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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소, 민중에게 권력을"…흑인 세 자매의 나답게 살기

책/학술

    "옳소, 민중에게 권력을"…흑인 세 자매의 나답게 살기

    신간 '너답게 살아라'

     

    “그건 틀린 거야, 펀.”
    펀이 작은 거북 같은 머리를 깐닥거리며 톡 쏘아붙였다. “맞으니까 건드리지 마.” (……)
    “이래라저래라 시키지 마. 우리는 쓰고 싶은 대로 쓸 자유가 있어.”
    “마침표를 넣고 싶은 데 넣을 자유도 있고.”
    “미스 헨드릭스가 예쁘다고 말할 자유도 있고.”
    “민중에게 권력을.”
    “옳소, 민중에게 권력을.”
    -본문 67쪽

    신간 '너답게 살아라'는 변혁의 열망이 거세게 일었던 1968년, 흑표범당의 본거지 오클랜드에서 특별한 여름방학을 보내게 된 흑인 세 자매의 성장기를 그린 '어느 뜨거웠던 날들'의 후속편이다. 전편에서 오래전에 집을 나간 엄마를 만나기 위해 뉴욕에서 오클랜드까지 날아갔던 델핀과 보네타와 펀. 가족을 버린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엄마 시실과의 만남을 통해 흑인 여성으로서의 주체적인 삶에 어렴풋이 눈뜨고, 흑표범당 여름 캠프에서 자유며 정의 같은 진보적인 가치의 소중함을 배웠던 세 자매가, 이번에는 뉴욕 베드포드-스타이브센트로 돌아와, 1960년대 말 흑인 소녀들의 삶이 생생히 투영된 감동적인 성장기를 펼쳐 나간다.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세 자매가 여름방학을 추억하며 정신없이 수다를 떠는 사이, 비행기는 폭풍우를 만나 덜컹거리며 지상으로 내려앉는다. 이제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흑인이자 여성이자 어린아이라서 견뎌내야 하는 강퍅하고 불친절한 세상, 떠나기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현실이다.

    비행기가 오클랜드에서 이륙하자마자 세 자매는 "저 검둥이 여자애들" 운운하며 삿대질하는 백인 스튜어디스며, 인종차별적인 힐난을 퍼붓는 얼치기 평화주의자 등과 맞닥뜨리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흑표범당 캠프에서 배운 바를 당당하게 실천한다. "이 용변 칸은 민중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옳소!"(본문 13쪽)

    이처럼 진일보한 변화를 이룬 델핀 자매에게 뉴욕의 가족들은 칭찬 대신 꾸중을 퍼붓는다. 특히 백인들이 가득한 곳에서 대단한 구경거리를 만들어서 나무에 목이 매달리는 비극을 맞을까 봐 겁내는 할매는 델핀이 실수로 백인 남자의 신문을 건드리는 장면을 목격하고서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끝내는 따귀를 올려붙인다.

    "델핀, 너 알기나 하니? 공항에서 뛰어다니다가 백인 남자를 쓰러뜨리고, 세상 사람이 다 보는 데서 검둥이가 참 대단한 구경거리를 일으키는 게 무슨 뜻인지?"
    할매가 꾸중을 하면 할수록, 할매가 그 무엇보다 싫어하는 바로 그 구경거리가 점점 대단해졌다. 단 한 사람도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_본문 18쪽

