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EBS '까칠남녀' 방송 화면 갈무리)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기념일도, 다른 특별한 날도 아니었답니다/ 지난 밤 그는 저를 벽으로 밀어붙이고 목을 졸랐어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지난 밤 그는 저를 또 다시 때렸어요// 그는 저를 때릴 때마다 꽃을 선물했어요/ 그도 분명 미안해 하고 있을 거예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답니다/ 제 장례식 날이었거든요' - 폴레트 켈리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지난 17일 밤 방송된 EBS 1TV 젠더 토크쇼 '까칠남녀'에서 소개된 한 편의 시다. 이날 방송에서는 '죽어도 못 보내 - 안전이별'을 주제로 데이트·이별 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밀도 있게 다뤘다.
문화평론가 손희정은 "다양한 데이트 폭력의 끝은 살인인 경우들이 있고, 한국에서는 (여성이) 3일에 1명씩 (애인 혹은 배우자에게) 살해 당하고 있다"며 "1년에 100명인 셈인데, 사실 엄청난 테러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패널들은 소위 '리벤지 포르노'라 불리는, 개인 성행위 동영상을 찍은 뒤 협박의 도구로 악용하는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성우 서유리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방통위(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접수된 '리벤지 포르노' 신고 건수가 약 2만 건에 달했다"고 지적했다.
아래는 이날 방송에서 '한 언론사로 접수된 사연'이라고 소개된 어느 여성의 목소리다.
"안녕하세요. 저는 2년 정도 알고 지낸 대학원 동기 오빠와 작년 초부터 교제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사귄지 한 달쯤부터 오빠는 제가 다른 남자 동기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더니, 문자 메시지를 감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더 지나자, 성관계를 할 때 동영상을 찍자며, '여태까지 사귀었던 남자들과 다른 점을 보여 달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계속 거절하다가 결국 동영상을 찍었는데, 그 후로는 저와 싸울 때마다 '성관계 동영상을 대학원 동기 단톡방에 올리겠다'며 협박을 합니다.
화가 나면 한 번씩 저를 민 적은 있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는데, 얼마 전 새벽에 오빠가 술에 취해 전화가 왔더라고요. 자다 깬 제가 대충 '잘 자'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자, 성의 없는 제 말투에 화가 난 오빠는 제가 혼자 사는 아파트로 찾아왔고, 그날 저는 오빠에게 밤새도록 맞았습니다.
당연히 헤어지자는 말도 해봤지만, 화가 풀리면 항상 진심으로 사과하고 잘해주고, 다정하게 챙겨주거든요. 싸울 때마다 오빠는 제가 헤픈 여자고, 맞을 만하니까 맞는 거라는 식의 말을 하는데, 저도 점점 '그런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대학원에서 평판도 좋고, 교수님이나 동기들과 관계도 좋은 사람이거든요. 제가 잘하면, 오빠의 이런 면들도 변할 수 있겠죠?"
이를 접한 영화감독 봉만대는 "사랑과 폭력은 공존할 수 없다. 이것은 사랑을 베이스로 두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다. 당연히 계속 만남이 아니라 신고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MC 박미선은 "(해당 여성이) '내가 그런가?'라는 생각을 했다는 점이 너무 슬프다. '네가 헤프고 네가 그런 식으로 다니니까 너는 그런 여자다'라고 (남자친구가) 얘기를 계속 했으니까"라며 "이 사람(남자친구)이 사회적으로 (평판이) 너무 괜찮은 사람이니 '내가 뭔가 잘못된 건가?'라는 (자존감을 잃어버리는)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슬픈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 "젠틀했던 그, '헤어지자'는 말의 반응은 너무나도 놀라웠습니다"
(사진=EBS '까칠남녀' 방송 화면 갈무리)
여기 또다른 여성의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얼마 전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한 뒤 굉장히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목소리다.
