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자료사진)
부산 '평화의 소녀상' 설치 문제를 두고 촉발된 한일 갈등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의 '독도 망언'까지 더해지며 양국 관계는 더욱 얼어붙었다.
소녀상은 일본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이슈였다. 국제사회에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여성 인권을 무참히 짓밟은 '전범'이자 '가해자' 일본을 고발하는 강력한 상징물이었다.
하지만 일본 보수우익 세력은 이를 영리하게 이용했다. 한일간 위안부 협상이 지지부진한 것을 한국 탓으로 돌리며 내부 결집에 활용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재집권도 이뤄졌다.
현재 소녀상을 둘러싼 한일 갈등도 결과적으로는 아베 총리만 '유일한 승자'로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지난 17일 일본 언론이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지난 달보다 약 4%p 오른 54%로 나타났다. 소녀상 설치에 항의해 대사와 총영사를 급히 귀국조치하고 한일 통화스와프 논의를 중단하는 등 한국에 대한 강경대책을 잇따라 내놓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앞서 아베 총리는 지난해 12월 북방영토 문제의 진전을 바라며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했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아베 총리로선 소녀상과 독도 문제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외교 실책을 가리고 지지층을 재결집시킨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손익계산표는 아직 초라하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속수무책이나 다를 바 없던 외교부에 1차적 책임이 있음은 물론이다. 빤히 보이는 아베 총리의 정치적 노림수에 놀아났고, 한일 외교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국민 감정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윤병세 장관은 지난 1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소녀상 설치가) 국제관계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라고 발언하는 자충수를 뒀다. 가뜩이나 악화된 여론에 기름을 부었고 일본 측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는 주변 4강 대사와 주유엔대사를 불러들여 긴급회의를 열기도 했지만 뾰족한 대책은 없었다. 박근혜 정부가 일본과의 역사 및 영토 문제를 놓고 갈팡질팡해왔고, 급기야 졸속 협상 끝에 굴욕적인 12.28 위안부 합의를 이뤘다는 지적을 받고 있던 터였다.
이런 점에서 정부를 비판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정부는 대일 저자세 외교로 한없이 작아졌다. 이런 정부를 대신해 일본에 시원하게 호통이라도 치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볼 때 우리가 일본의 손을 아예 놓을 수는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더구나 올해는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맞물려 동북아 정세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중요한 외교전을 준비해야 하는 이 시점 '컨트롤 타워'가 부재한 상황에서, 국내 여론이 갈린 채 감정적 대응만 부각될 수 있어 우려스럽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사진=부산CBS 송호재 기자)
일본을 바라보며 '분노'만 하고 '냉철한 대책'이 없다면 성낸 쪽이 지는 게임이다. 한일 관계의 외교적, 전략적 측면을 고려한다면 그 손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예컨대 경기도 의회의 독도 소녀상 설치 추진도 정당성 여부와는 별개로 실익 측면에서 한 번쯤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일단 소녀상 문제나 독도 문제와 관련해 논란이 증폭되는 상황은 결과적으로 일본 보수우익이 정치적으로 이용할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고 일본의 사과를 촉구하는 목적이라면 이미 설치돼 있는 소녀상 만으로도 큰 부족함은 없을 것이다.
외교관계에 대한 전략적 성찰과 고민은 비단 정부의 몫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외교 컨트롤 타워'가 부실한 지금은 더욱 그렇다.
'박근혜 외교'의 구멍을 그나마 극복하고 일본에 상처받은 국민의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은 결국 국민이다.
정부가 못났으면 국민이라도 잘 나야 한다는 것이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질곡의 역사를 살아온 우리의 DNA에 각인돼있다. 1000만 촛불이 그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