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퇴진 제7차 촛불집회가 열린 1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는 의미로 304벌의 구명조끼가 놓여져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10일 오후, 촛불집회 참가를 위해 서울 광화문광장을 찾은 시민들은 광장 한복판에서 쉽사리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그곳에는 304벌의 구명조끼가 빼곡히 놓여져 있었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그 아픔의 깊이를 직관적으로 전하는 풍경 앞에서 동요한 시민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먼발치에서 흐느껴 우는 이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이날 광장에 뿌려진 '광장신문' 제3호 3면에는 <"우리 땐 말야"…"됐거든요">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386 친권자' 둔 청년이 '부심' 쩌는 기성세대에게>라는 부제는 기사의 논조를 보다 선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자신을 '촛불집회 참가자'로 소개하고 있는 글쓴이 공혜원 씨는 기사를 통해 "386세대 이후의 운동권인 친권자 곁에서 내가 주체가 되어 운동을 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며 "항상 뒤에는 '누구의 딸'이 끈질기게 쫓아왔고, 나는 운동가가 아닌 그저 대견하고 기특한 아이였다"고 전했다.
"아직도 여전히 '성숙한' 어른들은 '미성숙한'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이런 나라를 물려줘서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고, 우리가 지켜주고 보호해야 하는 존재로 보며, 집회 현장에서 마주할 때마다 흐뭇한 미소로 어깨를 다독인다."
그런데 그는 '성숙한 어른들'을 향해 "우리는 당신들의 보호를 받기 위해, 기특하고 대견한 모습으로 칭찬받기 위해 광장으로 나온 것이 아니다"라며 "당신들이 망쳐놓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당신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님을 외치기 위해 광장으로 나왔다"고 역설하고 있다.
"민주주의로 가는 길은 박근혜의 탄핵만이 아니다. 거리로 나온 수많은 노동자, 안전하지 못한 일터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혐오에 맞서는 여성들과 성소수자, 계속 투쟁하고 있는 장애인,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탈핵을 외치는 이들 등 아직도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는 배제되고 있고,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이 많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외쳐야 하는 것이다."
이날 저녁 촛불집회 본행사에 앞서 전국에서 모인 수백 명의 중고등학생들이 서울 시청에서 광화문광장 방면으로 행진하며 "부역자를 처벌하라" "교육비리 청산하라" "조기대선 16세부터" "청소년에게 선거권을"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시민들은 촛불집회의 커다란 축으로 자리잡은 이 학생들에게 격려를 보냈다. 반면 행진을 따라가는 와중에 마주친 몇몇 어른들의 입에서는 "어린 것들…"이라는 투의 말이 흘러나왔다.
글쓴이 공 씨는 기사에서 "그런데 '우리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여 구구절절 과거를 회상하는 그들이 있다"며 "백골단과 싸웠던 그때를 떠올리며 '이게 운동이냐'며 지금의 집회 참가자들을 비난하기도 한다"고 꼬집고 있다.
"손에 들린 술잔과 대화에 가득한 과거 회상을 내려놓고, 오롯이 권력자들에게만 향한 화살을 본인에게도 겨누어 보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살아가고 싶은 세상은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희망은 10, 20대에게 달려 있는 것도 아니며, 우리만 책임져야 할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 세상은 함께 바꿔나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당신들은 바뀌어야 한다."
◇ "어른 말 잘 들으라고요? 어른 말 믿어서 어떤 일이 생겼는지 아시잖아요"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7차 대규모 촛불 집회가 열린 10일 오후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수백 명을 태운 배가 바다 한가운데서 빠르게 가라앉는 와중에도 "가만히 있으라"며 '윗선'의 지시를 기다리던 어른들, 당시 구조보다는 '윗분'들에게 보고하는 데 여념이 없던 어른들이 빚어낸 참사는 수렁에 빠진 지금 대한민국의 초상이다.
2014년 4월 16일 TV 생중계로 '우리들의 죽음'을 목격했던 '세월호 세대'는 광장으로 밀려오고 또 밀려오고 있다. "박근혜 즉각 퇴진"이라는 구호에 담긴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염원을 실현하는 데 뜻을 같이 하는 동지로서 말이다.
