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이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 씨의 이름을 수면 위로 올린 지 3달이 지났다. JTBC가 최 씨의 태블릿 PC를 입수해 연설문 수정 등 '국정농단'을 구체적으로 밝혀낸 이후, 언론은 앞다투어 보도 경쟁에 나섰다. 그러나 방송법과 방송문화진흥회법에 따라 '공적 책임 실현'에 애써야 할 공영방송 KBS와 MBC는 '게이트'로 불릴 만큼 초유의 헌정유린 사태에도 뜨뜻미지근한 보도를 내보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 이하 새노조)와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조능희, 이하 MBC본부)는 29일 노보를 내어, 그간 KBS와 MBC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어떻게 보도해 왔는지 평가했다.
◇ KBS 새노조가 꼽은 최악의 보도 10선새노조는 올해 마지막 노보를 통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최악의 보도 10선'을 꼽았다.
새노조가 선정한 '최악의 보도'는 △야당 외면 속 국회 전격 방문…배경은?(11월 8일) △[앵커&리포트] 청와대 "'세월호 7시간' 대통령 정상 집무"(11월 11일) △朴대통령 "임기 단축 등 진퇴, 국회에 맡길 것"(11월 29일) △'환영' '실망' 엇갈린 반응…"촛불집회 계속"(11월 29일) △"이완영 위증 모의" vs "박영선도 증인 만나"(12월 19일) △최순실 육성 추가 공개…녹취록 오류 논란도(12월 15일) △[앵커&리포트] "태블릿PC 감정 필요"…실소유자 공방(12월 19일) △새누리당 의원들에 '탄핵' 촉구 전화·문자 '폭주'(12월 2일) △우병우 수사 외압 보도 누락(12월 7일) △별 성과 없이 슬그머니 해체한 최순실 TF(12월 13일) 등이다.
우선, 새노조는 11월 8일 보도에 대해 "성난 촛불민심에 쫓긴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해 총리 추천을 요청한 것을 두고 주관적 자의적 편파적인 판단과 언어들을 동원해가며 대통령 감싸기에 나섰다"며 "'기민하게 조율돼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등 낯뜨거운 수사를 동원하고 '영수회담의 전제 조건으로 내건 야당의 요구를 사실상 수용한 것'이라며 통큰 결단과 양보를 한 것으로 미화했다"고 평가했다.
위쪽부터 KBS '뉴스9' 11월 11일, 11월 29일, 12월 15일, 12월 19일 보도 (사진='뉴스9' 캡처)
11월 11일 보도에 대해서는 "온국민의 관심이 쏠린 세월호 7시간 의혹에 대해 진상을 추적하고 폭로하기는커녕 박근혜와 청와대 발표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확성기 노릇을 하는 데 앞장섰다"며 "리포트 문장 7개 주어가 죄다 청와대. 내용도 하나의 예외없이 청와대의 해명, 나아가 청와대의 명예훼손 협박까지 그대로 앵무새처럼 받아쓰기만 했다"고 비판했다.
앵커 멘트를 통해 '조기 하야 수용 입장을 밝혔다'고 했던 11월 29일 보도를 두고는 "오로지 청와대와 친박만이 주장하는 ‘사실상의 하야’ 주장을 그대로 받아 따라해 준 무비판적 보도"라고 보았고, 박 대통령의 3차 담화 시민 반응을 담은 같은 날 보도 제목에는 '환영'이라는 표현이 등장했으나 정작 리포트에는 담화를 환영한 시민이 등장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새노조는 국조특위 청문회 관련 새누리당 의원들의 위증 모의 의혹과 더불어민주당의 증인 만남을 나란히 전했던 12월 19일 보도를 "위증 교사 정황이 전혀 없는 박영선 의원을 그것도 위증교사 의혹에 몰린 이완영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 '청문회 증인을 접촉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식으로 싸잡아 보도했다"고 말했다.
녹취록 오류 논란을 전한 12월 15일 보도에 대해서는 "녹취록 오류 주장이 맞건 틀리건 녹취 전체 맥락은 그대로라는 점이다. 최순실 육성 내용 전달은 50초, 녹취록 오류 주장은 1분25초 할애했다"고, 태블릿 PC 감정 주장을 다룬 12월 19일 보도는 "검찰 발표를 통해 태블릿 PC 사용자가 최순실이었다는 사실이 더 이상 논란거리가 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최순실 일당의 사실상 억지 주장을 심층성 세컨 꼭지로 비중있게 보도했다. 태블릿PC 쟁점화에 가세했다"고 평가했다.
