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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적 중도'를 통해 한국사회 대전환을 꿈꾼다

책/학술

    '변혁적 중도'를 통해 한국사회 대전환을 꿈꾼다

    신간 '변혁적 중도론'

     

    창비담론총서의 다섯번째 책 '변혁적 중도론'이 나왔다.

    서장 「변혁적 중도의 실현을 위하여」는 언뜻 상충되는 것으로 보이는 ‘변혁’과 ‘중도’의 개념과 의미, 변혁적 중도론의 이론적 기반인 분단체제론과의 관계, 포용정책 2.0과 2013년체제론 검토에 이어 이 담론의 실천을 위한 과제를 점검함으로써 한국사회 변혁의 운동노선으로서 변혁적 중도론의 의미를 분명히 한다. 이를 위해 서장 첫머리에서는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으로 변혁적 중도론에 대한 이해의 진전과 그 현실화 방안의 탐색을 든다.

    변혁적 중도론을 이해하는 데에서 관건은 변혁과 중도의 관계 설정이다. 변혁의 급진성과 중도의 보편성이 결합하는 논리적 근거는 분단체제하 남한사회의 현실 그 자체에서 비롯한다. 자본주의 세계체제하 한반도에 분단체제보다 더 나은 체제를 건설하고자 지구적 차원에서 한반도 전체를 보는 시각이 변혁이라면, 중도는 그에 따라 남한사회를 운용하는 실천노선이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서장에서는 변혁적 중도주의의 한반도판인 ‘포용정책 2.0’과 남한사회 개혁판인 ‘2013년체제론’을 함께 점검하여 포용정책 2.0이 강조하는 국가연합과 시민참여형 통일의 중요성과 2013년체제론이 제기한 한반도평화체제·평화복지연대·정당간 연합의 의미와 한계를 짚는다.

    그렇다면 북핵문제와 경색된 남북관계, 민주화의 퇴행 등 험난한 지형 속에 남한사회 개혁을 추구해야 하는 현실에서, 운동노선이자 실천전략으로서 변혁적 중도주의 실천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우선 정치적 실행력의 확보와 세력연대의 실체화, 즉 변혁적 중도주의를 실천하는 정치적 주체의 형성을 꼽을 수 있다. 노동·농업 분야 할 것 없이 각 정치세력들 간 ‘최대연대’는 현실이 요구하는 최고의 실천방안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제1부는 변혁적 중도론의 근거이자 이론적 기반인 분단체제론에 대한 이해를 돕고 분단체제의 특수성에서 비롯하는 변혁적 중도주의 논의의 진전을 보여주는 백낙청의 글 세편을 시기순으로 엮었다. 「분단체제의 인식을 위하여」(1992; 1994)는 계간 『창작과비평』 77호 특집 글과 관련 글들의 논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분단체제론을 정리한 것이다.

    일반적인 ‘체제’(system) 개념과 분단체제의 차이점, NL/PD로 대변되는 운동노선의 한계를 짚고,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한반도적 작동방식이자 남북 각 사회체제에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규정력을 매개하는 것으로서의 분단체제에 대한 정교한 이해를 주문한다. 「변혁과 중도를 다시 생각할 때」(2007; 2009)는 6월항쟁 20주년(2007년)을 맞아 87년체제의 성취가 한계에 부딪혔다는 논의들이 무성할 때, 한국사회 분석에서 한반도적 시각의 필요성을 환기하고 분단체제 변혁이라는 목적과 여러 개혁세력들 간 연대를 통한 중도의 구현을 촉구한 글이다.

    「2013년체제와 변혁적 중도주의」(2012; 2016)는 2012년 4·11총선의 야권 패배 이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변화한 현실을 토대로 변혁적 중도주의 논의를 진전시킨 글이다. 한국사회 개혁과 분단체제 변혁의 염원이 팽배한 가운데, 1) ‘변혁’이 빠진 개혁 내지 중도 노선 2) 전쟁에 의존하는 변혁 3) 북한만의 변혁에 대한 요구 4) 남한만의 독자적 혁명이나 변혁에 대한 치중 5) ‘민족해방’으로 단순화한 변혁 6) 전지구적 기획과 국지적 실천을 매개하는 분단체제 극복운동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노선 등 6가지를 배제함으로써 변혁적 중도주의의 내용을 구체화하고 변혁적 중도주의에 입각한 대선 검증기준을 제시한다. 사실상 이 글의 논지는 2012년 대선 패배로 현실화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참담한 후과에도 불구하고 국민대중의 더 나은 사회를 향한 문제의식과 이를 구체화할 시민 각자의 적공 및 집단적 지혜에 대한 희망을 덧붙여 드러낸다.

