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민희.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저는 여성으로서 뭔가 다른 차별을 느끼진 못해요."
배우 김민희가 베를린국제영화제(이하 베를린영화제)에서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이후 기자에게 건넨 이야기다. 여성 배우로서 한국 영화계 상황에 차별을 느끼고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답을 내놓은 것이다.
정확한 워딩은 이렇다.
"여성으로서 다른 차별은 느끼지 못하고, 굉장히 좋은 여성, 여배우들이 많고 남성 영화가 많기 때문에 남자 배우들이 더 두드러지게 보이는 거라고 생각하고요. 그건 주어진 사회나 그런 상황에 어쩔 수 없이…. 별로 그렇게 크게 불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홍상수 감독과의 '불륜설'과 관계없이 해당 인터뷰는 거센 후폭풍을 몰고 왔다. 김민희가 여성 주인공 영화가 심각하게 가물고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배우 생활을 해왔던 탓이다.
상대적으로 한국 영화계보다는 상황이 나은 미국을 살펴보자.
배우 패트리샤 아퀘트는 지난 2015년 영화 '보이후드'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그는 장문의 메모를 들고 나가서 수상 소감을 했다. 영화 스태프와 출연진들에게 모두 감사 인사를 전한 후, 페트리샤 아퀘트는 마지막 한 마디로 배우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우리는 다른 모든 이들의 평등권을 위해 싸워왔습니다. 이제는 미국 여성들의 동일 임금과 평등권을 위해 한 번 더 싸워야 할 때입니다."
패트리샤 아퀘트의 이 한 마디는 할리우드 '공정임금법' 제정에 불을 붙였다. 수많은 여성 배우들이 패트리샤 아퀘트의 말에 공감하며 자신의 임금 격차를 공론화했다.
배우 케이트 블란쳇 역시 지난 201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여성 주인공이 영화에 나오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편견을 깼으면 한다"고 뼈있는 소감을 남겼다. 여전히 여성 주인공 영화가 할리우드에서 '비주류' 취급 당하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었다.
국내 여성 배우들은 올 한 해, 한국 영화계의 뿌리 깊은 여성 차별을 지적했다.
영화 '미씽'의 배우 공효진은 인터뷰를 통해 "일할 때 나는 페미니스트다. 현장에서 여성 감독들의 힘이 약해 보일 때가 있는데 그럴 때 화가 난다. 한국 영화 현장은 여자들이 아닌 남자들이 분위기를 만든다"고 이야기했다.
배우 이주영은 지난해 10월 자신의 SNS에 "여성 혐오는 여성에 대한 공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이란 이유로 차별하는 것, 여성에 대한 부정과 폭력, 성적 대상화 모두 여성 혐오다. 그러므로 '여배우'라는 단어는 여성 혐오 단어가 맞다"고 의견을 밝혔다.
영화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 차별과 성평등이 공론화 되고 있는 상황. 그런데 국제 무대에 선 김민희가 한국 영화계에 엄연히 존재하는 여성 차별을 '느끼지 못한 것' 혹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한 셈이다. 영화계 내 여성 차별과 치열하게 싸워 온 김민희 또래의 동료 배우들에게는 참으로 힘 빠지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영화 '아가씨' 이후 성소수자들과 페미니스트들에게 뜨거운 지지를 받아왔던 배우이기에 이 같은 발언은 더욱 경솔했다는 비판이다.
한 네티즌(@yesitsm_e)은 "동료 배우들이 여성 배우들이 받는 부당 대우에 대해서 계속 말하고, 자기 돈까지 투자하면서 여성 배우들 위한 영화를 만드는 시점에서 '그런 거 느낀 적 없어요' 하는 건 눈치 없는 거 맞고, 눈치 없는 사람은 욕을 먹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남성 위주의 영화가 장악하고 있는 영화계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기는 커녕 저런 수동적인 언행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생각 하지 않느냐"면서 "김민희 본인도 한국에서 활동 중인 여성 배우인데 자신과 직접 직결된 문제를 모르면 안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