이밖에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탄핵 촉구 전화·문자가 폭주한다는 보도(12월 2일)는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의원들의 개인 번호를 공개한 것인 양 사실과 다른 내용을 전한 점,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부당한 수사 외압을 당시 수사책임자로부터 확인해 취재 및 원고 작성(12월 7일)까지 마무리했으나 불방돼 결국 SBS에게 특종(12월 16일)을 뺏긴 점, 두 달도 안 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TF팀을 해체(12월 13일)한 점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 태블릿 PC 집착하고 '올림머리' 앵커 멘트 고친 MBCMBC본부는 민실위 보고서에서 MBC '뉴스데스크'가 검찰의 결론에도 불구하고 태블릿 PC가 최 씨의 것이 아니라는 일부의 주장을 열심히 전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지난 11일, 최 씨에 의한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박영수 특검에 넘기면서 JTBC가 입수해 보도한 태블릿 PC에 대해 "실제 사용자는 최 씨가 맞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MBC는 검찰의 발표 당일 관련 보도를 누락하고 17일에서야 "위치 정보나 저장된 사진으로 봤을 때 문제의 태블릿 PC를 최순실 씨가 사용한 게 맞다고 결론 냈다"고 한 줄로 처리했다.
위쪽부터 MBC '뉴스데스크' 12월 8일, 12월 17일, 12월 19일, 12월 20일 보도 (사진='뉴스데스크' 캡처)
반면 태블릿 PC 존재에 의문을 갖는 보도를 지속적으로 내보냈다. △"최순실은 태블릿 PC 사용 못 하는 사람"(12월 7일) △태블릿 PC의 정체는?‥ 꼬리 무는 의혹(12월 8일) △태블릿 PC의 주인은 누구? 증거 능력 공방(12월 17일) △불출석에 "모른다"‥ 국정조사 실효성 논란(12월 18일) △"진술내용 사전협의"‥위증 모의 공방(12월 19일) △모두 부인하는 태블릿 PC‥ 입수 과정 조사(12월 20일) △이틀째 집중 공세‥ "부역자" 발언에 '발끈'(12월 21일) △사활 건 '위증' 공방‥ 특검 수사 의뢰(12월 22일) 등 8건이나 된다.
MBC본부는 12월 18일 보도에서 "최순실이 태블릿 PC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고영태 씨의 증언 등 나름 성과가 있었다"고 언급한 점을 비판했고, 12월 19일 보도에서는 "이완영 의원 등 위증 모의 의혹을 두루뭉술하게 보도하고 박영선 의원 사례로 물타기를 했다"고 말했다.
12월 20일 보도를 두고는 "'태블릿 PC가 최순실 것'이란 검찰의 근거는 언급하지 않은 채 '무단반출'에만 초점을 맞췄다"고, 12월 21일 보도에 대해서는 "법무부 차관에게 태블릿 PC 관련 의문이 제기됐다면서도 차관 답변을 누락했고, 황교안 총리(현 대통령 권한대행)가 세월호 수사과정에 외압을 가했다는 내용을 설명하지 않고 야당 공세로 치부했다"고 지적했다.
MBC본부는 "'태블릿 PC가 최순실의 것이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그에 걸맞은 근거를 제시하면 될 터인데 근거 하나 없이 이 말 저 말 나열만 하고 있다. '태블릿 PC가 최순실의 것이 맞다'는 검찰의 근거를 정면으로 반박하지 못하고 의도적으로 누락한다. 그러면서 '태블릿 PC가 뭔가 수상하다'는 냄새만 끊임없이 풍긴다. 비겁한 보도의 전형"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MBC본부는 지난 7일 박근혜 대통령이 올림머리를 연출했다는 의혹을 전하도록 라디오뉴스 앵커 멘트를 고친 기자에게 문호철 정치부장이 고성을 질렀다고 밝혔다. 담당 기자가 앵커 멘트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머리 손질'을 했다는 한겨레 단독보도(12월 6일)와 올림머리를 일부러 부스스하게 연출했다는 의혹 관련 SBS 단독보도(12월 6일) 내용을 모두 언급하게끔 고친 것을 문제삼은 것에 이어, 최기화 보도국장은 경위서 제출을 요구했다는 설명이다. 경위서 제출 지시는 기자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같은 날 MBC '뉴스투데이'에서도 유사한 일이 발생했다. 박재훈 앵커는 1부 리포트에서 SBS의 보도 내용을 일부 포함시켜 앵커 멘트를 고쳤는데, 2부 진행 직전 앵커 멘트를 송고본 그대로 읽으라는 편집부 지시가 전달됐다.
"세월호 당일 박근혜 대통령이 특유의 올림머리를 하느라 90분을 썼다, 일부러 부스스한 머리를 연출했다는 의혹이 잇따라 보도됐다. 청와대는 당일 머리 손질에 소요된 시간은 20분 남짓이었다고 해명했다"는 1부 앵커 멘트가, 2부에서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이 미용사를 불러 90분 동안 머리 손질을 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가 있었다. 청와대는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로 바뀌었다.
MBC본부는 "같은 뉴스, 같은 리포트에서 서로 다른 두 개의 앵커 멘트가 보도된 것"이라며 "7일 밤에도 '뉴스데스크'는 SBS 의혹 제기는 외면한 채 한겨레 보도와 관련된 청와대 해명만을 두 문장 전달했을 뿐이었다. 청와대가 짜놓은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뉴스데스크', 청와대 방송 역시 진행형"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