대통령 박근혜 탄핵소추안의 국회 가결 뒤 처음으로 열린 이날 촛불집회는 이러한 의미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날 집회 자유발언에 나선 안산 단원중 1학년 이창규 군은 "제 생일은 2003년 4월 16일이고요, 저는 2014년 4월 16일을 똑똑히 기억합니다"라는 말로 운을 뗐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봄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2교시를 마치니까 선생님이 단원고에 형제자매가 있는 학생들은 다 집으로 돌려보내셨어요. 그때 선생님의 컴퓨터 뉴스에 학생들이 전원 구조됐다는 뉴스가 있어서 저도, 집에 가는 친구들도 별일 아니고 수학여행 가다가 일어난 사고인 줄로만 알았어요. 그리고 몇 시간 뒤에 저와 가족들과 친구들은 분향소에 있었습니다."
그는 "그 이후로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해경을 축소시켜 국민안전처 산하로 들여보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면서 수학여행과 수련회를 전면 폐지시켰습니다"라며 "과연 이게 옳은 일이었을까요. 지금 와서는 저 청와대에 앉아 있는 사람이 시킨 짓이 아닌지라는 의혹이 들고 있습니다"라고 꼬집었다.
"큰 사건이 생길 때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유가 있어서 살아남은 것이니 사고로 죽은 사람에 대해 죄책감을 갖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저희는 세월호에 있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메르스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경찰의 물대포에 맞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있어서 살아남은 것일까요? 만약에 이유가 있었더라도 저희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남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군은 "어떤 분들이 그랬습니다. 학생들이 무엇을 아냐고, 학생들이 무엇 때문에 이 자리에 나오냐고, 공부하기 싫어서 그런 것 아니냐고 물어봅니다"라며 "저는 공부하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배운 내용이 실제로 이뤄지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나왔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자신을 "평택에서 온 고등학교 1학년"이라고 소개한 이수진 양은 "저는 비록 유권자는 아니지만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이 자리에 나오게 됐습니다"라며 말을 이었다.
"만약 탄핵이 돼 박근혜가 퇴진한다면 제가 차기 대통령 되시는 분들께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 여러 형태의 현장 체험 학습들이 축소 혹은 취소돼 왔습니다. 피해자분들이나 유가족분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수학여행을 못 가는 것 따위는 아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그럴 일 절대 없다고, 너희들이 어디를 가든 안전하다고, 위험에 빠진다고 해도 모두 구하고 책임질 준비가 돼 있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어른 말을 잘 들으라고요? 어떻게 믿겠습니까"라며 "어른 말을 믿어서 어떤 일이 생겼는지 아시잖아요"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모두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밤새우며 코피 흘려 가면서 노력을 해도 돈 많은 애, 빽 좋은 애 못 따라간다는 건 너무 비참한 것 아닙니까. 정유라 특례입학 같은 것 말고 노력하면 된다는 걸 뉴스에서 보고 싶습니다."
이 양은 "마지막으로 국민을 위해 일하라고 뽑아준 정치인들 아닙니까. 재벌이나 개인이 아닌 국민을 위해 일하라고 뽑아 준 정치인들 아닙니까"라며 "정치인이라는 특권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짓밟지 말아 주십시오. 제가 21대 총선에서 투표권이 생기는데 지켜보겠습니다"라고 경고했다.
우지수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은 "헬조선에서 연애도 취업도 먹고 살기도 힘든 우리 청년들, 탈조선하고자 했던 청년들에게 박근혜 지지율 몇 %입니까. 0%로 수렴합니다"라고 전했다.
이어 "박근혜가 청년들에게 뭘 해줬습니까. 어떤 막말들만 일삼아 왔습니까"라며 우리가 살고 싶은 탈조선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나라, 대학생들 청년들이 만들어가겠습니다"라고 역설했다.
"대학생들 다음주면 많이 종강합니다. 집 내려가기 전에, 종강파티하기 전에, 광장에 모여서 종강촛불 만들어가겠습니다. 12월 17일 대학생 종강촛불로 박근혜 즉각 퇴진 목소리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더 크게 만들어보겠습니다. 24일 크리스마스 촛불로 박근혜 즉각 퇴진할 때까지 광장을 다시 한 번 뜨겁게 달굴 것입니다. 대학생들, 박근혜 퇴진할 때까지 결코 가만히 있지 않고 시민들과 함께 촛불 밝히면서 계속 열심히 싸워가겠습니다.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