"한 여성단체에 걸려온 전화 한 통. 수화기 너머 여성의 목소리는 무척 떨리고 있었습니다. 30대 초반인 직장인 A씨. 그녀는 지난 5월 한 달 정도 만난 남성 B씨에게 그만 만나자고 이별을 통보합니다.
그런데 젠틀했던 B씨의 반응이 너무나도 놀라웠습니다. 이별 후 B씨가 매일 새벽 2, 3시까지 협박성 문자를 보내왔던 것입니다. '전화를 계속 받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나도 모른다' '다음주에 회사로 찾아가 사과를 받아야겠다' '기다려라!' 등등.
차라리 전화를 받고 대화를 해보라는 주변의 충고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A씨는 겁이 난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울리는 전화벨 소리. 받아야 할까요? 아니면 받지 말아야 할까요?"
이와 관련해 시사평론가 정영진 "(해당 여성이 상대 남성에게) '내가 지금 약해진 상태다. 그래서 당신의 이런 협박에 떨고 있다'는 것을 들키는 것은 안 좋은 것 같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일단 목소리 등에서 (그 두려움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전화는 안 받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사람이 했던 (협박성) 문자 메시지, 통화 내역을 모두 모아서, 하다 못해 내용 증명 같은 형식으로 이 사람에게 보내면서 '여기까지가 내가 참는 마지막인 것 같다' '다음은 경찰서에서 만나야 될 것 같으니 그렇게 알고 계시라'는 정도의 경고는 분명히 줘야 한다."
이에 봉만대는 "저는 거기에 반대인 것이, 계속 그렇게 자극해서 좋을 것은 없다고 본다"며 "어떤 식으로든 전화가 오더라도 조금 더 싸늘한, 감정이 식은 듯한 느낌으로 전화를 받아 주면서 지치게 만드는 기간을 가져가는 것이 어떨까라는 생각도 든다"고 반론을 폈다.
손희정은 "저는 정영진 씨처럼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고, 네가 한발짝만 더 오면 감옥에 처넣어 버리겠다'는 정도의 경고가 필요한 상태라고 생각한다"며 "'노'(NO)라는 의사를 분명하게 밝히고 '지금 네가 나를 침해하고 있고 이것은 범죄일 수 있다'는 점을 고지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정신이 드는 경우들이 있다"고 전했다.
작가 은하선은 "제가 그런 경험을 했었다"며 말을 이었다.
"제가 헤어지자고 했더니 정말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너와 너의 엄마에게 해코지를 하겠다'면서, 방송에서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했다. '그런 일을 하겠다'는 문자 메시지와 전화를 꾸준히 보내왔다. 그래서 제가 그것을 다 모아서 경찰서로 갔다. 사실 고소장을 넣을 수도 있지만, 부모님이 알게 될까봐 두렵기도 하고 걱정이 됐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경찰이 전화를 해서 '다신 그러지 마라'고 한 뒤로 싹 사라졌다."
그는 "이런 경우도 있지만, 정말로 그 사람을 건드려서 좋지 않은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자기 혼자서 풀려고 하기보다는 정말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는 것을 주변에 알리고, 관련 단체에도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당부했다.
손희정은 "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 등의 공간이 있으니, 인터넷으로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며 "이러한 일들이 생겼을 때는 혼자 말 못하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으니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좋다"고 부연했다.
이어 정영진은 "지금 당장 위험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외과수술적인 방법이라면, 공권력 개입을 적극적으로 했으면 좋겠다"며 "예를 들어 길거리에서 연인간의 말다툼이 조금 심해진다면 사람들이 신고를 하는 것이다. 혹은 경찰들이 인지했다면 두 사람을 떼놓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MC 박미선은 "우리가 그러한 일을 목격했을 때 '남의 일이다' '집안 일이다' 생각하지 마시고 도와줄 수 있는 우리의 손길도 필요하다. 정말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될 것 같다"며 "폭력이 사랑의 다른 모습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