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꽃에 물을 안 줘서였나' KIA 이범호가 16일 LG와 홈 경기에서 연장 11회 끝내기 안타를 터뜨린 뒤 동료들로부터 격한 물 세례를 받고 있다.(광주=KIA)
1, 2위 대결로 관심을 모은 KIA-LG의 시즌 4차전. 최고 인기를 다투는 라이벌답게 팽팽한 연장 승부가 펼쳐졌다. 결국 승부를 가른 것은 장타력이었다.
KIA는 16일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LG와 '2017 타이어뱅크 KBO 리그' 홈 경기에서 연장 11회 끝에 3-2 승리를 거뒀다. 초반 1위 싸움의 관건이 될 광주 대회전의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승부가 이어졌다. KIA가 1회 김선빈의 적시타로 앞서가자 LG는 5회 김용의와 박용택의 적시타로 승부를 뒤집었다. 그러나 KIA는 6회 이범호의 동점 1점 홈런으로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 갔고, 11회 끝내기로 승부를 매조졌다.
이날 두 팀이 펼친 경기력은 1, 2위답게 엇비슷했다. 선발 대결에서 KIA 김진우와 LG 차우찬이 나란히 6이닝 2실점으로 제몫을 다했다. 타선도 KIA가 10안타 4사사구, LG가 8안타 3볼넷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승패를 결정지은 요인은 장타력이었다. 이날 KIA는 3점 모두 장타에서 얻어냈다. 1회 김선빈의 2루타로 선취점을 뽑았고, 6회 이범호의 홈런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11회 역시 안치홍의 3루타와 이범호의 2루타성 안타로 승리를 품에 안았다.
올해 1홈런에 그쳐 있던 이범호는 지난해 33홈런 108타점을 올린 거포의 부활을 알렸다. KIA로서는 최형우가 최근 거의 홀로 책임졌던 팀의 장타를 이범호가 날려주면서 타선의 무게감을 키울 계기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반가웠다.
'이것이 시원한 장타' KIA 이범호(왼쪽)가 16일 LG와 홈 경기에서 6회 동점 홈런을 날리고 있다. 오른쪽은 1회 김선빈이 선제 적시 2루타를 날리는 모습.(광주=KIA)
반면 LG는 8안타가 모두 단타였다. 5회 집중 4안타로 2점을 뽑았지만 응집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나머지 4안타가 산발이었고, 특히 6~9회까지 누상에 주자가 나갔지만 모두 1사 후 병살타로 이닝이 마감되며 분루를 삼켰다.
안타도 좋지만 한 베이스를 더 갈 수 있는 장타는 더 좋다. 안타는 일반적으로 3개가 모여야 득점으로 연결되지만 1개의 장타는 앞뒤 연결에 따라 1개의 안타와 합쳐져 득점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실제로 KIA는 1회와 11회 모두 장타 1개와 안타 1개로 득점했다. 사실 LG도 경기 중후반 2루타 이상 장타가 1개라도 나왔다면 4이닝 연속 병살타는 나오지 않았을 터였다.
최근 5시즌을 보면 장타력은 우승을 위한 중요한 조건이었다. 지난해 통합 우승팀 두산은 장타율 1위(4할7푼3리)였고,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정규리그를 제패한 삼성도 장타율 1, 2위였다. 그만큼 득점 확률이 높고, 특히 승부처에서 홈런은 승리 가능성을 높였다.
올 시즌 KIA의 장타력은 중간 수준이다. 팀 장타율(3할9푼6리)과 홈런(28개) 모두 6위다. 선발진이 워낙 강력해 1위를 달리지만 승부처 장타력은 나쁘지 않다. 지난 13일 SK와 원정에서 최형우가 홈런 2방으로 대역전극을 완성한 KIA는 16일 최형우가 침묵했지만 이범호, 안치홍, 김선빈 등이 장타를 터뜨려 승리를 이끌었다.
KIA의 장타력은 더 무서워질 가능성이 적잖다. 지난해 KIA는 팀 홈런(170개), 장타율(4할5푼2리) 모두 3위였다. 이를 이끈 이범호에 지난해 23홈런 101타점을 올린 김주찬까지 부활하면 최형우, 나지완 등과 리그 수준급 장타 군단을 이룰 수 있다.
'아싸, 또 한번' KIA 김선빈(오른쪽)이 16일 LG와 홈 경기에서 9회 채은성의 땅볼 때 2루수 안치홍의 토스를 받아 1루 주자 오지환을 포스 아웃시킨 뒤 1루로 송구해 병살 플레이를 완성하고 있다.(광주=KIA)
LG는 전통적으로 장타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팀이다. 올해도 팀 장타율 8위(3할8푼4리)에 홈런 9위(22개)에 그쳐 있다. 팀 평균자책점(ERA) 1위(2.86)를 달리지만 '소총 부대'의 한계에 종종 직면한다. LG는 올해 병살타 1위(42개)의 불명예도 안고 있다.
가장 큰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는 만큼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잠실 이웃 두산에 비해 LG는 장타력에서 뒤지는 경우가 많았다. 외부 수혈로 이를 보충하려 했지만 홍현우는 실패했고, 양준혁도 장타력은 앞선 삼성, 해태 시절보다 떨어졌다. 최근 외부 FA(자유계약선수)였던 정성훈, 이진영(현 kt)은 중장거리 타자였다.
때문에 LG는 최근 세대 교체를 통해 젊은 거포를 키워내고, 기동력을 키우는 등 장타력을 벌충하기 위한 노력을 쏟아왔다. 그 결과 채은성, 양석환 등이 조금씩 빛을 발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한 시즌 두 자릿수 홈런이 버겁다. 양상문 감독 부임 이후 도루 등 적극적인 베이스 러닝이 자리를 잡았지만 올해 도루 성공률 8위(62.7%)의 대가도 적잖다.
결국 LG로서는 안전하게 두 베이스 이상을 갈 수 있는 장타가 숙제인 것이다. 특히 LG는 루이스 히메네스의 장타가 터지지 않으면 어려운 경기를 할 때가 많았다. 16일에도 히메네스는 병살타 1개 포함, 5타수 무안타에 머물렀다. 4번 타자가 침묵할 때 KIA처럼 받쳐줄 제 2의 장타 옵션이 부족한 점이 아쉬운 LG다.
특히 에이스급 투수들이 나왔을 때나 투수전 양상이 될 경우 장타의 가치는 엄청나다. NC는 16일 두산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로부터 권희동이 2점 홈런을 터뜨려 이길 수 있었다. 이 한방으로 NC는 LG를 0.5경기 차로 밀어내고 2위로 올라섰다.
일단 KIA가 장타의 힘을 앞세워 LG와 진검승부에서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 과연 장타력에서 뒤진 LG가 반격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남은 시리즈를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