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한 대가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노동자라 일컫습니다. 우리네 절대 다수가 노동자인 셈이죠. 영화 한 편을 만들고자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영화계 수많은 종사자들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한국 영화산업은 국민 1인당 한 해에만 4편 이상의 영화를 볼 만큼 성장했습니다. 그 영화를 만들어내는 스태프들의 삶은 어떨까요. CBS노컷뉴스가 영화 노동자들의 일터를 들여다봤습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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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판에서 10년, 우리도 사람답게 일해야잖아요"② '돈줄'에 휘청휘청…'희생'으로 굴러가는 영화판<계속>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한국 영화시장에서 소위 '돈 되는 영화'에만 자본이 몰리는 투자 양극화가 극심해지면서, 영화 제작 현장이 극과 극 사이에서 휘청이고 있다. 일터로서 영화판의 노동 체질 개선이 더 이상 뒤로 미룰 수 없는 우선 과제로 떠오른 지금, 제작자와 투자자는 물론 감독·배우·스태프 등 영화산업 핵심 구성원들의 공존을 위한 해법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해 박스오피스 10위 안에 든 영화의 매출액 점유율 합계는 35.5%다. 영화 10편이 전체 매출액의 3분의 1 이상을 가져간 셈이다. 같은 방법으로 따졌을 때 2015년에는 38.4%, 2014년에는 37.9%, 2013년에는 35.9%로 최근 몇 년 사이 양극화가 고착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진위는 '2016년 한국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서 "지난해 극장 개봉한 한국영화 302편 중 투자 수익성 분석의 조사 대상이 되는 상업영화 82편의 평균 투자수익성은 8.8%를 기록했다"며 "이 가운데 고예산·광역개봉 영화는 높은 수익성을 보인 반면, 중저예산 영화의 제작편수와 수익률은 낮아져, 이들 영화 제작· 유통의 어려움이 심화됐다"고 분석했다.
영화계 한 인사는 "영화산업 독과점이 심하다보니 CJ나 롯데처럼 극장을 갖고 있지 않은 배급사들이 살아남기가 굉장히 어렵다"며 "흥행 10위 안에 드는 영화들이 전체 영화 제작 수익률의 90% 가까이를 가져가는 현실에서, 용감하고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웬만한 중소 규모 영화들은 투자를 받기가 더욱 어려워지는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최근 몇 년 새 20억, 30억 원의 제작비가 드는 중간 규모 영화보다는, 한 영화에서 볼 수 없을 것 같은 유명 배우들이 여럿 출연하는 멀티 캐스팅 대작이 다수 선보이는 현상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절대다수의 상영관을 점유한 채로 투자 수익을 확실히 거둬들일 수 있는 대작에 돈을 대는 경향이 강화된 까닭이다.
한 영화 투자사 관계자는 "작년, 재작년만 봐도 차라리 고예산 영화들의 투자 수익률이 좋았다. 양극화가 발생하는 것"이라며 "그러니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투자 편수를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확실한 영화에 투자를 하는 상황이 된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수익을 내야 하니까"라고 전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자사 입깁은 그 어느 때보다 세졌다는 것이 영화계의 중론이다. 투자사들이 확실한 수익을 거둬들일 수 있는 영화에 투자하는 식으로 보수화 하면서, 중소 규모 영화마저 무리하게 유명 배우들을 내세워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개런티로 인해 예산 압박을 받게 되는 처지에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스태프들에게 희생을 강권하는 구조가 빚어진다는 것이다.
영화 제작자 A씨는 "물론 잘 나가는 최상급 스태프들은 대작 영화에서 제대로 인건비를 받겠지만, 조건이 아쉬워도 일을 해 먹고 살아야 하는 대다수 스태프들은 상대적으로 매우 열악한 처우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제작자 B씨 역시 "감독이나 배우들은 대부분 계약을 하자마자 100% 개런티를 지급하는 데 반해 스태프들은 그렇지 못하다"며 "촬영 시작 전에 반을 주고, 마치면 나머지 반을 주는 식으로 합의하는 경우가 많다. 예산이 늘어나거나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스태프들은 임금을 못 받아가는 일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반대의 상황도 벌어진다. 흔히 말하는 대작 영화를 주로 만들어 온 제작자 C씨는 "투자사가 제 영화에 대해 경우에 없는,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며 "주변에서 제작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소리를 듣고 있다. 제 경우는 흔치않은 것이어서 일반화시키기 어렵다"고 전했다.
