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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일반

    "껍데기뿐인 집, 용산참사 못 멈춘다"

    [노컷 인터뷰] 이상현 한옥연구소장 "문화 도려내는 재개발 그만둬야"

    지난 2009년 1월 20일 벌어진 용산참사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 한 장면(사진=시네마달 제공)

     

    용산참사 8주기를 이틀 앞둔 지난 18일, 이상현(52) 한옥연구소장은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의 재개발은 문화를 통째로 도려내면서 그 안에 있던 삶 자체를 제거하는 쪽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난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주택공사(현 토지주택공사) 재개발과에서 일하면서 이러한 재개발 정책의 한계를 절감했다고 한다.

    "재개발은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분야예요. 예를 들어 저희 집에 새 보일러를 설치하고 얼마 안 돼 재개발이 결정됐다고 쳐요. 제 입장에서는 새 보일러에 대한 보상도 받는 게 맞죠. 그런데 (재개발 주체는) 보통 이런 것을 고르게 확인해 주지 않아요. 이때 돈이 소통의 방식으로 환원되는데, 불가피하게 문화가 파괴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우리네 삶에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이 있잖아요. 이웃 사이 정, 동네 단골집이 될 수도 있고요. 이렇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을 지닌 사람들은 재개발의 이익에서 철저하게 배제되고 쫓겨나는 거죠."

    지난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 재개발에 반발하던 철거민 등이 망루 농성을 벌이던 중, 경찰의 무리한 진압 과정에서 불이 났고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목숨을 잃었다. 삶의 터전을 지키고자 망루에 올라 농성을 벌이던 철거민들은 "여기 사람이 있다"고 절규했지만, 국가권력은 그들의 목소리를 짓밟았다.

    용산참사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결국 자본력을 지닌 소수 특권층의 이익을 위해 다수 기층민을 소외시킨 채 재개발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이 소장의 진단이다.

    "재개발은 기본적으로 합리성을 강조하는 서구의 사고방식 안에서 움직여요. 우리의 문화 맥락 안에 있는 게 아닙니다. 어느 지역을 좌표평면처럼 완전히 밀어내고 그 위에 사각형 빌딩을 짓는 식인데, 이 과정에서 그 안에 숨쉬는 인간적인, 사회적인 면모는 철저하게 제거됩니다."

    그는 도심 개발의 가속화 탓에 집값·임대료가 올라 원주민들이 바깥으로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 역시 기층민의 소외 문제로 접근했다.

    "대도시 위주로 정치·사회·경제가 돌아가면서 적은 자본을 지닌 사람들은 대도시에서 버텨내기 힘들어졌습니다. 경제력이 없는 사람들은 도심 재개발에서 단절돼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그런데 이젠 도심 재개발조차 포화단계로 접어들었고, 그 수요가 얼마나 더 생길 수 있을지 생각해 볼 단계에 왔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자본의 문제를 넘어서는 단계까지 치닫고 있는 것으로 여겨져요. 도시 자체가 커다란 위기에 빠질 수도 있는 단계로 가고 있다는 말이죠."

    ◇ "소통이 사라진 집…문화와 동떨어진 삶이 주는 스트레스"

    이상현 한옥연구소장(사진=자료사진/노컷뉴스)

     

    이 소장이 한옥을 깊이 연구하게 된 데는, 집이라는 문화의 가치를 제대로 품은 모델로서 한옥의 특성을 발견해 온 영향이 컸다. 그는 "우리네 문화의 핵심은 '소통'에 있는데, 한옥은 소통에 특화된 공간"이라고 분석했다.

    "한옥은 집을 작게 짓고 바깥에 너른 마당을 뒀어요. 방 하나에서는 여럿이 살았죠. 특히 마당과 대청을 쓸 수 없던 추운 겨울에는, 자고 일어났을 때 이불을 개야만 밥상이 들어왔고 밥상이 나가야 또 다른 다른 일을 할 수 있었어요. 생활 자체가 스케줄화 돼 있는 거죠. 결국 다른 나라 건축이 공간을 나누는 개념이라면, 우리나라 건축은 시간을 나누는 개념으로 전혀 다르다는 점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주거 환경은 우리네 삶을 규정짓는 문화와 긴밀하게 맞물리면서 서로를 강화해 왔을 것이다. 이 소장은 이를 '빨리빨리' 문화와 '은근과 끈기'의 문화로 설명했다.

    "앞서 설명했듯이 방 하나에서 여러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어느 것 하나 삐끗하면 가족의 스케줄이 진행 안 돼요. 그러니 '빨리빨리'라는 말이 입에 밸 수밖에 없었겠죠. 한옥은 여름에는 마당과 대청을 쓸 수 있어서 집을 굉장히 넓게 활용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겨울에는 방으로 그 범위가 좁혀지는 걸 견뎌내야 했죠. '은근과 끈기'가 필요했던 건데, 장시간 있어야 따뜻해지는 한옥의 구들(온돌)이 이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소장은 '빨리빨리' '은근과 끈기'가 조화를 이룬 우리네 문화는 긴밀한 소통에 바탕을 둘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돈을 기준으로 삼는 지금의 재개발 문화가 이러한 소통의 연결고리를 부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문화적으로 소통을 중요시하는 우리 국민들이 겪는 소외감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마당'이라는 공간을 통해 마을 사람들이 긴밀하게 의견을 나눠 왔어요. 이 마당이 없어지고, 아파트가 들어서 폐쇄적 문화가 자리잡으면서 공적인 토론마당으로서 '광장'의 중요성이 커진 셈이죠. 이렇게 지난 세기 후반기부터 지속된, 급변하는 주거 문화를 통해 '광장'의 문화를 설명할 수도 있겠네요. 우리네 문화적 가치로 봤을 때, 소통으로 풀어야 할 몫이 자본으로 대체된 지금의 사회는 사람들에게 견딜 수 없는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셈이죠."

    그는 "소통에 대한 강한 욕구를 우리 문화의 근본이라고 봤을 때, 지금처럼 자본이 재개발은 물론 모든 것을 끌고 가는 사회 환경에서는 문화적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이를 조율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인데, 정경유착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우리 정치는 그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도 "대안은 정치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가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정치권에서 우리 문화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혜안을 가져야 합니다. 이번 촛불혁명에서도 확인했듯이, (제도권 정치에서) 국민의당과 새누리당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에 대해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하자, 국민들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와 가결까지 밀어붙였잖아요. 저는 '빨리빨리' 탄핵 스케줄대로 움직여 달라는 국민적 요구가 발현된 것이라고 봐요. 국민들이 정치권에 '이렇게 가면 다 망한다'고 경고한 것인데, 이러한 광장의 흐름이 결국 '은근과 끈기' 쪽으로도 연결되면서 우리네 문화와 삶의 괴리를 없애 갈 것이라고 믿습니다."{RELNEWS: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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