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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작가 한정식, 추상사진에서 '고요'를 듣다

공연/전시

    사진 작가 한정식, 추상사진에서 '고요'를 듣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전라남도 영암 월출산 도갑사, 1986(2017), 디지털 프린트.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사진 작가 한정식의 작품 '고요'시리즈 Ⅲ의 '영암 월출산 도갑사'(위 작품)는 그의 사진 미학을 잘 드러낸다. '추상사진' 혹은 '사진적 추상'으로 불리는 그의 사진 미학은 형태를 벗어난 미를 추구한다. 이 작품에서 보여지는 것은 빈 방에 네모난 빈 탁자 뿐이다. 한 작가는 "사진에서 추상을 만들어 봐야 사물의 제1의 의미를 벗어나는 것이다. 도갑사 방을 마주한 순간 알 수 없는 떨림이 일었다. 방 사진을 찍었는데, 방이 아니다"고 했다. 그의 떨림은 어떤 느낌에서 온 것일까. 이 방은 수행자가 이 탁자에서 혼자 공부를 했거나 혹은 둘이서 차를 나누며 대화를 했을 법하지만, 작가가 포착한 순간은 비어 있다. 빈 방의 그 탁자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적막한 공간에 과거와 미래가 현재를 향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진다. 작가는 과거,미래, 현재가 통합된 시간이 펼쳐진 이 텅 빈 공간과 마주치며 내면의 평정과 고요를 느꼈으리라. 한 작가의 고요 시리즈는 내면의 고요를 반영하는 사물들과 만나며, '추상 사진'의 다양한 변주를 이뤄낸다.

    한 작가는 추상 사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사진의 추상화는 사물 벗어나기를 통해 이룰 수 있다. 구체적 사물 없이는 찍히지 않는 사진이 어떻게 사물을 벗어날 수 있을까. 사물을 찍되 사물이 느껴지지 않고, 사물의 형태가 아니라 느낌이 먼저 다가오는 사진이 이루어질 때 사진은 사물을 벗어난 것이 된다. 사물이 제1의적 의미에서 벗어나 제2, 제3의 의미를 창출할 때, 의미도 형상도 벗어난 경지에 이르렀을 때, 그 때 사진적 추상은 이루어진다."

    경기 가평, 2001(2017), 디지털 프린트.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은 '한정식_고요'전을 과천관에서 열고 있다. 이 전시에는 1980년대부터 최근작까지 전 생애 작품 100여점이 총망라된다.

    한정식은 1980년대부터 <나무>, <발>, <풍경론> 시리즈를 통해 사진으로 이를 수 있는 추상의 세계를 끊임없이 실험해 왔다. 그는 왜 왜 나무를 찍었는가. 왜 그토록 오랫동안 발을 찍었는가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물으면 얼른 대답을 찾기가 어렵다. 솔직히 나무가 좋아서 찍었고, 우연히 발이 눈에 들어와서 찍기 시작한 것 뿐 이다. 나무건 발이건 그 소재의 어떤 특성을 깊이 생각하고 그것이 내게 준 의미를 찾아 찍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그 소재가 내 안에서 나와 만나 빚어내는 화음을 찾아 그를 읊어낸 것이다."

    대표작 <고요>시리즈는 대상의 구체적인 형태를 벗어나기 어려운 사진의 특성을 극복해낸다. 작가는 더 이상 대상의 형상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대상에 접근하여 기존 사물이 가진 의미가 아닌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낸다. 이에 따라 작품 속의 사물들은 관객들에게 고유의 형태로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작가 한정식이 사진을 찍으며 정제해 낸 '고요'한 느낌으로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고요' 시리즈를 통해 한정식 작가가 찾아낸 추상사진의 정수와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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