾는 저자는 무동력 탐험이라는 특별한 도전을 선택했다. 무동력은 동력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만 이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굉장히 고된 조건인 무동력을 고수함으로써 노를 저어 갠지스 강의 전 구간을 완주하고, 자전거를 타고 중국에서 포르투갈까지 횡단하고, 두 다리로 1,000킬로미터가 넘는 사막들을 건넜다. 2009년 타클라마칸 사막을 시작으로 2015년 칼라하리 사막까지 매년 사막의 부름을 듣고 짐을 꾸려 떠났다. 탐험을 거듭할 때마다 사막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사막과 친해져 갔다.
물론 즐거움과 행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무장강도를 만나거나 물 부족으로 죽음의 얼굴을 보기도 하고, 팀원과의 갈등이나 혹독한 자연을 이기지 못해 발길을 되돌린 적도 있었다. 현지 공안에 감금되기도 하고, 유목민과 반목하기도 했다. 이런 극기와 고행, 외로움과 한계를 시험하는 가혹함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정복과 성공에 대한 성취감 때문이 아니다. 대자연 속에서 자유로움을 느끼고, 길 위에서 조금씩 자신을 더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치열한 탐험의 기록을 통해 쉽게 꿈꾸기 어려운 도전을 실행하는 사람의 원동력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끝없는 호기심과 가슴을 뜨겁게 하는 열정은 우리에게 나이를 먹고 현실에 타협하며 잊어버린 꿈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그의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깊이 있는 그만의 색깔과 사진가로서 탐험의 여정을 기록한 사진은 이 책의 매력을 더한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저자가 우리에게 인생이라는 사막을 무사히 건널 수 있는 지혜를 들려준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사막을 꿈꾸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 싶을 때, 별빛이 쏟아지는 밤하늘과 환상 속의 오아시스를 찾고 싶을 때, 삶의 막다른 골목에 접어들었을 때, 고요한 대지에서 충족감을 느끼고 싶을 때 등의 상황에서 자신만의 사막을 그려본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보통 사막은 꿈으로만 남겨질 뿐이다. 화면 속의 사막이 로망이라면, 실제의 사막은 현실이다.
저자 또한 우연인 듯 필연처럼 사막을 만났지만 그 입구에 서기도 전에 수많은 난관을 넘어야 했다. 주변인의 지지를 얻고 기후, 지리적 특징, 문화, 생태 등 원정 대상지에 대해 철저한 공부와 체력을 병행했다. 가장 큰 문제는 경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사막에 첫발을 내디딘 후에는 고독함과 두려움, 극한의 상황과 싸워야 했다. 20킬로그램이 넘는 배낭을 메고 하루에 40~100킬로를 걷는다. 동결건조식품과 물로만 하루 세끼를 버티고, 한낮에는 최고 50도까지 치솟는 더위를 이겨내고, 밤에는 영하의 추위를 견뎌야 한다. 200미터의 사구를 만날 때도 있고, 온통 흰 눈으로 덮인 사막을 목격하기도 하고, 폭우로 땅이 갯벌로 변한 경우도 있었다.
저자는 수많은 변수와 난관들로 실패와 어려움, 시행착오를 겪으며 무사히 사막을 건널 방법을 깨닫게 된다. 길이 없는 사막에서 위치확인장치에 의지하거나 남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의 길을 잃을 수 있고, 과한 욕심으로 마련한 준비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두려움을 떨칠 용기와 믿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려는 조급함이 앞서면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되므로 인내와 의지를 갖고 느린 걸음으로 꾸준히 걸어야 하고, 어쩌다 만난 반가운 그늘을 과감히 벗어날 결단도 필요하다. 소중한 것에 대한 그리움은 용기를 갖게 하고, 길을 함께 걷는 동료를 존중하고 의지해야 사막을 건널 수 있다. 현실에 좌절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기 확신과 굳건한 의지는 필수다. 스스로 길을 찾고, 두려움 앞에 당당하고 모두가 함께할 때 무사히 사막을 건널 수 있다.
저자가 사막의 풍경과 사람, 기쁨과 괴로움을 오가며 알려주는 사막을 건너는 방법은 인생의 본질과 삶에 대한 태도를 연상케 한다. 황량한 사막을 걷는 과정은 영혼의 여행과 유사하고, 길을 걸으며 깨달은 여러 교훈은 삶의 지혜와 연결된다. 사막을 혹독한 놀이터이자 학교, 인생의 지도라고 말하는 저자는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맨몸으로 부딪혀 알게 된 진리를 우리와 나눈다.
