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외부자들' 방송 화면 갈무리)
그간 편집 과정에서 빛이 바래 왔던 것일까. 지난 18일 밤 방송된 채널A '외부자들'에서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보인 면모는 송곳 같은 논리로 토론 상대를 무장해제시키는 진보논객으로서 그의 진면목을 새삼 확인시켰다.
이날 방송에서는 국정원 적폐청산 리스트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논두렁 시계 사건 조사'가 포함된 것을 두고, 진보논객 정봉주 전 의원·진중권 교수와 보수논객 전여옥 작가·안형환 전 의원 사이에 첨예한 대립 구도가 만들어졌다.
안 전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논두렁 시계 사건 조사가 벌어질 당시 정황을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2009년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을 당시에 언론 보도가 하나 나왔다. '노 전 대통령은 권양숙 여사가 자기 몰래 시계를 받아 보관하다가 박연차 전 회장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 시계 두 개를 모두 봉하마을 논두렁에 버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비싼 시계를 논두렁에 버린 이유에 대해서는 집에 가서 물어보겠다며 노 전 대통령이 답변을 피했다고 검찰은 밝혔다'라는 보도가 나갔다. 그러니까 검찰발 보도가 나간 것이다."
그는 "당시 많은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검찰이 노 전 대통령에게 망신을 주려고 언론에 흘린 것 아니냐고 의심을 했는데, 당시 수사 책임자였던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수부장은 '우리가 아니다. 그것을 흘린 것은 국정원이었다'고 이야기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정봉주 전 의원은 "시계를 받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그런 얘기를 노 전 대통령은 한 적이 없다. 아무 것도 확인된 바가 없는데, (당시 언론에서는) 시계를 받았다고 보도를 했다"며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수사를 받고 와서 이런 진술을 한 적이 없다라고 반박 성명을 낸다"고 전했다.
"(시계는) 박연차가 줬다고 증언만 한 것이다. 그러면 이 부분의 사실 관계를 확인해 줘야 하는데, 어쨌든 기사는 흘러 나간다. 그때 끝났으면 국정원 (자체 개혁) TF에 이 건이 안 들어간다. 그런데 2015년에 당시 이인규 중수부장이 언론과 또 인터뷰를 한다. '이것(2009년 고 노 전 대통령 수사 내용 일부를 과장해 언론에 흘린 것)은 국정원 주도로 이뤄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국정원 입장에서는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는 "정말 국정원 주도로 이뤄진 것인지, 아니면 검찰이 이렇게 저렇게 (수사 정보를) 흘리면서 국정원을 갖다놓은 것인지"라며 "논두렁 시계 사건 조사는 정치보복성 차원이 아니라, 이인규 당시 중수부장의 이 언론 인터뷰 때문에 하나의 아이템으로 들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 "국정원 적폐청산 리스트, 헌법 주권 모조리 침해당한 사건들"국정원의 논두렁 시계 사건 조사에 대해 보수논객 안형환 전 의원과 전여옥 작가는 '국론 분열'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며 의구심을 제기했다.
전 작가는 "(노 전 대통령 측이 명품시계를 받았는지) 진술을 가리는 것이 중요하냐, 아니면 (허위보도로) 왜곡을 했다고 여겨지는 논두렁 문제를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바로잡기가 중요하냐. 다 좋다"면서도 "그렇지만 우리 국민들이 먹고 살기도 힘든데다가 화합을 해야 하는데, (국민들이) 감을 잡고 아는 사실에 대해 국정원이 나서서 TF를 만들어야 되겠는가"라고 주장했다.
안 전 의원 역시 "(전 작가와) 비슷한 이야기인데, '시계를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라는 논란으로 가버린다. 벌써 제가 이렇게 얘기하니까 반발하시잖나.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도 '안 받았다'고 주장할 것"이라며 "국정원은 다른 의도로 시작했겠지만, 이 논란으로 가버릴 때 국가가 또 한 번 찢어진다"고 지적했다.