    이처럼 이 이야기는 전편에서 세 자매가 보고 듣고 경험하고 성취한 결실을 무위로 돌리려고 하는 현실에서부터 출발한다. 전편과 정확히 대비되는 이야기의 동선은 이런 면에서 퍽 의미심장하다. '어느 뜨거웠던 날들'이 비행기를 타고 현실에서 날아올라 다른 세상을 구경하고 체험하는 이야기라면, '너답게 살아라'는 꿈만 같았던 다른 세상을 떠나 인종 차별과 여성 차별이 판치는 현실로 돌아와, 힘없는 흑인 소녀로서 삶과 부대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이 아무리 험난하더라도, 이 용감하고 생기발랄하며 한편으로는 안쓰럽기 짝이 없는 세 자매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고난 속에서 스스로 부딪치며 질문하고 깨달으며 한 발 한 발 나아간다. 전편에서 엄마 시실과 흑표범당 당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여러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해 세 자매의 성장에 힘을 보탠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아빠를 사로잡고 세 자매를 바짝 긴장시키는 당차고 세련된 여성 마바 헨드릭스, 집안의 맏이이자 큰언니 노릇을 완벽하게 해내려고 노심초사하는 델핀에게 매번 "추신, 열한 살답게 살아."라고 충고하는 친엄마 시실(의 편지),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교환 근무를 하러 와서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도록 교육하는 음윌라 선생님,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었다가 마침내 돌아온 세 자매의 친구이자 영웅 다넬 삼촌, 티격태격하다가도 곧잘 화해하는 루시 롤리와 프리다 뱅크스를 비롯한 학교 친구들. 여러 인물과 교감하면서, 세 자매는 어린아이에서 소녀로 성장한다.
    대표하는 할매를 중심으로 온 가족이 설왕설래 밥상머리 대화를 나눈다.

    '너답게 살아라'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전편보다 더욱 짙어진 여성주의 색채다. 전편의 시실이 흑표범당 당원이자 시인 은질라로 거듭난 격정적이고 전투적인 여성인 데 반해, 마바 헨드릭스는 현실에 단단히 발붙인 채 일상의 정치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현명하면서도 열정적인 여성이다.

    마바 헨드릭스의 활약상 중에는 미국 의회 최초의 흑인 여성 의원이자 흑인 최초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하기도 했던 셜리 치좀(1924~2005) 선거 운동도 있다. 최근 힐러리 클린턴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면서, 저 엄혹했던 시대에 정치계의 유리 천장을 깨뜨린 선구자로 또다시 조명받았고, "그들이 테이블 자리를 내주지 않으면 접이 의자를 가져가라."는 말로 회자되곤 하는 바로 그 인물을 놓고, 신세대를 대표하는 마바 헨드릭스와 구세대를 대표하는 할매를 중심으로 온 가족이 설왕설래 밥상머리 대화를 나눈다.

    미스 헨드릭스가 말했다. "꿋꿋이 밀고 나가, 델핀. 여성들도 정치계에 몸담아야지. 남성들과 똑같이 말이야."
    "“여자들이 몸담을 데는 집이다. 가족을 돌보고, 학교에서 자식들에게 엉뚱한 걸 가르치지 못하게 하려면. 젊은 여자들이 알량한 말단 자리 하나 차지하겠다고, 시의원이 되겠다고 설치고 다니면, 살림은 누가 하고 자식 교육은 누가 시키겠니?"
    "할매!" 펀이었다.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다넬 삼촌은 배시시 웃었다.
    그런데 미스 헨드릭스는 토론 중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가족을 돌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요. 아이들, 여성들, 가난한 사람들의 요구가 뭔지 정부가 명심하도록 알려 주는 거예요. 여성보다 아이들을 잘 대변할 사람이 또 있겠어요?" _본문 201~202쪽

    그 동안 두 동생을 보살피고 집안일까지 도맡는 등 가부장제가 요구하는 역할을 해내기에 급급했던 델핀은 마바 헨드릭스와의 만남을 통해 비로소 남성들처럼 제 목소리로 시끄럽게 떠들고 주장할 줄 아는 여성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며, 여성 정치인을, 나아가 여성 대통령을 상상하는 것이 결코 허황되거나 쓸데없는 일이 아님을 깨닫는다. 엄마 시실처럼 현실에서 과감히 이탈하지 않으면서도, 흑인 여성으로서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타고난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친엄마 시실이 델핀에게 보내는 편지마다 덧붙이는 추신 "P.S. Be Eleven"이다. 델핀이 열두 살이 된 다음에도 '열한 살답게 살라'고 신신당부하는 시실의 충고에는 너무 일찍 애어른이 될 수밖에 없었던 딸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무턱대고 따르려 들지 말고, 차근차근 내실을 다지라는 가르침이 담겨 있다. 예컨대 음윌라 선생이 읽고 있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치누아 아체베 지음)를 읽고 싶어 하는 델핀에게 시실은 이런 편지를 보낸다.

