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기자들의 취재 뒷 얘기를 가감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지난 7월 26일 국내 최대 규모 상륙함인 '독도함'에서 군장병, 군인가족, 6.25 참전용사 등을 대상으로 진행됐던 함상시사회 모습. (사진=CJ E&M 제공)
4일 보도자료 메일이 왔다. '인천상륙작전'이 군부대를 돌며 특별 시사회를 진행한다는 내용이었다. 발신자인 CJ E&M 측은 "군장병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라고 밝혔다.
메일 내용은 이랬다.
"9월 3일부터 강원도 인제에 있는 2사단 17연대를 시작으로 약 한 달간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를 총망라해 70여 개 부대에서 '인천상륙작전 군장병 특별시사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군장병 특별 시사회의 첫 부대인 2사단 17연대(쌍호부대)는 인천상륙작전 당시 '육군 유일의 참전 부대'로 뜻 깊은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 의미를 되새겨 행사의 첫 부대로 선정되었다."
친절히 이런 말도 덧붙였다.
"이는 군에서 진행된 특별 시사회 중 역대 최대 규모다. 극장 관람이 어려운 군장병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기획됐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선배 군인들의 용기와 희생 정신을 많은 장병들이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국방부는 이번 '인천상륙작전' 군장병 특별시사회를 통해 부대 내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장병이 3만 5000여 명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방부 관계자는 "특히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에도 고향을 가지 못 하는 군장병들에게 큰 즐거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며 "특히 영화 본편 상영 외 설민석 강사의 '인천상륙작전' 해설 동영상도 함께 상영되기 때문에 장병들이 6.25 전쟁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문득 떠오른 '군대의 추억''사기 진작'이라는 단어를 본 뒤 쓴웃음이 나왔다. 10여 년 전, 군 복무하던 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초임 장교 시절, 대대장의 지시로 매주 토요일 병사들을 교회로 불러모아 영화를 틀어줬다.
영화를 고르는 것은 나의 몫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대대장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19금 영화를 틀어준 다음부터였다. 애로 영화는 아니었다. 등급 자체가 '청소년 관람 불가'였을 뿐이다.
그 후 대대장은 내가 꼽은 3편 중 하나를 정하거나, 종종 자신이 과거에 본 (검증된) 영화를 틀어주라고 했다. 영화는 선정적이지 않고, 폭력적이지 않으며, 가끔은 지극히 교육적이었다.
그때부터였다. 영화를 보러 오는 병사들의 숫자가 줄었다. 그들은 "재미 없다", "낮잠을 자거나 TV를 보는 게 낫다"고 했다. 숫자가 줄면서 자연스레 영화 상영 시간 자체가 없어졌다.
대대장이 내게 처음 영화를 틀어주라고 지시했을 때 '사기 진작'과 '스트레스 해소'를 이야기했지만(지금 돌이켜보면, '이렇게 부대 관리를 하고 있다'는 상급부대 보고용 행사였다), 어느 순간부터 영화는 병사들에게 보는 그 자체가 '사기 저하'와 '스트레스'로 변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 중. (제공 사진)
다시 지금으로 돌아와, 인천상륙작전을 이야기해 보자. '국뽕', '21세기 반공 영화' vs '애국심' 등으로 극명하게 평이 나뉘고, 진실 왜곡 논란까지 일어난 영화다. 이런 영화를 병사들에게 보여준다고 사기가 오를지 정말 의문이다.
진심으로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싶다면, 이런 식의 특별 시사회가 아니라, 지금과 같이 상영 중인 영화를 틀어 주는 시사회를 평소에 꾸준히 하면 된다. 그리고 국방부와 CJ E&M이 보여주고 싶은 영화가 아니라, 병사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틀어주면 된다.
그런 게 아니라면 이번 특별 시사회는 국방부와 CJ E&M 각각의 '어떤 이익'을 위해 진행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강하게 든다. '어떤 이익'이 무엇인지는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추측만 할 뿐이다. 다만 하고 싶은 말은 그런 자리에 병사들을 끌어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병사들이 소모품으로 사용되는 우리 군의 일그러진 자화상에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