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MBC 사옥 내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사무실에 '청와대방송 즉각 중단하라!'는 문구가 붙어 있는 모습 (사진=언론노조 MBC본부 제공)
MBC 보도국 게시판에 현재의 보도 태도를 비판하며 이를 책임지는 보도국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글이 실명으로 올라왔다.
사회1부 데스크인 김주만 기자는 7일 오전, 보도국 소속만 볼 수 있는 게시판에 '뉴스 개선은 보도국장의 퇴진으로 시작해야 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김 기자는 "MBC 뉴스데스크가 시청률 30%대를 기록한 적은 있어도 창사 이래 시청률 3%대를 기록한 적은 없었다"며 "보도국장조차 어디부터 취재할지를 몰라 남의 뉴스를 지켜봤다 받으라고 지시를 하고, 부국장은 '오늘은 어느 신문을 베껴 써야하냐'고 묻는 현실이 이게 과연 MBC가 맞냐는 의문이 들 정도"라고 지적했다.
김 기자는 "정권의 힘이 무서워 보도를 못하는 상황이라면 특종보도는 못해도 최소한 국장은 사실관계에 대한 취재라도 지시했어야 했다. 국장은 그렇지 않았다. 국장은 기자들이 기사 가치로 판단하지 않고, 국장이 싫어하지 않을까, 부장에게 찍히지 않을까 눈치를 보는 보도국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반발하는 기자들을 징계하고, 저항하는 기자들을 쫒아내고, 마음에 안 드는 기자들의 입을 틀어막은 결과"라며 "보도국은 함량 미달의 뉴스 편집이 이뤄져도 침묵하고, 진실을 왜곡하는 기사가 나가도 침묵하고, 시청자들이 등을 돌려도 스스로를 조소하는 곳이 돼버렸다"고 자조했다.
김 기자는 "혹시라도 우리가 최순실의 태블릿 PC를 갖고 있었다 하더라도 과연 지금의 보도국이 이를 보도할 수 있었을까도 의문이지만 그런 꿈같은 일은 MBC에는 벌어지지 않게 됐다"며 "신문과 종편에 최순실의 농단을 폭로한 제보자들이 'mbc하고는 인터뷰를 안한다'는 차가운 반응이 이런 우리의 현실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보도국장과 편집회의 간부들의 퇴진 △보도국에서 찍어냈던 모든 기자들을 다시 원래 자리로 되돌리는 것 △기자를 정보원으로 만들지 말고, 뉴스 가치에 따라 기사를 쓰는 기자로 만드는 것 3가지를 '뉴스 개선 방안'으로 제시했다.
◇ "더 이상 망가져서는 회복 불가능"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MBC 사옥 1층 로비에서 '청와대 방송 중단' 피케팅을 벌이던 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들이 사측 안전관리요원들에 의해 저지당하고 있는 모습 (사진=언론노조 MBC본부 제공)
불공정 보도 지시 등으로 MBC의 '체질'을 바꿔놓았다는 평을 듣는 김재철 사장 이후, MBC 내부에서 '말할 권리'는 지속적으로 축소돼 왔다. 지난 1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에 소극적인 현 상황을 비판하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는 이유로 청경들과 몸싸움을 벌여야 했던 노조(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의 모습은 MBC의 삼엄한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단면이다.
자사 보도나 프로그램, 내부 상황을 비판할 경우, 대부분 징계나 보복인사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권성민 예능PD는 지난 2014년 '엠병X 피디입니다'라는 글을 올려 정직 6개월의 중징계를 받고, 비제작부서로 발령 받은 후 예능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웹툰을 그렸다는 이유로 해고된 바 있다. 대법원의 해고 무효 판결로 그는 현재 복직한 상태다.
신지영 기자 역시 세월호 유가족을 폄하한 내용이 담긴 박상후 당시 전국부장의 리포트 초고를 입사 동기들이 모인 카카오톡 대화방에 게시했다는 이유로 정직 1개월이 징계를 받았다. 신 기자는 정직무효소송에서 현재 2심 판결까지 승소했다.
이런 가운데 사회1부 데스크를 맡고 있는 김주만 기자가 실명글을 올린 것이다.
MBC의 한 기자는 "지금도 여전히 기사는 고쳐지고 있다. MBC뉴스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라는 말조차 못 쓰게 한다. 여전히 정권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기사를 약하게 써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다"며 "(MBC가) 더 이상 망가져서는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생각 때문에 이런 글이 올라온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이 기자는 보도국장 퇴진 요구에 대해서도 "당연히 보도 책임자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과거 MBC가 이렇게 되기까지 아무런 코멘트를 하지 않은 것도 무책임하고 창피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기자는 "한 후배는 이 글을 읽다가 눈물이 펑펑 났다고 했다. '일말의 기자 윤리가 남아 있다면 이 글을 보고 아프지 않을 수 없다'는 말도 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아마 (김 기자도) 고민을 많이 한 끝에 쓴 글일 거라고 본다. 기자들은 마음 아파하면서도 이 글을 갖고 (사측이) 괴롭힐까봐 걱정도 많이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김주만 기자가 올린 글 전문 |
'뉴스 개선은 보도국장의 퇴진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보도국에서는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광경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아픈 낙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타사의 기사를 이렇게 넋 놓고 바라보고 있던 적은 없었습니다.
MBC 뉴스데스크가 시청률 30%대를 기록한 적은 있어도 창사 이래 시청률 3%대를 기록한 적은 없었습니다.