책 속으로
전 세계에는 수백, 수천의 사막이 존재한다. 난 그 사막들을 모두 건너겠다는 욕심을 갖고 있지 않다. 모두 건넌다는 정복자의 성취감 뒤에 밀려올 거부할 수 없는 허망함을 느끼느니 내 앞의 사막을 좀 더 행복하게 만끽하고 싶다.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사막의 이야기를 찾아가고 싶다. 사막은 벌거벗은 내 모습을 마주하게 한다. 어떠한 가식이나 꾸밈이 없는 본래의 내 모습, 그것을 보게 된다. 그 안에서 고독함과 두려움, 기쁨과 그리움, 죽음, 사랑 등 끊임없이 내 안의 솔직한 감정들이 나를 몰아세운다. 사막을 걷는 것은 마치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극한의 공간에서 불현듯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그런 감정들과 치열하게 싸우고, 질문하고, 화해하고, 또 목도한 고민의 결과를 이 책에 담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을 나누고 싶다. 각자의 사막을 걷고 있는 우리 모두와 함께.
―Prologue ‘길을 찾아 떠난 사막’에서
흔히들 “사막을 건너는 건 결국 정신력이죠”라며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묻는데, 그 말이 꼭 틀리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정신력만으로 되는 것이 어디 있는가. 몸이 말을 듣지 않고 눈앞이 노래지며 사구가 지평선을 넘어 뒤집혀 모래가 온통 쏟아질 것 같은 지경에 이르면 정신력은 의미가 없어진다. 사막에서 최적의 걸음걸이를 연구해야 하고 짐을 짊어지는 법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 덜 지치며 걸을 수 있는 체력을 갖춰야 한다. 이런 준비들은 탐험지에 올라섰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 ‘사막을 건너는 법’에서
사구를 마주하며 걸을수록 그동안 보지 못했던 사막의 모습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멋진 곡선과 날이 선 능선의 모습이 다채로웠다. 바람이 만들어낸 모래 위의 물결은 어떤 문양보다 신기하고 독특했다. 다 같은 모래처럼 보였지만 희고 노랗고 붉은, 그리고 검고 어둡고 밝은 결정들이 각각의 모래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아침의 사막과 점심의 사막이 다르고, 저녁의 사막은 또 다른 세계였다. 해가 뜨고 지기까지 변화하는 색 온도와 햇빛의 방향, 바람에 따라 단 한 순간도 같은 모습으로 나를 대하지 않았다. 내가 걷고 있는 사막이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잰걸음으로 땅바닥만 보고 걸었으면 결코 알지 못할 것들이었다.
― ‘사막을 건너는 법’에서
노인은 내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타클라마칸을 넘어 타림 강까지 간다고 하자 허허허 하고 웃었다. 그는 이 사막에서 평생을 살았지만 단 한 번도 그 안으로 들어가볼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이 가장 좋아 어디든 다른 곳으로는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호탄 강이 깨끗한 물도 주고 귀한 옥도 주고 마을엔 나무가 가득해 과일도 열리고 밖으로 나오면 이렇게 양을 키울 수도 있는 이곳이 제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도시로 나가는 젊은 위구르인들을 염려했다. 도시에선 돈을 벌 수 있지만 살기가 너무 힘들고 위구르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곳을 지킬 사람이 없으면 안 된다고도 했다. 노인은 그의 마을을, 사막을, 위구르의 후예들을 염려했다. 사구를 뛰어다니는 저 아이들이 노인 나이가 될 즈음엔 이곳에 누가 남아 있을까.
― ‘사막의 사람들’에서
사막에도 비가 내린다. 축 처져 있던 나뭇가지가 흔들렸고, 나뭇잎과 모랫바닥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둔탁하지만 흥미로운 리듬을 만들었다. 새소리가 요란해지고, 시뻘건 불개미 떼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가시덤불투성이로만 생각했던 그곳에 꽃이 피어나고, 그 뜨거운 틈을 뚫고 새순이 돋아났다. 비가 그치자 대지에 맞닿은 거대한 무지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화려한 엔딩 뒤엔 또 언제 찾아올지 모를 이 순간이 기다려졌다. 사막 비는 또 그렇게 나를 잡아두었다.
― ‘사막의 풍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