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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과 '년' 없이도 '박근혜 퇴진' 집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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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과 '년' 없이도 '박근혜 퇴진' 집회 가능합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스며든 여성혐오, '제동' 거는 목소리들

    지난 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사진=이한형 기자)

     

    "박근혜 이 닭보다 못한 개쓰레기 잡년이…"

    지난 5일 서울 도심에만 20만 넘는 인원이 참석했던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범국민행동' 문화제 무대에 오른 사회자가 한 말이다. 사회자는 자신의 말이 원색적인 비하 발언이라는 것을 깨달은 듯 "죄송합니다"라고 하며 앞으로 이런 표현을 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말했으나, 곧장 "이 쓰레기 잡~녀언"이라며 발음만 뭉갠 채 같은 내용을 반복했다.

    어떤 권한도 위임받지 못했고 대표성을 띄지 않고 있는 사인에게 중요한 국정 운영을 맡긴 박근혜 대통령과, 대통령과의 친분으로 사회 각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온 비선실세 최순실 씨는 모두 여성이다. 최순실 씨의 딸이자 각종 특혜를 받은 주인공으로 지목되는 정유라 씨 역시 여성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사태에 대한 분노는 엉뚱하게 '여성혐오'로 흐르기도 한다. 최 씨와 정유라 씨가 각각 '탐욕스러운 '강남 아줌마'와 '된장녀'로 조롱당하는 것은 다반사고, 헌정 질서를 문란케 한 박 대통령의 실정은 곧 '여성 대통령의 실패'로 확대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대통령-비선실세의 공조 속에 벌어진 국정농단 사태'가 아니라, '못되거나 멍청한 여성이 벌인 일'로 왜곡되고 있는 셈이다.

    여전히 '닭'과 '년'이라는 말이 들어간 댓글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잘못한 주체가 '여성'이라 욕을 먹는 것인데 그게 왜 '여성혐오'냐는 질문이 돌아오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여성혐오 없이도 현 사태를 충분히 비판할 수 있고, 나아가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 및 하야를 요구할 수 있다는 쪽의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 "박근혜는 퇴진시켜야 하지만, 성평등한 세상은 진전시켜야"

    알바노조는 집회에 '여성혐오'가 스며드는 움직임에 우려를 표했다. 지난달 31일 알바노조 박정훈 위원장은 '아녀자', 'ㅅㅂ년', '병신년' 등 박 대통령과 최 씨를 비난하는 표현을 지적하며 "우리가 거리에서 싸우는 것은 여성혐오가 허용되는 세상, 사회적 약자를 혐오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더 낫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렇다면 고학력의 엘리트 남성이 똑같은 일을 했다면 괜찮은 문제인가"라며 "우리는 박근혜-최순실을 여자이기 때문에 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사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우리는 박근혜-최순실만을 몰아내기 위해 거리로 나서지 않았다. 박근혜는 퇴진시켜야 하지만, 성평등한 세상은 진전시켜야 한다. 지금의 권력을 몰아내야 하지만, 노동자들의 권리와 우리 삶의 개선은 가져와야 한다"며 "더 많은 민주주의를 원한다"고 밝혔다.

    ◇ "국민에게서 나온 권력을 남용했기 때문에 문제인 것"

    지난 6일 집회에 등장한 '하야하라', '박근혜 퇴진' 손피켓 (사진=이한형 기자)

     

    녹색당 여성특별위원회 역시 지난 7일 낸 성명을 통해 "민주주의는 여성혐오와 함께 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지엽적인 것에 관심을 두는 언론보도 행태를 질타했다.

    녹색당은 "쏟아져 나오는 언론의 양상은 이전의 정치 스캔들에서의 반응과는 사뭇 다르다. 주요 뉴스에서는 검찰에 출두하는 최 씨가 '프라다 구두'를 신고 '토즈 가방'을 들었다는 자극적인 정보를 보도한다. 어떤 기사는 제목부터 '강남 아줌마가 대통령 연설문을 뜯어 고쳤다니'라고 시작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을 '계집'으로, 최순실이라는 '개인'을 '강남 아줌마'로 치횐하는 순간 문제의 본질은 사라지고 뿌리 깊은 여성혐오만이 남는다"고 비판했다.

    녹색당은 "가부장적 남성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남성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여성은 사회의 질서를 교란하는 존재로서 끊임없이 공격받는다. 때문에 남성 정치인의 스캔들은 '남성'이 아닌 '정치인'으로 비치는데 반해 여성 정치인의 스캔들은 ‘정치인’이 아닌 '여성'의 문제로 쉽게 이야기가 전개된다"며 "부적절한 표현이라는 비판에도 계속해서 나오는 여성혐오 프레임의 보도들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혐오가 얼마나 사소한 일로 여겨지는지를 또한 여성혐오 콘텐츠가 가십거리로서 얼마나 잘 팔리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녹색당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를 규탄하는 이유는 국민에게서 나온 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하는 비리를 저질렀기 때문이지 그들이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다"라며 "각종 의혹을 덮기에 급급했던 검찰과 정치인들, 진실에는 눈 감았던 수구 언론들, 정권에는 뇌물을 바치고 노동자는 외면했던 재벌들. 박근혜 정권의 독단적 국가 운영에 동조하고 비선 실세의 존재를 묵인했던 그들이야말로 책임을 물어야 할 대상이다. 분노의 화살을 여성에게 돌리지 마라.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고 주장했다.

    ◇ 현장에서 '성평등한 집회' 이끄는 단체도 등장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당사자들이 "여자"여서 문제가 아니라는 목소리는 오프라인으로도 뻗어나왔다. '박근혜 하야를 만드는 여성주의자 행동'(이하 박하여행)은 대통령의 하야를 목표로 행동하면서도, '여성혐오는 안 된다'는 방향성을 갖고 반성평등 흐름을 시정하기 위해 현장에 직접 나온 케이스다.

    박하여행은 "이번 사태는 대통령이 여자라서가 생긴 문제가 아니라 자신에게 권력을 준 국민의 뜻을 거부하고 민주주의를 말살했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최순실이 여자라서 국가를 상대로 사기극을 벌인 것이 아니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밀실야합이 가능한 구조가 있어 가능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문제를 '여자의 문제'로 만드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왜곡하고,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뒤에서 사사로이 권력을 이용한 수많은 사람들을 가리는 것이며, 대통령이 하야하고 만들어질 모두가 평등한 민주주의에 반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5일 열린 집회에 참가해 시민들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알린 박하여행은, 오늘(12일) 열리는 민중총궐기에서도 적극적인 모니터링 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각종 집회에서 나온 발언과 홍보물 등에 담긴 성차별의 흔적을 찾아 문제점을 알리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설명이다. 박하여행은 1만원의 가입비를 내고 가입할 수 있으며, 박 대통령이 하야할 때까지 매주 토요일 집회에 참여해 캠페인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박하여행 페이스북 페이지 바로가기)

    박근혜 하야를 만드는 여성주의자 행동은 성평등한 집회를 만들기 위해 현장에서 모니터링 활동을 할 예정이다. (사진=박하여행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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