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씨(사진=자료사진/노컷뉴스)
"왜 나만 갖고 그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 짧은 유행어에는 지난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민간인 학살 등 자신의 만행을 전면 부인해 온 전두환 씨의 심리 상태가 오롯이 담겼다는 진단이 나온다. 그는 최근 내놓은 회고록에서도 5·18을 '폭동'이라 쓰고, 당시 계엄군의 민간인을 향한 발포 명령도 없었다고 부인했다. 뻔뻔함으로 일관해 온 전 씨의 이러한 행태에는 동시대를 사는 국민들 위에 군림하려는, 여전히 스스로를 강자로 여기는 비뚤어진 인식이 작용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정신과 전문의 최명기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은, 전 씨가 5·18 관련 국내외 사료를 통해 이미 검증된 사실마저 회고록으로 재차 부정한 데 대해 두 가지 이유로 설명했다.
"첫 번째, 기록물은 영원히 남는다는 데 있다. 지금 기록물을 담겨 두지 않으면 본인(전 씨)이 앞으로도 계속 그러한 인간으로 남게 된다는 것 때문에 회고록을 냈다고 본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볼 때 명명백백하게 (전 씨의) 잘못이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나쁜 인간으로 남지 않으려는 본능적인 의지가 작용한 것이다. 두 번째는 전 씨 본인이 그렇게 믿고 있다는 것이다. 본인은 대통령으로서 직선제 약속을 지키는 등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가는 과도기적 인물로 스스로를 평가하고 있을 텐데, 그것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데 피해의식을 지녔을 수 있다."
최명기 소장은 전 씨의 피해의식을 두고 "그의 입장에서는 자기 '공로'에 해당하는 것은 아무 것도 인정 받지 못한다고 여기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회고록 가운데 '광주사태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이 원죄가 됨으로써 그 십자가는 내가 지게 되었다'(1권 27쪽)는 내용 등도 그 근거다.
"어디까지나 본인이 생각할 때 자신의 집권기가 박정희 정권보다는 훨씬 자유로웠고, 적자에 허덕이던 경제도 기초를 잡았다고 자부할 것이다. 본인이 군인이 될 때부터 대통령을 염두에 뒀던 것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권력욕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도 생각하는 듯하다. 당시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맡아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5·18 직후 전 씨를 위시한 신군부가 정권을 잡기 위해 만든 위헌적 기관)를 관할하다 보니 대통령까지 하게 됐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이 점에서 전 씨는 자기 공에 대한 평가가 하나도 없다는 데 대해 굉장히 속상해 하고 있을 것이다."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역시 같은 맥락에서 "역사적 단죄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잘못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수용하면서 처벌을 달게 받는 사람은 드물다. 일반적으로 잘못을 부정하거나 변명하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전 씨의 경우 회고록을 준비한 기간이 몇 년 되는 것으로 아는데, 역사적으로 내려질 판단에 대한 대응책 성격이 강해 보인다. 우리가 흔히 일제시대 부역자들을 친일파로 규정하는 것처럼, 역사는 전 씨에게 어마어마한 단죄를 내릴 것이다. 이 점에서 남들이 어떻게 말한다 하더라도 전 씨 본인은 일단 부인을 해 둬야 이후 나올 평가에서 '아닐 수도 있겠구나' 혹은 '그렇다 하더라도 100% 잘못은 아니겠지'라는 여지를 만들어 보겠다는 심리인 셈이다."
정태연 교수는 "결국 전 씨 본인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며 "권력자인 자신에게 엄정한 역사적 판단과 평가가 내려질 것이라는 점과 자자손손 그 단죄가 대물림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분명한 증거가 있어도 계속 부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본인의 안위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개인적인 수준의 평가를 넘어서는 사회적·역사적 평가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파면되고 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아서 5년형 받을 것을 6년형 받게 될 수도 있지만, 그들은 죄를 인정하는 것보다는 그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 "뻔뻔한 태도는 곧 '넌 욕해라, 난 신경 안 쓴다'는 우월감"
5·18 유가족들이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연희동 전두환 씨 자택 앞에서 전두환 회고록 규탄 도중 회고록 폐기를 주장하며 오열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전문가들은 "전 씨는 스스로 (5·18 등과 관련해) 충분히 사과를 했고 벌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전 씨는 지난 1997년 '군사반란' '내란목적살인죄' 등을 근거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5·18 이후 17년 만에 단죄가 이뤄지는 듯했다. 하지만 불과 8개월이 지난 그해 12월 "국민 화합과 지역 갈등 해소" 명목으로 특별사면돼 지금에 이르렀다.
최명기 소장은 "본인(전 씨)은 사과도 하고 백담사에도, 감옥에도 갔다왔고 감옥에서 풀려난 것도 합법적인 절차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분명히 죗값을 치렀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더이상 묻지 말아야 하는데, 계속 이렇게 사과하라고 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억울해 하고 있을 것"이라고 봤다.
정태연 교수는 이러한 전 씨의 행태 밑바탕에는 "역사적 단죄에 대한 두려움과는 반대로, 동시대를 사는 국민들에 대한 '무시'가 깔려 있다"고 꼬집었다.
"두려움은 위협을 느끼는 데서 기인한다. 전 씨의 경우 그 위협을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살인자' '학살자'라고 욕먹더라도 '너희는 그렇게 욕해라. 나는 신경 안 쓴다'는 식인 것이다. 이는 본인이 우월한 입장에 있다고 느낄 때 가능한 것이다. 지위상으로 상대에게 불리할 것이 하나도 없다고 여기는 데 따른 우월감과 다름없다."
