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tvN 제공)
글을 통해 한국 사회의 젠더 불평등 문제를 꾸준히 지적해 온 문유석 판사가 tvN 인기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을 두고 "여성 패널 한두 명을 넣는다면"이라는 전제를 달며, 남성 위주로 꾸려진 지식 분야의 불평등을 에둘러 비판했다.
문유석 판사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알쓸신잡'이 배나온 아재 4명 만의 술자리 수다라서 보기 싫다, 여성은 왜 배제했느냐는 등의 소감이 자주 눈에 띈다"고 운을 뗐다.
"하긴 나도 전작 '윤식당'이 더 좋긴 했다. 윤여정-윰블리 케미를 중심으로 나대지 않고 할 일 잘 해 내는 이서진-신구가 받쳐주는 안정된 구도. '알쓸신잡'은 좀 피곤하다. 궁금해지면 대안도 상상해보게 된다. '알쓸신잡' 저 4명 자리에 들어가 저런 잡학 주제들에 대해 저들과 한 치도 밀리지 않고 재미있는 썰과 구라를 풀어낼 여성 '구라꾼'(푸는 방식은 아재 스타일일 필요 없지만)은 누구 누구가 있을지 궁금해졌다. 누가 있을까? 영화 얘기라면 김혜리 기자가 떠오르긴 하는데…."
tvN 측은 '알쓸신잡'에 대해 "분야를 넘나드는 잡학박사들이 국내를 여행하면서 다양한 관점의 이야기를 펼쳐, 딱히 쓸데는 없지만 알아두면 흥이 나는 신비한 ‘수다 여행’을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잡학박사'는 작가 유시민,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작가 김영하, 물리학자 정재승 4인이다. 이 프로그램은 방송 2회 만에 평균 시청률 5.4%(케이블·위성·IPTV 통합 유료플랫폼 기준)를 기록하며 화제몰이 중이다.
문 판사는 "인문학·과학 강연 시장 등을 떠올려봐도 저 4명 정도의 대중적 인지도 있는 여성이 언뜻 떠오르지는 않는다. 물론 이 또한 제도권 내에서는 기회가 공정하게 주어지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다"며 글을 이었다.
"재야의 고수가 있겠지. 그렇다면 재야 고수가 내공 있는 잡학 수다를 풀어대는 페북에서 찾아본다면? 페북판 '알쓸신잡'이랄까. 에고 죄송하게도 난 내 하고픈 말만 틱틱 올리지 페북을 열독하는 편은 아니라 아는 범위가 좁다. 떠오르는 고수라고는 산타크로체님과 오석태 박사님 밖에 없네. 기왕 말난 김에 추천 환영. 젠더 이슈에 대해 꾸준히 글을 올리는 여성분들은 여러분 계신 것 같고 공부가 된다. 주로 셀카 위주로 주목받는 분들도 있는데 이미지 또한 하나의 중요 콘텐츠라 생각 하지만 일단 여기서는 제외. 그 외 '알쓸신잡'이 다루는 정치·경제·역사·문학·과학 분야(결국 메이저 지식시장 자체?)의 재야고수 페부커 성별 분포는 어떤지? 재야로 넓혀도 여전히 남성에 치우쳐 있다면, 질문은 더 근본으로 가게 될 것."
◇ "무심코 놓치기 쉬운 젠더 관점을 여성 패널이 계속 환기시켜 준다면"
(사진=문유석 판사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그는 "인류의 메이저 지식 분야, 즉 판 자체가 남성 위주라면, 새로운 여성 지식인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 분야 자체가 대두되어야 한다는 거?"라며 "페미니즘이 그 새로운 지식 분야인가, 단지 새로운 '관점'의 제시인가? 기타 등등… 어렵다…"고 전했다.
이어 "여기까지 생각하니 다시 처음 '알쓸신잡' 패널 구성 문제로 되돌아가게 된다"며 "냉정하게 봐서 현재 시점에 저 4명 정도로 대중성 있는 여성 인문학과학 스타 플레이어는 없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페미니즘 여성 강연자·필자 4명으로 이런 수다예능을 만든다면? 일부 열성 시청층은 있겠지만 '알쓸신잡' 정도로 상품성이 있을 리 없어 보인다. 방송을 포함한 문화 시장의 헤게모니가 여성 시청자에게 있음에도 그렇다. 여성 시청자도 '페미니즘 알쓸신잡'보다 스타 아재 4명을 선택할 것이다. 그것이 시장이다. 난 1차적으로 시장을 중시하고, 2차적으로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며 미래지향적 가치를 추구하자는 쪽이니까, 그런 관점에서 보면 '알쓸신잡'의 4명 패널은 그대로 두거나, 이 중 한 명 정도만 줄인 후, 이들에게 말빨 안 밀리는 여성 패널 한두 명이라도 넣는 방안이 떠오른다."
문 판사는 "그 여성 패널은 자기 전문 분야 썰과 함께 이들 아재들(그리고 시청자들)이 무심코 놓치기 쉬운 젠더 관점을 계속 환기시켜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시민 씨 말이 너무 길어지거나 화제 독점할 때 나이 위주로 발언권 형성되는 남성 위계 문화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핀잔을 줄 수 있으면 더욱 좋다. 그렇다면 아예 대차고 젊은 여성도 좋고… 박차오름인가…. p.s. 에고 그렇다고 진짜 방영중인 남의 프로그램에 배놔라 감놔라 하는 소리는 아니고, 단지 그 프로그램을 매개로 한 사고 실험 같은 거임. 난 지금 상태로도 재밌게 보고 있는데, 와이프는 금세 흥미를 잃어하는 걸 보고 생각해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