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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원작자가 말하는 '가습기살균제' 지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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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널' 원작자가 말하는 '가습기살균제' 지옥도

    작가 소재원 "피해 가족들이 나서 우리네 아이들 지켜준 데 감사"

    지난 8월 29일 당시 국회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마련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아타 샤프달 옥시 코리아 대표가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지난 여름 극장가에서 712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터널'의 원작자로도 널리 알려진 작가 소재원(34)이 여전히 답보 상태에 머무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다.

    소재원은 11일 CBS노컷뉴스에 "누군가의 부모들(가습기 살균제 피해 유족)이 지난 5년간 목소리를 높여 우리 아이들을 지켜준 것에 감사하기 위해서라도 이 사건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은 가습기 살균제로 아버지를 잃은 김미란 씨가 '국회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특위)의 활동 연장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인지 이틀째 되는 날이다. 특위의 활동은 지난 4일로 종료된 상태다. 김 씨는 새누리당의 동의로 특위 활동이 재개될 때까지 국회 정문과 새누리당사 앞에서 1인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소재원은 지난 5월 내놓은 장편소설 '균'(펴낸곳 새잎)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두고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들춰냈다. 작품 속 가습기 살균제로 딸과 아내를 잃은 아빠의 이야기는, 이해할 수 없는 죽음 뒤에 똬리를 튼 기업과 정치권의 탐욕을 오롯이 기록하고 있다.

    그는 "작품을 쓰면서도 현실의 사건이 제가 예측한 대로 갈 것 같았다"며 "제발 그렇게만 되지 말기를 바랐다"고 전했다.

    "작가는 작품을 쓰기 전에 이야기를 구상하잖아요. '현실에서는 제발 내가 쓰는 반대로 가줬으면' 하고 바랐죠. 집필을 하는 와중에 관련 청문회 등을 접하면서 든 생각은 '결국은 그렇게 되는구나'였어요. 이 사태를 두고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서 많이 힘든 게 사실입니다."

    소재원은 "처음에는 이 작품을 쓸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 2월 그의 아기가 태어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출산용품을 준비하면서 환절기를 대비해 가장 먼저 산 것이 가습기였어요. 그때 잊고 있던 것이 문득 떠올랐죠. '가습기는 누구나 사용하는 건데, 누구나 그 위험에 노출돼 피해자가 될 수 있었구나'라는 생각에 두렵더군요. 그분들(가습기 살균제 피해 유족)이 지난 5년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면 저 역시 제 스스로 그 제품을 넣어 제 아이를 병들게 할 수도 있었다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믿었지만, 결국은 그분들 덕에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지 않은 거잖아요."

    '그렇다면 나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했나'라는 자성에서 소설 '균'은 출발했다는 것이 소재원의 설명이다.

    "취재를 하면서 환경연합이라는 단체를 통해 관련 자료를 많이 받았어요. 그 과정에서, 이 시대 안에서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의 결론이 어떻게 날 것인지가 눈에 보이더군요. 제가 예상한 대로 갈 것이라는…. 그랬기에 제 입장에서는 이 사건을 기록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책을 써내려갔습니다."

    ◇ "하루 5분 기억함으로써 권력층 움직일 수 있다"

    작가 소재원(사진=소재원 제공)

     

    소설 '균'의 '작가의 말'에서 그는 '독자에게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잊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받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고 있다. 독자의 공감대를 극대화하고자 '아빠'처럼 일상의 존재를 강조한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결국은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겁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식이고, 부모로 살아갈 수밖에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로 하여금 피해자·유족들과는 반대편에 설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힘은 뭘까요? 그건 우리의 양심을 변화시키고, 그것을 정의로 믿게 만드는, 가장 윗선에 있는 몇몇의 의도라고 봅니다. 그렇게 우리는 편이 갈려 싸우는 건데, 그것이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어요. 우리가 잊지 않는 한 권력층은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너무 빨리 잊기에 그들은 두려움이나 경각심 없이 자기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게 아닐까요? 저는 잊지만 않는다면 바꿀 수 있다고 믿어요."

    소재원의 전작 '터널' '소원' 등과 마찬가지로 소설 '균' 역시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그는 "현재 시나리오를 개발하는 단계"라며 "영화는 이 사건을 계속 상기시키고 이끌어갈 방안을 모색하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사실 영화는 소설만큼 깊은 곳까지는 건드릴 수 없을 것 같아요. 상업영화라는 틀 안에서 많은 자본과 인력이 들어가는 만큼, 대중의 선택을 염두에 둔 한계점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제 경우 독립영화로 내놓자는 주장을 하기도 했는데, '영화로 사건을 더 알리고, 나라에서 하지 않으니 개인 주머니라도 털어 지원할 수 있을 만큼 자금을 마련해야 하지 않겠냐'라는 말에 설득됐죠. 힘든 결정이었어요. 결국 영화는 환경연합 등과 연대해 이 사건을 상기시키는 장치로 작용할 겁니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1년 11월부터 시작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접수를 통해 지난 8월까지 모두 4486명이 신청했다. 이 가운데 사망자는 916명에 달한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파악한 사망자 수는 무려 976명이다.

    소재원은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갈수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고 있는 점을 우려하면서 "언론이 이 문제를 끊임없이 상기시킴으로써, 대중에게 화두를 던지고 여론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앞장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현실이 소설과 똑같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이라면 특위 연장은 어림없는 소리예요. 정치인들은 관심사를 쫓아다닐 뿐 스스로 찾지 않아요. 제가 더불어민주당 윤리심판원 위원으로 있으면서 느낀 건 권력층은 국민의 관심을 가장 두려워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해법은 간단해요. 잊지 않는 거죠. 기자들은 계속 쓰고 우리는 계속 그 기사에 관심 갖고 댓글을 달면서 노출시키자는 겁니다."

    그 연장선에서 소재원은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기억하기 위한 캠페인을 제안했다.

    "하루 5분이면 됩니다. 매일 아침 7시에서 8시 사이에 포털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검색해 보는 겁니다. 그렇게 온 국민이 한 번씩만 검색해도 항상 실시간 검색어에 있을 테니까요. 우리는 하루 5분 동안 이 사건을 기억함으로써 권력층을 움직일 수 있어요. 이는 우리 아이들을 지켜준 누군가의 부모들에게 감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만약 피해가족들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면 우리는 제3, 제4의 피해자가 됐겠죠. 사회에 조금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해요. '나'라는 개념을 넘어 '너' 그리고 '우리'라는 개념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암묵적으로 만들어진 규칙·법칙을 하나하나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길 바랍니다. 잊지 않으면 됩니다. 그것만이 해결법이라고 믿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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