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아이드걸스 가인의 SNS. (사진=SNS 캡처)
"네. 전 지금 치료 중인 정신병 환자입니다."
누군가는 SNS를 일기장으로, 취미 활동으로, 소통으로 활용한다. 수많은 스타들의 SNS가 범람하는 가운데 브라운아이드걸스 가인의 SNS가 최근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일반적인 스타들의 SNS와 가인의 것이 가장 다른 지점은 공개하기 어려울법한 이야기까지도 스스럼없이 올린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대중이 가진 편견이나 의심을 반박하고, 자신의 떳떳함을 증명한다. 여자 연예인들을 향한 세간의 부조리한 시선까지 지적해 나간다.
가인이 갑자기 이런 '공세'에 나선 것은 자신을 향한 도 넘은 악성 댓글 때문이었다. 그는 6월 초부터 기사에 달린 악성 댓글을 하나씩 캡처해 SNS에 게시했다.
'피곤해서 고소는 하지 않는다'면서도 자신을 둘러싼 '임신설' 루머가 사실이 아님을 명확히 했다. 가인은 "내가 질질 짜고 고소할 것 같니. 의아하면 네가 직접 와라, 나한테"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러면서 '폐렴', '공황 발작을 통한 불안 장애', '불면증' 등이 적힌 진단서를 공개했다.
그는 자신이 병을 앓게 된 이유를 "어제 팬들 안심시키고 나니 공황장애가 바로 괜찮아졌다. 잠깐 순간적으로 욕이 좀 나오고 소심해진다. 누군가에게 상처 주고, 상처 받은 만큼 그 두려움과 겁이 스스로를 불안증에 떨게 만든다"고 밝혔다.
스스로를 '치료 중인 정신병 환자'라고 칭하면서 "부끄럽지 않다. 나는 치료될 것이고 지금부터 죽을 각오, 감옥 갈 각오하고 미친 이유를 한 가지씩 말씀드리겠다"고 SNS를 통해 끊임없이 소통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대부분의 연예인들이 방송이나 인터뷰를 통해 힘겹게 아픔을 고백하는 것과 사뭇 다른 행보다.
그는 "악플러나 몰상식한 인간들 불러서 욕 좀 하고 싶으나 앞으로 내 글이 더 많이 남았다. 댓글 따위 즐기자"라고 계속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경고했다.
정점은 '여자 연예인이 산부인과에 가는 행위'에 대한 가인의 입장 표명이었다. 유독 엄격한 도덕적 프레임에 여자 연예인들을 가두는 세상을 꼬집은 것이다.
가인은 "왜 모든 여자 연예인들이 산부인과를 숨어 다녀야 합니까. 내과나 외과는 그냥 가면서"라며 "임신은 축복할 일입니다. 전 임신이 아니고요. 모든 여자 연예인 분들이 당당히 병원을 갔으면 한다"고 '핵심'을 찔렀다.
그로부터 3일 뒤, 가인은 자신에게 대마초를 권유한 배우 주지훈의 친구를 고발했다. 주지훈과 가인은 공개 연애 중인 연예인 커플 중 하나다. 이로써 가인은 자신을 둘러싼 문제 요소를 또 한 번 공론화시켰다.
가인은 자신을 '전직 약쟁이 여자친구'라고 이야기하며 "아무리 주지훈 씨 여자친구라고 해도, 주지훈 씨 친구인 A 씨가 제게 '떨'(대마초)을 권유하더군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정신이 좋지 않았으니 사실 살짝 넘어갈 뻔했죠"라며 "저는 누구보다 떳떳하게 살았으며 앞으로도 합법이 될 때까지 대마초 따위…. 이미 (병 때문에) 합법적으로 모르핀을 투여 중인데 나한테 대마초 권유하면 그 때는 죽는다"라고 경고성 메시지를 남겼다.
이 때문에 A 씨가 한 때 뜨거운 관심을 받았지만 당사자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간 후, 가인은 "권유한 것은 맞지만 본인은 절대 하지 않았다고 하니 그건 그 분이 알아서 할 일이다. 경찰 조사 잘 받고 오겠다"고 알렸다.
브라운아이드걸스의 가인.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 껄끄러운 '폭로' 혹은 사이다같은 '용기'가인의 이 같은 SNS를 두고 온라인상에서는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SNS로 지나치게 사생활을 폭로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부터 그가 고백한 '병'을 빌미로 비하하는 댓글 또한 계속해서 재생산되고 있다. 그렇다면 가인은 왜 자신의 '근황'을 다른 연예인들과 달리 솔직하게 전하는 방식을 택한 것일까.
사실 연예인 '가인'의 SNS라는 것만 빼놓고 보면 일반인들이 어려운 일을 겪을 때 그곳에 스스로의 어려움을 고백하는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SNS는 누구에게나 소통의 창구가 될 수도 있고, 대나무숲처럼 해소의 창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가인 정도의 파급력있는 연예인들은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적지는 않는다. 팬들 혹은 대중들이 주시하는 SNS는 '무해해야만' 하는 소통의 창구이기 때문이다. SNS를 즐기는 연예인들이 숨 쉴 곳을 찾기 위해 '비밀' 계정을 파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람이라면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내보일 수 있는 장소 하나쯤은 필요하다.
연예인들이 SNS를 통해 사회적 의미를 가진 소신 발언들을 할 때마다 화제가 되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최근 '국정농단' 사태를 거치고, 정권이 바뀌며 다소 풀렸지만 기본적으로 대다수 국내 연예인들은 정치나 사회 문제에 목소리 내기를 꺼린다. 대통령 선거철이 되면 직접 나서서 후보를 지지하기도 하는 해외와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다. 자신의 사회적 주관을 드러낼 기회를 차단 당하면서 연예인들은 사람이기보다는 어떤 '이미지'로서 존재하게 된다.
여러 연예인들의 소신 발언 못지 않게 가인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연예인 개인이 직접 자신을 둘러싼 억울한 루머와 문제를 해명함과 동시에 대중을 향해 인간적인 소통을 시도한 사례라서 그렇다. 자기 자신이 몸소 겪고 있는 삶의 문제를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하는 것은 일반인이라도 쉽지 않다.
아마 일반인이었다면 온 대중이 관심을 갖는 '루머'에 휩싸이지 않았을테니 애초에 이 같은 일이 없었을 수도 있다. 역설적으로 연예인이라서 겪는 고질적 문제가 가인에게 자신을 터놓도록 이끌었다.
여자 연예인이기에 그가 더 대중의 폭력에 쉽게 노출된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결국 가인이 자신의 아픔이 담긴 진단서를 공개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임신설' 루머로 온갖 억측과 성희롱 댓글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여자 연예인들에게 특정한 여성상을 요구하고, 또 '임신'이라는 사생활까지 관음적 시선으로 소비해버리는 습관이 고착화된 결과다. 남성 중심적인 프레임에 갇혀 끊임없이 성적 대상화됐던 여자 연예인들에게 가인의 한 마디는 시원한 '사이다'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