이를 들은 진중권 교수는 "그게 왜 국가가 찢어지는 일인지 모르겠다. 일단 국정원에서 잘못한 것들의 리스트이지 않나"라며 "지금 국정원을 개혁해야 한다. 국정원이 자체 TF를 만들어서 자기들이 잘못했던 것들을 스스로 밝히겠다는 것이지 않나"라고 반박했다.
이에 전 작가는 "국정원 안에서 조용히 할 수 있는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진 교수는 "그러니까 국정원 안에서 하기 위해 TF팀을 만든 것이잖나"라며 말을 이었다.
"또 하나는 국민들이 궁금해 하고 우리는 알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국정원 적폐청산 리스트에 포함된 사건들은) 우리네 헌법적인 주권들을 다 침해당한 사건들이다. '채동욱 혼외자 사건'도 검찰총장의 혼외자 사건 문제가 그 사람의 도덕성을 검증하기 위해 한 것이 아니라, 이 사람 물러나도록 하려 한 것이다. 왜 물러나게 했냐는 것이다. 국정원의 헌법 문란 사건을 수사하려는 것을 막으려고 했던 굉장히 중요한 사건들이다. 논두렁 사건 같은 경우도 초기 판단에 있어서 대중의 여론을 자극하는 데 굉장히 큰 역할을 했다. 나 같은 경우에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판단이 그 보도를 통해 확 바뀐 경험이 있다. 박연차 씨에게 받은 돈의 성격이라는 것이 관행처럼 받은 것이냐, 사법적인 뇌물이냐를 두고 여론이 분분할 때 언론을 한축으로 흐르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단순히 '논누렁'이나 말 자체의 문제가 아니었다."
◇ "자꾸 '국론분열'이라는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국론이라는 것은 없다"진 교수는 "만약 국정원에서 이런 일들을 했다면, 국민 여론을 호도하는 일들을 했다면 지금이라도 밝혀져야 되는 것이다. 진상은 밝혀야 한다. 그리고 사죄를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반해 전 작가는 재차 "이 문제는 국정원 자체 조사를 할 수 있는 절차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언론에 13개 리스트를 공개하고 TF팀을 만들었다는 것은 전국민의 관심사가 돼 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진 교수는 "국민이 알 권리가 있다. 간첩사건을 조작한 그들이 아직 거기(국정원)에 남아 있다면 어떻하겠나. 언론에 공표해야 우리의 알권리가 충족되는 것"이라고 맞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갈등이 격화되기도 했다. 발언권을 얻은 전 작가는 "이 문제(국정원 13개 리스트 조사)에 대해서는 언론도, 국민도, 문재인 정부도 얼마든지 조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13가지는 국정원 안에서 효율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며 "조사하는 것 다 좋다. 진실을 다 살피는 것 좋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보자"고 사회 갈등을 우려했다.
이후 토론 분위기가, '국정원의 정치화를 막기 위해 벌이는 이번 일이 또 다른 국정원의 정치화를 불러와 국론이 분열될 것'이라는 방향으로 흐르던 와중에, 진중권 교수는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냐고 하잖나. 이것으로 인해 자꾸 정치 보복이라고 하는데 보복 당할 사람이 구체적으로 누구냐"라며 논리를 펴갔다.
"여기서 처벌 받는 사람이 생긴다면 국정원에서 못된 짓했던 그 사람들이 아마 처벌 받을 것이다. 불편한 것은 국민들이 아니다. 자꾸 '국론분열'이라고 하는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국론이라는 것은 없다. 예컨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같은 명백한 사안에서도 2(탄핵 반대 세력)대 8로 갈리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분열은 언제든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무서워서 이것을 묻어두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지금까지 국정원에서 무엇을 했나. 정말 해야 할 일들을 안하고 이런 일들이나 했다. 그러다보니 북한에서 미사일 쐈는데도 몰랐다"며 "이 사안(안보)을 제대로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국정원이 쓸 데 없는 짓 못하고 자기 본연의 일을 할 수 있게끔 개혁해야 한다. 그 중심이 이것(국정원 적폐청산 TF)이라는 것이다. 국정원 혼자서 조용히 하면 좋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까지 그 사람들이 조용히 어떻게 해 왔냐라는 점"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