    제2부에서는 변혁적 중도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분단체제론을 역사성과 사회체제 면에서 고찰하고, 남북관계와 경제 부문에서 변화의 실마리를 탐색한다. 유재건의 「한반도 분단체제의 독특성과 6·15시대」는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을 기점으로 삼은 ‘6·15시대’라는 시대 구분이 남북을 아우르는 하나의 시대를 설정함으로써 남북관계 및 통일에 세계사적 중요성을 부여하는 의미를 지님을 밝히고, 한반도적 시각을 결여한 우리 사회과학계의 논의와 진보적 지식인들의 한반도문제 인식의 한계를 지적한다.

    평화와 통일을 분리해 통일세력의 헤게모니를 강조하거나(민경우) 일체의 통일논의를 민족주의로 비판하는(최장집) 입장은 세계 자본주의체제 내 지역 지배체제의 시야를 결여한 점에서 치명적 한계를 가지며, 한반도 분단현실에서 세계체제를 변혁할 독특한 창조적 가능성이 있음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김종엽의 「분단체제와 87년체제의 교차로에서」는 민주화의 완료와 정상적 작동으로 요약되는 87년체제에 근거한 사회 인식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등장으로 한계에 봉착했으며, 좀더 적확한 현실 인식을 위해서는 분단체제와 87년체제라는 이중의 틀이 요구됨을 주장한다. 87년체제가 야기한 ‘흔들리는 분단체제’는 남북의 적대적 의존을 평화적인 상호의존으로 변형하는 형태로 드러나는 한편, 남한 수구보수세력의 적극적인 반북·친북 도식의 활용으로 이들이 분단체제 유지를 통해 기득권을 수호하는 세력임을 분명히 한다. 이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분단체제를 안정화하는 데 힘쓸 것이나 이 모든 수단 자체가 ‘흔들리는 분단체제’의 산물로서, 이들의 시도는 무산될 것이다. 여기서 김종엽이 주문하는 것은 지난 시대 발전주의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분단체제 인식의 복잡성을 감당하는 민주세력의 자기성찰과 융합이다.

    「분단체제와 북한의 변화」에서 김연철은 분단 이래 김정은체제까지 북한에서 분단체제의 작동방식과 영향을 분단·전후·냉전 이후로 대별해 고찰하고 북한의 경제개혁과 향후 변화 방향, 국제무대에서 쟁점이 되는 인권문제와 북한의 위상, 분단극복에 필요한 남북의 구체적 노력을 제시한다. 분단이 북한에서 경제의 결핍과 구조적 왜곡, 사회의 군사화뿐 아니라 냉전의 적대적 환경에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과 달리 노동과 전투의 동일시를 불러왔다는 분석은 흥미롭다. 세계질서의 변화와 분단체제의 동요에 따라 북한도 변화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변화가 지연되는 정치체제와 달리 경제·사회·문화의 변화는 비교적 빠르게 진행되는 중이다. 이러한 변화를 분단체제 극복의 동력으로 견인하려면 남북의 사회적 격차를 줄이는 남한의 전향적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 글의 주장이다.