◇ "영화의 첫 관객은 스태프…그들의 권익 지켜주지 않고는 절대 흥행할 수 없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극소수 대작 영화를 중심으로 영화산업의 배급·상영 부문이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는 동안, 제작 현장에서는 투자 환경에 따라 구성원들의 자발적 '희생'을 전제로 작품을 만들어 온 측면이 있다.
영화 '부러진 화살'(2011)의 경우 5억 원에 만들어졌는데, 안성기 등 주연 배우들부터 막내 스태프까지 개런티를 낮추고 영화 지분을 몇 %씩 갖는 방식을 택했다. 수익이 생겼을 때 받을 수 있는 지분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둔 계약으로 합의를 이끌어낸 것이다.
영화 '카트'(2014)의 경우도 배우들이 자신들의 개런티를 낮추고 그 낮춘 개런티를 전체 예산에 투자하는 형식으로 제작비를 낮출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이익이 생겼을 때 전체에서 나눠 갖는 방향으로 합의를 본 것이다.
영화 제작자 D씨는 "투자자들의 입맛에는 맞지 않더라도 현 시점에서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영화를 내놓는 것 역시 영화인들의 책무"라며 "이러한 프로젝트를 실현시키기 위해 투자자들을 설득하고 배우·스태프들과 의기투합하는 과정에서 제작자는 조율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희생'의 최우선 순위에 놓일 수밖에 없는 스태프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영화계 내부에서 이미 널리 공유되고 있다.
제작자 E씨는 "영화계의 금언(金言) 가운데 '현장이 시끄럽고 문제됐는데도 흥행한 영화는 없다'는 말이 있다. 스태프들의 권익을 지켜주지 않고는 절대 흥행할 수 없다"며 "영화의 첫 관객은 스태프들이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자기 영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데 어떻게 관객을 설득하겠나"라고 강조했다.
모 투자사 관계자 역시 "한국 사회 노동자로서 영화 스태프들의 처우 개선은 이제 후퇴할 수 없는 당연한 일이 됐다"며 "투자사 입장에서도 그러한 문제의식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했다. 그것(영화 스태프 처우 개선)은 하나의 대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바탕을 둔 실천이 현장에서 이뤄지기 위해서는, 현재 영화 제작 환경의 합리성에 대해서도 면밀히 고민해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제작자는 "엄밀하게 말해 한국의 영화 제작 환경에서 제작자가 제작자 구실을 할 만큼의 권한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말을 이었다.
"투자자로부터는 예산 상승에 따른 압박을 받고 현장 스태프들의 요구사항은 올라가는데, 현장 진행과 창작 영역은 감독 중심으로 가게 돼 있다. 실제로 제작자가 현장을 조율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 한국의 제작자가 자기 인건비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영화 수익의 40%를 제작사가 가져가는 전제 아래 많은 부분에서 소외되는 측면이 있다. 할리우드의 경우 제작자가 감독·스태프 해고권 등의 막대한 권한을 지닌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제작자들이 예산과 현장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권한은 가져가야 한다고 본다."
그는 "스태프 처우 개선 등으로 제작비가 상승하면 투자사들은 보다 냉정하고 보수적인 잣대로 투자 여부를 판단하게 될 것"이라며 "이로 인해 영화 현장에서 감독과 제작자가 머리를 맞대고 어떠한 태도나 시스템의 변화를 추구할 것인지를 모색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결국 영화계 내부에서 투자자는 투자자대로, 제작자는 제작자대로 각자 역할과 의무를 명확히 하고 전문화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 영화계 인사는 "투자 쏠림 혹은 위축 현상은 결과적으로 영화산업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영화계 전체가 공생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논의가 요구된다"며 "이제는 투자자·제작자·감독·배우·스태프들 사이에서 보다 뚜렷한 소통에 대한 고민, 역할론에 대한 고민이 절실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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