정 교수는 그 연장선상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예를 들었다.
"한 친구가 나에게 잘못을 했는데, 사과하지 않는다고 치자. 그러면 나 역시 친구를 용서하지 않으면 된다. 상대가 나를 무시하면 나도 상대를 무시하면 된다. 서로 동등한 지위에 있을 때는 이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지위가 다르다는 것을 서로 인지하고 있을 때는 안 통한다. 피의자 신분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같은 사람이 국민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단적으로 알 수 있다. 명백한 증거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잘못을 인정하라고 하는데, '잘못 없다'고 한다. 국민들의 질타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그러면 '국민들이 저들을 무시하면 되지 않나'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무시는커녕 화만 계속 쌓일 수밖에 없다. 가해자는 피해자를 무시할 수 있지만, 피해자는 가해자를 무시하기가 어려운 것이 우리네 안타까운 현실이다."
최 소장 역시 "우리는 가해자에게 '어서 사과하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며 "가해자에게 용서를 갈구하는 것은 오히려 그 가해자를 강자로 만드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역설했다.
"가해자의 사과를 바라는 심리는 오히려 가해자의 입장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상대는 나에게 사과할 마음이 없는데, 나는 저 사람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불편하다고 치자. 그러면 나는 상대에게 가서 자꾸 '사과하라'고 얘기하게 된다. 그런데 그럴수록 상대는 더 사과하지 않는다. '자꾸 와서 사과하라는 것을 보니까 내가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강자 심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심리적인 권력 관계에서 상대를 우위에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 "죄인은 벌이 멈추면 자기 죄도 씻겼다고 여긴다"
5·18 당시 독일 '슈피겔지'에 실려 광주의 아픔을 전 세계에 전했던,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든 아이(사진=5·18기념재단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가해자에게 사과를 요구해도 응하지 않는 현실에서, 결국 우리는 해당 가해자가 사과할 수밖에 없도록 압박하는, 공식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사회적 방편을 마련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최 소장의 지론이다.
"우리는 흔히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죄를 짓는 사람들은 벌이 멈추면 자신들의 죄도 씻겼다고 여기는 심리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전 씨는 지난 몇 년간 자기네 일가가 미납 추징금과 관련해 다각적인 압력을 받으면서 다시 한 번 죄를 상기했을 것이다. 결국 전 씨의 사과를 이끌어내는 것이 어렵다면, 그가 받고 있는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혜택을 줄이든, 어떤 형태로든 사회적 벌을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도 전 씨의 개인경호, 시설유지비 등 명목으로 한 해 평균 6억 5990만 원의 국민 세금이 쓰인다. 최 소장은 "당장 이러한 혜택을 없애는 것도 사회적 벌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정태연 교수는 "전 씨에 대한 법적 처벌이 어려운 환경에서 대안은 사회적 처벌일 텐데, 이는 사회적인 합의나 공유된 인식이 있을 때 가능하다"며 "불행하고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정치적 입장, 출신 지역 등을 윤리적 가치보다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강해 이러한 인식의 공유가 미흡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광주시민을 비롯해 많은 국민들이 '이 사람(전 씨)은 이런 대우를 받으면 안 된다'고 지적하지만, 어떠한 특정 부류의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추종하고 있다. 이는 전 씨에 대한 사회적 처벌을 어렵게 만들 뿐더러 피해자에게 또다른 상처를 입혀 치유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 사회에 서로 다른 여러 의견이 존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 등 권력을 지닌 사람들은 개인적인 이념 선호 등을 떠나 사회적인 상처 치유에 힘써야 한다. 권력자들이 이러한 일을 외면하는 순간, 그들은 그 사회에 필요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정 교수는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생겨나고 이를 둘러싼 다양한 의견이 생겼을 때, 한 단계 발전한 사회는 피해자 입장에 선다"며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동물들의 세계가 힘센 동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가해자 입장에 서는 사회는 결국 동물적 본능에 충실한 사회"라고 역설했다.
"인간으로서 균형 잡히고 공정한 사회에서 보다 행복하게 살려면 인위적으로라도 동물의 세계에서 벗어나려 애써야 한다"는 이야기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강자의 입장에 서려 하고, 그런 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일반적인 특성이라고들 말한다. 문제는 그렇게 본능에 충실한 사회를 강화했을 때 우리가 더 행복해졌느냐에 있다. 그런 사회는 반드시 망했다고 역사가 이야기해 준다. 결국 인간으로서의 자질을 발휘한다는 것은 이성적인 측면에서, 약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더불어 살면서 사회가 발전한다고 역사는 또한 말하고 있다."
그는 "나라에 아픈 사람이 엄청나게 많은데, 아프지 않은 사람들 중심으로만 세상이 돌아가면 그 나라는 결코 제대로 될 수 없다"며 "지금 당장 내가 피해자는 아니지만,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예로 세월호 희생자인 기간제 교사에 대한 순직 인정을 두고, 지난 정부는 제도상 원칙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냈다. 그렇게 희생자, 피해자의 상처는 무시됐고 치유와 통합은 물건너갔다. 상처 입지 않은 사람들이 상처를 지닌 사람들에게 '양보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본인들이 상처를 입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통합과 화합은 상처 입은 사람들의 치유 없이는 결코 이뤄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