    이일영의 「새로운 ‘한반도경제’를 위하여」는 2013년체제론으로 촉발된 경제구상으로, 진보적 경제학계 일각에서 제기한 반(反)신자유주의 연합을 넘어 국가주의를 초월한 경제모델을 상정한다. 세계체제와 분단체제, 국내체제라는 환경변화 조건을 고려해 평화질서·남북연계·혁신국가라는 과제를 설정하고 네트워크를 통해 이 과제를 수행할 전략·제도·조직을 구상한다. 특히 한반도와 관련해서는 경제개혁에서 연착륙 가능성이 낮은 북한의 상황을 고려하여 국가적 차원의 연합·통합 이전에 네트워크에 의한 연계를 누적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일영은 인천-개성-해주, 부산-광양-제주, 인천-칭다오-다롄, 부산-후꾸오까-오오사까 등 중점도시를 연결하는 ‘동북아 지중해경제’를 구상하는 한편, 남한 내적으로는 발전주의의 산물인 위계적 구조를 해소할 기업 간 및 조직 간 네트워크 관계 설정, 재벌 견제와 중소기업의 육성, 지역 간 격차를 완화할 광역경제권 형성 등을 통해 네트워크형 ‘한반도경제’ 모델을 향후의 발전적 대안으로 제시한다.

    제3부는 통일운동, 생활정치, 제도정치와 시민사회운동 영역에서 드러나는 변혁적 중도주의의 구체적 양상과 과제를 살펴본다. 「분단체제 변혁의 전략적 설계를 위하여」에서 이승환은 변혁적 중도주의를 ‘분단체제 극복이라는 변혁적 과제를 광범한 시민이 참여하는 평화적이고 점진적인 과정 속에 추진해가는 전략적 태도’로 파악한다. 그리고 그 중점과제로 분단·전쟁의 산물인 남북 안보국가를 통제할 시민주체의 역량 강화, 남북 간 상호통제가 가능한 두 주권국가의 느슨한 연합으로서의 남북연합을 제시한다. 남북연합과 시민참여를 일체화하여 추진하기 위해서는 통일운동·시민운동 구분을 넘어선 시민사회운동의 적공과 함께 다양한 사회주체의 활동공간을 확장할 제도적 플랫폼의 구축이 필요하다.

    김현미의 「신자유주의적 권위주의 국가와 생활정치」는 분단체제하 한국사회를 신자유주의 정치·경제논리와 권위주의적 가부장제의 문화논리가 결합된 사회로 파악하고, 2008년 촛불시위부터 최근 세월호 참사 관련 운동에 이르기까지를 돌아보며, 생존과 생활의 언어를 지닌 다른 정치주체의 탄생을 사회학적으로 고찰한다. 2008년 촛불시위 과정에서 주권자로서 개별화된 시민들은 사회 공동의 문제에 대한 공감능력을 바탕으로 열정적인 정치감각을 일깨웠다. 이는 세월호 참사에서의 뼈아픈 성찰을 거쳐 신자유주의가 낳은 삶의 불안정성·피폐함과 싸우는 사람들의 연대로 이어진다. 누구나 자신의 삶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정치에 참여하며,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이 시장주의와 권위주의에 잠식되지 않은 생활정치의 상상력을 현실화할 바탕이라는 것이다.

    이남주의 「87년체제 극복과 변혁적 중도의 정치」는 변혁적 중도주의를 제도정치의 구체적 현실에 적용, 분석한 글이다. 이명박정부와 더불어 시작된 87년체제의 퇴행과 수구보수 역행의 원인을 분단체제와의 연관 속에서 변혁의 과제를 정확히 설정하지 못한 데서 찾고, 분단체제 극복의 토대로서 민주주의의 활성화, 지속 가능한 사회·경제체제의 재조직이라는 대전환과 야권의 새판짜기를 주문한다. 이태호의 「전환을 위한 새로운 연대, 새로운 주체」는 사회 양극화의 심화, 남북간 적대와 군사적 긴장 고조, 민주주의의 퇴행이 개발연대와 87년체제를 관통하는 부국강병론과 분단체제가 덧씌운 안보 프레임에 사로잡힌 때문으로 보고, 이 미몽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한다.

    이태호는 ‘성장에서 행복으로, 안보에서 안녕으로’라는 전환의 토대를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시민들에게서 발견한다. 2013년의 ‘안녕들 하십니까?’를 비롯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운동, 탈핵운동, GMO식품 반대운동, 동물권운동, 성소수자운동 등에서 보이는 사회적 약자들 간의 공감과 연대는 어떤 목적의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과 가치로서 의미를 지닌다. 이들의 다양한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는 것은 시민사회운동이 건강하게 성장할 기반이자 수구보수에 대항하는 효과적인 대항연합과 주체를 형성하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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