    "더 자란 다음에 치누아 아체베에 관해 알아보기 바란다. 그때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를 읽는 것이 좋겠다. 다짜고짜 이 책을 지금 읽으려고 하지 마. 무모하게 덤비지 마라. 델핀, 넌 똑똑한 아이야. 하지만 아직은 준비가 덜 됐어. 낱말이야 다 읽을 수 있겠지. 아프리카 글자까지도. 그러나 아체베가 말하는 내용은 모를 거야. 무른 이로 단단한 과일을 깨무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 문제는 자기 이한테 있는데 과일만 탓하게 될 테니까."_본문 158쪽

    '너답게 살아라'는 전편에서 다른 삶의 가능성을 맛보고 돌아온 델핀이 잃어버렸던 '본디 타고난 자기'를 찾기까지의 좌충우돌 수난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과 지리멸렬한 현실에서 살아가는 것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만큼 차이가 크다. 델핀은 앞으로 발붙이고 살아가야 하는 현실 세계로 돌아온 뒤, 자신이 기성세대가 요구하는 삶의 방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 왔음을 깨닫는다. 본디 타고난 자기를 찾기 위해 진통의 시간을 지나는 델핀의 곁에서 많은 이들이 따뜻하게 보듬어 준다. 친엄마 시실, 아빠의 여자 친구 마바 헨드릭스, 잠비아에서 온 음윌라 선생님 등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델핀의 아집과 독선을 일깨우고, 철부지인 줄로만 알았던 보네타와 펀은 독재자처럼 구는 언니의 간섭에 저항함으로써 델핀의 변화를 재촉한다.
    한편 델핀은 남자아이들과 비교해도 너무 큰 키가 늘 콤플렉스다. 델핀이 잭슨 파이브의 장남 재키를 흠모하는 이유도 큰 키와 듬직한 분위기 때문이다. 그런 델핀이 틈만 나면 짓궂은 장난을 걸어서 눈엣가시였던 키다리 소년 엘리스 카터와 댄스파티 파트너가 되는 과정은 재미와 웃음을 안겨 준다.

    책 속으로

    “지금이 대체 몇 시냐?” 할매가 두리번거리며 시계를 찾았다. “밤중이다. 이 시간에 아이들이 볼 프로는 없어.”
    “쟤들도 아이들이에요. 우리 또래라고요.” 내가 이렇게 말했지만, 맏이는 11학년생이나 12학년생일 게 분명했다. 눈썹이 짙은 기타 연주자도, 또 다른 기타 연주자도 역시 고등학생일 터였다. (……)
    “여태껏 봤으니 됐다. 저 남자애들한테 부모가 있다면, 이제 무대에서 끌어 내려서 집에 데려가 재울 거야. 너희도 이제 그만 가서 자. 이러고 있는 꼴을 아빠한테 들키기 전에. 곧 아빠가 올 테니.”
    “하지만 아직 안 끝났잖아요.” 보네타가 울부짖었다.
    “우린 마이클을 보고 싶단 말예요.” 펀이 말했다.
    -본문 82쪽

    아줌마는 셜리 치좀의 당선 축하연을 여는 선거 운동 본부에 갔다. 할매는 뉴욕 사람들이 셜리 치좀을 의원으로 뽑았다는 게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네 아내는 어디 있느냐, 아들? 정치 운동 한답시고 나돌면서 제 남편은 나 몰라라 하다니. 저 셜리 치좀이 벌써 가정을 파탄 내고 있구나.”
    아빠는 할매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아빠와 나는 지역 방송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승리한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선거 운동 본부에서 아줌마를 발견하고 싶었다.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내 생각에는 얼마 안 될 줄 알았는데, 우리 지역에서 새로 당선된 의원을 응원하는 사람이 수백 명이나 되었다. (……)
    좋은 일이라는 것은 나도 알았다. 믿기 어려울 만큼 엄청난 일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 셜리 치좀의 승리가 작은 징검돌 하나라도 놓게 될까? 이건 확신이 없었다. 권력다운 권력을 누릴까? 흑표범당이 말하는 그 권력처럼? 아니면 그저 시험대에 오른 권력일 뿐일까?
    -본문 225~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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