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선후배 사이' 이상화(왼쪽)가 21일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아쉽지만 값진 은메달을 따낸 뒤 환하게 웃고 있다. 금메달을 따낸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도 내년 평창올림픽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삿포로=노컷뉴스)
'빙속 여제' 이상화(28 · 스포츠토토)의 표정은 밝았다. 비록 아쉽게 자신의 세 번째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따내지 못했지만 웃었다. 무섭게 치고 올라온 일본 고다이라 나오(31)에 우승을 일단 양보했다.
이상화는 21일 일본 홋카이도현 오비히로 오벌에서 열린 '2017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37초70을 기록했다. 고다이라 나오(일본)에 0.31초 뒤져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상하게도 올림픽을 두 번이나 제패했지만 유독 아시안게임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아직 기량이 만개하지 않았던 2007년 중국 창춘 대회에서 은메달로 아시안게임에 데뷔한 이상화는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대회에서는 동메달로 색깔이 바뀌었다. 당초 이상화는 2010 밴쿠버올림픽을 제패한 뒤라 무난히 금메달이 예상됐지만 대회 한 달 전 발목 부상이 그야말로 발목을 잡았다.
이번 대회에서도 이상화는 오른 종아리 부상 후유증이 있었다. 지난해 11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1차 대회에서 근육 미세 파열 부상으로 100% 몸 상태가 아니었다. 여기에 일본에 온 뒤 감기까지 겹쳤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상화는 "마지막 코스에서 실수가 나와 아쉽다"면서도 "그러나 시즌 초반 몸이 좋지 않았는데 잘 한 것 같고, 은메달이 더 예쁘다"고 들어보이면서 활짝 웃었다. 이어 "아무래도 몸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고, 일본에 온 뒤 감기까지 걸렸다"고 비음을 섞어 말한 이상화는 "그러나 감기는 누구나 걸릴 수 있는 것"이라며 변명은 하지 않았다.
올 시즌 고다이라에 한번도 이기지 못했다. 이상화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4번의 레이스에서 은메달 2개, 동 1개에 그쳤고, 지난 10일 강릉 ISU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고다이라에 밀려 은메달에 머물렀다.
올 시즌 이상화(왼쪽)가 주춤한 사이 뒤늦게 전성기를 맞은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가 경쟁자로 떠올랐다.(자료사진)
하지만 내년 평창올림픽에서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이상화는 "내 나름대로 스케이팅을 한다면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실수가 있었다"면서 "(고다이라의) 속도감이 있다고 느끼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고다이라 밑에 있는 게 부담이 덜 되고 지금이 제일 편하다"면서 "고다이라는 더 긴장하겠지만 나는 부담을 덜 갖고 열심히 하면 될 것 같다"고 강조했다.
고다이라도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여전히 경계심을 드러냈고, 은근한 신경전 양상까지 보였다. 고다이라는 경기 후 "이상화는 아주 좋은 선수라 레이스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고 경기를 돌아봤다. 이어 "여전히 이상화는 여전히 내게 강한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킨다"면서 "평창올림픽에 대한 자신감은 아직 붙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올 시즌 고다이라는 월드컵 5차 대회까지 치르고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세계선수권까지 강행군의 연속이다. 그러나 고다이라는 "31살인데 힘들지 않느냐"는 말에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아) 30살"이라고 손사래를 치며 "전혀 피곤하지 않고 재미있게 즐긴다"고 강조했다.
경기 후 이상화와 나눈 얘기도 들려줬다. 고다이라는 "레이스를 마친 뒤 이상화가 다가와 축하하면서 '친구(friend)'라고 하더라"면서 "그래도 '내가 선배'라고 농담을 했다"며 웃었다.
고다이라는 한국어를 조금 할 줄 안다고 했다. 이에 "이상화가 친구이자 경쟁자, 또 한국어 선생님이냐"고 묻자 고다이라는 "그런 의미가 있지만 내가 선배"라고 또 강조하며 웃었다.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이길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이는 이상화와 여전히 빙속 여제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내면서도 선배의 우위를 강조한 고다이라. 둘의 진검승부는 내년 평창에서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