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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문 안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수필'

책/학술

    '유리문 안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수필'

    '세계 여성 시인선: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이설야 시집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

     

    <유리문 안에서="">는 나쓰메 소세키가 전업 작가로서 생활하며 아사히 신문에 연재한 서른아홉 편의 에세이를 엮은 책이다. 특별한 주제 없이 작가의 삶과 내면 풍경을 정교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그려 낸 이 작품에는 좀처럼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던, 자기 속내를 드러내는 데에 늘 주저해 왔던 작가의 ‘진심’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근대적 자아’와 ‘전근대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 근대화가 불러들인 ‘타자’의 존재, 서구 열강과 일본의 관계 그리고 일본의 제국주의가 불러일으킨 참상과 그에 따른 파국을 누구보다 명확히 꿰뚫어 봤던 나쓰메 소세키는 불안과 우울, 신경 쇠약에 시달리며 작품 활동을 이어 갔다.

    하지만 그는 세인들에게 ‘여유파(삶을 관조하며 여유를 즐기는 태도)’라고 불릴 정도로, 세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판단하는 데에 항상 조심했다. 심지어 자기 인생을 직시하는 일도, 세속적 성공을 희구하거나 삶에 집착하는 일도 멀리해 왔다. 그런 나쓰메 소세키가 마침내 입을 연 것이다. 이를테면 <유리문 안에서="">에는 사경을 헤맬 만큼 극심한 병환을 몇 차례 앓고 나서, 즉 만년의 정점에서 그동안 스스로 들여다보기를 두려워했던 ‘진심’에 다가서기로 한 작가의 결심이 바로 오롯이 녹아 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구석구석에 자리한 순탄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형제의 죽음, 출세와 생계 문제로부터 초탈한 듯한 태도가 지닌 자기기만, 너그럽지 못한 마음가짐 등이 작가 본인의 문장으로 세세히 드러난다. 그래서일까? <유리문 안에서="">에는, 이제껏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염세적 태도를 견지해 오던 나쓰메 소세키가 순순히 삶을 긍정하는 대목, 즉 그가 힘주어 언급하는 “죽지 말고 살아 계세요.”라는 한마디에는 “나쓰메 소세키가 말하고자 했던 모든 메시지”(강상중)가 담겨 있다.

    책 속으로

    나의 명상은 아무리 오래 앉아 있어도 결실을 보지 못했다. 붓을 들어 쓰려고 하면 쓸거리는 무진장 있는 것 같고 이걸로 할까 저걸로 할까 머뭇거리다 보면 더 이상 무얼 쓰건 시시하다는 태평스러운 생각도 일었다. 잠시 거기에 우두커니 서 있는 동안, 이번엔 지금껏 써 온 것들이 전혀 무의미하게 여겨졌다. 어째서 그런 걸 썼을까, 하는 모순이 나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고맙게도 내 신경은 차분했다. 이 조롱 위에 올라타고 두둥실 높다란 명상의 영토로 올라가는 것이 내겐 무척 유쾌했다. 자신의 멍청한 기질을 구름 위에서 내려다보며 웃어 주고 싶어진 나는, 스스로 자신을 경멸하는 기분에 흔들린 채 요람에서 잠든 아기에 불과했다. -<유리문 안에서="">에서

    나쓰메 소세키 지음 |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144쪽 | 7,800원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의 시인들은 열등한 성으로 고정화되었던 여성의 체험과 글쓰기가 1960년대 이후 인간회복과 휴머니즘의 중요한 가능성으로 떠오르는 데 일익이 된 주인공들이다. “훌륭한 인간이 되기를 원치 않으며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를 원한다”고 선언한 한국의 1세대 페미니스트 김명순, 나혜석, 김일엽 등 다수의 국내 여성 시인에서부터 억압된 여성 천재의 상징적 인물인 크리스티나 로제티와 에밀리 디킨슨, 그리고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해외 페미니스트 시인들까지, 시로 표현되는 여성의식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다.

    특히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독일 근대 지성계의 대모 리카르다 후흐, 중국의 급진 혁명가 치우 찐, 영국의 페미니스트 시인 샬롯 뮤와 애나 위컴, 라틴 아메리카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퓰리처상 수상자인 양성애자 작가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 등 9명의 해외 여성 시인들은 페미니즘 시문학의 가능성과 외연을 확장한 주인공들이다.