보도국장 조차 어디부터 취재할지를 몰라 남의 뉴스를 지켜봤다 받으라고 지시를 하고, 부국장은 "오늘은 어느 신문을 베껴 써야하냐"고 묻는 현실이 이게 과연 MBC가 맞냐는 의문이 들 정돕니다.
국장을 비롯한 편집회의 간부들은 그동안 뭘 했습니까? 다른 언론들이 몇 달째 거대한 퍼즐 조각을 하나 둘 맞춰가고 있을 때 MBC 보도국 편집회의에서는 무엇을 했습니까?
정권의 힘이 무서워 보도를 못하는 상황이라면 특종보도는 못해도 최소한 국장은 사실관계에 대한 취재라도 지시했어야 했습니다. 국장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국장은 기자들이 기사 가치로 판단하지 않고, 국장이 싫어하지 않을까, 부장에게 찍히지 않을까 눈치를 보는 보도국으로 만들었습니다.
반발하는 기자들을 징계하고, 저항하는 기자들을 쫒아내고, 마음에 안 드는 기자들의 입을 틀어막은 결과입니다. 보도국은 함량 미달의 뉴스 편집이 이뤄져도 침묵하고, 진실을 왜곡하는 기사가 나가도 침묵하고, 시청자들이 등을 돌려도 스스로를 조소하는 곳이 돼버렸습니다.
혹시라도 우리가 최순실의 태블릿 PC를 갖고 있었다 하더라도 과연 지금의 보도국이 이를 보도할 수 있었을까도 의문이지만 그런 꿈같은 일은 MBC에는 벌어지지 않게 됐습니다.
신문과 종편에 최순실의 농단을 폭로한 제보자들이 "MBC하고는 인터뷰를 안 한다"는 차가운 반응이 이런 우리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타사가 톱뉴스로 생생한 도심 총격전의 상황이 방송되는 상황에서도 우리 보도국에는 단 한 건의 제보가 오진 않았다는 것이 이런 우리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논거가 빈약한 '김일성 가짜‘를 뉴스로 만들라고 지시하고, 이를 거부하는 후배를 공개적으로 힐난할 수 있는 편집회의 분위기가 이런 우리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정권에 부담이 되는 제보는 단 한 건도 들어오지 않으면서, 곤경에 처한 청와대를 구원하는 '이석수 수사 내용 유출'과 같은 뉴스는 취재가 되는 이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직접 MBC 로고가 담긴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가서 국민의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더 이상 시간이 없습니다. 국장과 편집회의 간부들의 능력도 이쯤 되면 충분히 검증된 것 아닙니까? 시청률 3%...이쯤 되면 충분히 떨어진 것 아닙니까?
혹시라도 보은 차원에서 박근혜 정권을 지켜야한다는 사명감을 가졌다면 그건 착각이고 망상입니다. 그것도 뉴스가 힘이 있을 때나 가능한 겁니다.
뉴스개선안을 제안합니다.
뉴스 개선은 보도국장과 편집회의 간부들의 퇴진으로 시작돼야 합니다. 뉴스 개선은 보도국에서 찍어냈던 모든 기자들을 다시 원래 자리로 되돌리는 것으로 시작돼야 합니다. 뉴스 개선은 기자를 정보원으로 만들지 말고, 뉴스 가치에 따라 기사를 쓰는 기자로 만드는 것으로 시작돼야 합니다.
참고로 게시판에 "공채기수들이 운 좋게 시험 한번 잘 봤다는 이유로...."를 쓰신 '보도국'님께 말씀드립니다. 이해합니다.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입사 1-2년 안에 모든 평가가 끝난다는 보도국의'치열한 경쟁'분위기에서 낙오됐을 때의 괴로움과 절망을 이해합니다. 선배는 물론 후배들로부터 존경 받지 못했을 때 오는 좌절을 이해합니다. 사람은 인정받기 위한 존재니까요.
하지만 '보도국'님의 역할은 땅에 떨어진 시청률을 회복하고, 시청자의 신뢰를 되찾는 것이지 보도국의 공채와 새로운 경력 기자를 이간질하는 게 아닙니다. 보도국님의 역할은 겉으로 드러나 사실과 진실을 따지고, 공정성을 놓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이지, 노조를 비아냥대며 간부 놀음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간부 보직에 맞는 능력으로 증명해야지 그런 글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지 마십시오. 치사하게 ‘익명’ 뒤에 숨지 말라고 말씀하셨 듯 그런 개인적 소감은 이름을 밝히고 당당하게 쓰십시오
경력기자들께도 말씀드립니다. 해고된 선배는 암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한참 일 해야할 어린 후배들까지 보도국에서 쫓겨난 상황에서 두 손을 벌려 따듯하게 환영할 수 없는 상황이 저도 안타깝습니다. 우리는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입사한 경력기자들을 우리 구성원으로 인정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MBC에 가게 됐습니다. 지금 환영받을 수 없다는 것 압니다. 그대로 말씀 드려야할 꺼 같아서요" 어느 경력기자가 보낸 문자입니다. 죄책감을 갖고 일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마음만 있어도 고맙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스스로 제대로 된 기사를 써서 자기가 쫓겨난 기자들을 대체하는 구사대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야 합니다. 간부들의 생각에 맞춰 기사를 왜곡하는 사이비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야합니다. 경력기자들은 출신 지역까지 다 감안해서 뽑았다는 한 회사 간부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그냥 '김재철 키즈'처럼 '안광한 키즈'로 평가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