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이건희의 삼성, 이재용의 삼성'의 저자 차기태는 삼성의 이건희 시대와 얼추 비슷한 기간에 주로 경제와 기업 관련 기사를 써온 경제전문 기자다.
지은이는 이건희가 1987년에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한 뒤에 내세운 '신경영'은 우리나라가 IMF 구제금융 사태를 맞은 1997년까지는 사실상 실패했다고 본다. 이건희가 시도한 사업들은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특히 자동차와 석유화학 분야의 사업에서는 부실만 키우다가 결국은 매각 처분해야 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러나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이건희의 삼성은 정부와 시장의 압박을 받으면서 부실 정리, 부채 감축, 주력사업 집중 등 구조조정을 강력하게 실시했고, 그 효과에 힘입어 2000년대에 들어서 비로소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특히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 대한 기술개발 투자를 꾸준히 계속하여 적어도 메모리 분야에서는 세계시장을 석권하기에 이른 것은 결코 과소평가할 일이 아니며, 그 과정에서 최고경영자 이건희의 역할이 컸다고 지은이는 얘기한다.
그러나 1996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변칙 발행을 시작으로 삼성이 이후 진행해온 그룹 소유·지배권의 우회상속 과정은 삼성에 대한 국민적 기대에 어긋나는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삼성의 이재용 시대에 원죄와 같은 것으로 남게 됐다는 지적이다. 지은이는 이재용이 그 원죄를 극복하고, 삼성을 우리 국민 모두가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기업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인가라고 묻는다.
지은이는 삼성이 이건희에서 이재용으로 넘어간 것과 같은 불투명한 방식의 기업 소유경영권 승계가 앞으로는 되풀이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따라서 이재용은 지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소유경영체제와 전문경영체제의 장점을 결합해 '좋은 경영'을 실천함으로써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동시에 사회적 책임도 다해야 한다고 지은이는 조언한다. 그것이 삼성의 창업자 가문이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으면서 삼성과 나라경제의 발전에 기여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책 속으로이 같은 성장의 역사, 빛과 그늘이 교차해온 역사의 한가운데에 삼성그룹이 있다. 그 소유경영권은 이병철 창업회장의 뒤를 이어 이건희가 물려받았고, 이제 3세 이재용이 승계할 찰나에 있다. 삼성은 그간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데다 여러 모로 선두주자 역할을 해왔다. 삼성의 역사와 현주소는 우리 경제의 성과와 한계와 고민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5쪽)
이건희가 1993년 6월 5일 도쿄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탈 때 삼성 최고위급 임원 7~8명이 동승했다. 이건희는 프랑크푸르트로 가기 전에 삼성전자 오디오 부문의 일본인 고문 기보 마사오와 디자인 부문의 일본인 고문 후쿠다 다미오의 보고서를 읽었다. 각각 삼성전자의 공장 상황과 디자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또 세탁기 제조에서 불량품이 발생하는 과정을 다룬 비디오테이프가 이건희에게 전달됐다. 그 내용은 모두 이건희를 화나게 하는 것이었다. 이에 이건희는 서울 본사로 이학수 비서실 차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장과 임원들을 프랑크푸르트로 집합시키라고 지시했다. (19쪽)
“우리의 정치인은 4류 수준, 관료행정은 3류 수준, 기업은 2류 수준이다. …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나라는 2류 수준 국가에도 끼지 못할 것이다.” 이건희가 1995년 4월 중국 방문 중에 한 이 발언은 국내 신문에 크게 보도됐고, 청와대를 발끈하게 했다. 이 때문에 좋아 보였던 김영삼 정부와 삼성의 관계가 난기류에 휩싸이게 됐다. 이건희의 발언은 과도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48-49쪽)
삼성의 반도체 사업 진출은 참으로 숨 가쁘게 진행됐다. 이병철 창업회장이 생존해 있던 때의 일이다. 삼성의 반도체 사업 진출은 애초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그 기회를 찾은 이건희가 큰 역할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역시 이병철 창업회장의 결단이 있었기에 급물살을 타게 됐다. 이병철 회장은 자신의 마지막 사업으로 선택한 반도체에 그룹의 역량을 총동원했다. (54쪽)
인터넷 사업 실패는 이후 이재용에게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로 남았다. “이재용은 인터넷 사업에 실패한 것 외에는 한 일이 없다”는 평가가 오랫동안 삼성 안팎에 나돌았다. 다만 삼성은 이들 인터넷기업을 오래 끌고 가지 않고 신속하게 정리함으로써 이재용에 대한 비판과 의구심이 더 이상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163쪽)
삼성특검 수사는 이건희가 삼성그룹의 대권을 승계한 후 누적돼 온 의혹들을 규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그런 기회는 다시 오기 어렵다. 그 마지막 기회를 제대로 살려야 했지만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이다. 90여 일 동안 진행된 삼성특검의 수사 결과로 일부 밝혀진 것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것들이 흑막에 싸여 있다. (174쪽)
이건희는 2010년 3월 24일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했다. 그는 “지금이 정말 위기다. 머뭇거릴 때가 아니다”라면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이건희는 복귀한 후 그 전에 비해 확연히 달라진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재용을 비롯한 3남매에게 삼성그룹 경영권을 넘겨주기 위한 작업을 본격화했다. 그 전에 경영권 승계를 위한 정지작업을 벌였다면, 이제는 확실하게 승계구도를 굳히는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229쪽)
이재용이 이건희로부터 삼성의 경영권을 물려받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자녀에게도 그것을 물려줄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이재용에게 삼성의 경영권을 물려주는 작업이 진행된 시기는 삼성이 아니면 안 된다는 미망이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시기였다. 아마도 IMF 구제금융 사태와 같은 위기의 가능성에 대한 공포감도 우리 사회 저변에 깔려 있었을 것이다. (343-34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