    책 속으로

    내가 인형을 가지고 놀 때
    기뻐하듯
    아버지의 딸인 인형으로
    남편의 아내 인형으로
    그들을 기쁘게 하는
    위안물 되도다
    - 나혜석 '인형이 가(家)' 일부

    나혜석 , 에밀리 디킨슨 외 지음 | 공진호 (엮고 옮김) 옮김 | 아티초크 | 172쪽 | 8,800원

     

    이설야 시인의 첫 시집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가 출간되었다. 시인은 등단 이후 줄곧 고통받는 민중의 자리에 시선을 고정한 채 처절한 삶의 경험을 한땀 한땀 엮고 꿰매는 듯한 시적 진성성으로 민중시에 바탕을 둔 새로운 리얼리즘의 시세계를 개척해왔다. 시인은 냉철한 관찰력과 가슴 밑바닥에서 솟구쳐오르는 뜨거운 언어로 소외된 자들의 궁핍한 삶의 모습과 헛것과 거죽뿐인 음지의 세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여전히 죽음과 폭력이 도사린 억압과 소외의 시대에 맞서 “내면의 어둠을 삶의 온기와 미래의 동력으로 갱신하겠다는”(최현식, 해설) 결연한 의지가 가슴을 울리는 시편들이 “고통을 뚫고 나오는 진실과 희망에 귀 기울이는 태도와 방법을 넌지시 보여”주는 “참혹하게 아름다운”(김해자, 추천사) 시집이다.

    나는 집 나간 고양이/문 닫은 상점의 우울을 즐기는/나는 뚱뚱한 개 새끼/아무거나 처먹고 검게 탄 인형을 토하는//내가 낳은 그림자를 뭉개며 막차를 쫓는/나는 깜깜한 아버지의 온도/가질 수 없는 사랑만 골라 하지//나는 네 발로 뒤로 걷는 수수께끼/두 발로 거짓말을 즐기는/맑은 날은 깨금발로 금을 밟아/두꺼운 질서를 비웃곤 하지//나는 아무것도 포개고 싶지 않은 낮달/오래된 시계가 버린 그늘/잠자리 눈으로 뒤통수만 바라보는/새끼 고양이들을 자꾸만 죽이는(「문 닫은 상점의 우울」 전문)

    처절했던 지난날의 아픔과 슬픔을 되새기면서 시인은 한걸음 나아가 사회문제에 접근해간다. 시인은 “어제 꾼 꿈을 팔아먹”고 “희망을 구걸하러 다니는”(「어떤 대화 2」) 현실을 직시하며 “망루에 얼어붙은 다섯 그림자가 상여를 밀어올리”(「성냥팔이 소녀가 마지막 성냥을 그었을 때」)던 용산참사와 세월호 참살 등 “나라에 슬픔이 클 때/대통령은 언제나 해외 순방 중”(「삼백다섯개의 그림자를 밟고 지나가는」)인 부조리한 현실을 폭로하고 고발한다. 그런가 하면 “잘게 쪼개진 플라스틱들”이 “수십년 동안 밀리고 밀려 떠다니는” “쓰레기 섬”(「플라스틱 아일랜드」)을 이루고, “새들을 내쫓고/지붕을 부수고/오는 봄을 다 내다 버리는 포클레인”과 “묵납자루, 말조개들의 비명이 얼어붙은 강”(「물의 마을들」)을 바라보며 환경?생태 문제에도 시야를 넓힌다.

    거대한 관이 인양되는 먼 시간에도/수선공장 재봉틀은 계속 돌아가고/그림자들이 폐수처럼 흘러간다/한집 건너 한집,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덜거덕거리는 찬장 위 그릇들이 말을 하기 시작한다//(…)//봉인된 탈출구/서류를 감춘 바람/절대시계의 시간 속으로 사라진 아이들/수십억 눈 속으로 배는 아직도 침몰 중이다//죽음을 담지 못하는 관은 가장 멀리 있는 진실/아이들의 아직 태어나지 않은 먼 아이들과 함께 실종 중이다//우산을 거꾸로 쓴 박쥐들이 빨간 구름을 모으는 저녁/별들도 두려워 눈을 질끈 감는다/아이들의 젖은 그림자를 훔쳐간 사월이 가지 않는다(「사월(死月),」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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