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인천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이란 하메드 하다디의 슛 시도를 바라보는 한국 남자농구 대표팀 선수들 (사진 제공=KBL)
2017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컵 4강에 진출한 한국 남자농구 대표팀의 다음 상대는 아시아에서 독보적인 센터로 군림하는 하메드 하다디가 이끄는 이란이다.
미국프로농구(NBA) 출신으로 신장 218cm의 장신 센터 하메드 하다디는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이름을 알렸고 이후 아시아 무대를 평정해온 선수다. 한국에게도 하다디의 벽은 높았다. 최근 국제대회에서 이란과 만날 때마다 하다디를 막지 못해 패한 경우가 많았다.
◇하메드 하다디의 최근 한국전 성적 (괄호 안은 한국 대표팀의 승패)
2013년 아시아선수권 예선(패) : 30점 13리바운드
2014년 아시안게임 결승전(승) : 14점 6리바운드
2015년 아시아선수권 8강전(패) : 18점 14리바운드
2016년 아시아챌린지 예선(패) : 29점 10리바운드
2016년 아시아챌린지 결승전(패) : 20점 23리바운드
하다디를 잘 봉쇄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결승전을 제외하면 하다디를 막지 못해 진 경기가 대부분이었다. 아시안게임 결승전은 2005년 카타르 도하 아시아선수권 대회 8강전 이후 한국이 이란을 처음으로 꺾은 경기였다.
하다디는 올해 아시아컵에서 평균 18.0점, 11.0리바운드 7.0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어시스트 숫자다. 이번 대회에서만 유독 높은 것은 아니다. 하다디는 골밑에서 자신에게 수비수가 몰렸을 때 외곽으로 내주는 패스 능력이 좋고 하이포스트에서도 골밑을 파고드는 선수나 외곽에 버이었는 선수를 잘 발견하는 선수다.
또 하다디는 골밑에서 공을 잡고 상대 수비수를 등진 상태에서만 공격을 잘하는 선수가 아니다. 크고 느리지만 순발력이 있어 골밑에서 움직임을 통해 공격 기회를 잘 포착해내기도 한다. 그가 림 근처에서 공격리바운드를 잡을 경우 수비는 실점을 각오해야 한다.
이란전 성패는 하다디 수비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재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으로서는 센터 이종현이 발 뒤꿈치 부상으로 이란전 출전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것이 악재다. 하다디와 같은 정상급 센터를 상대할 때에는 빅맨 1명의 존재가 아쉽기만 하다. 이종현은 2014년 농구 월드컵 무대에서 블록슛 부문 1위를 차지하는 등 223cm의 양팔 길이(윙스팬)를 앞세워 대표팀 내에서 독보적인 높이를 자랑하는 선수다.
이종현은 발 뒤꿈치 통증 때문에 필리핀과의 8강전에 결장했다.
이종현이 이란전 결장이 유력한 가운데 이승현의 어깨가 무겁다.
이승현은 하다디보다 약 20cm가 작다. 하지만 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승현은 지난 2015년 아시아선수권 대회 8강전에서 압도적인 힘을 앞세워 하다디를 상대로 인상깊은 수비를 펼친 바 있다.
이승현은 힘을 이용해 하다디를 최대한 골밑 밖으로 밀어냈다. 하다디가 동료의 날카로운 골밑 침투 패스를 받아 득점을 올린 장면은 많았지만 이승현을 상대로 1대1 득점을 올린 장면은 거의 없었다. 이승현은 하다디가 1대1 공격 도중 왼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순간 정확한 예측 수비로 길목을 차단해 슛 실패를 유도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경기에서 이승현은 발목을 다쳤다. 이란은 2쿼터 중반 이승현이 다치자마자 벤치에서 쉬고 있던 하다디를 투입해 승기를 잡았다. 결국 한국은 13점차로 졌다.
이승현은 고양 오리온 소속으로 KBL 프로농구에서 뛸 때 외국인선수를 도움수비 없이 막을 때가 많았다. 2015-2016시즌 KBL 결승에서는 전주 KCC의 국내 최장신(221cm) 센터 하승진을 상대로 인상적인 수비를 펼치기도 했다.
당시 이승현은 "이란의 하다디 선수를 막으면서 어떻게 하면 키 큰 선수들을 잘 막을 수 있고 못 밀고 들어오게 할지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다. (하)승진이 형을 막는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대표팀 빅맨 가운데 신장은 김종규가 206cm로 가장 크다. 하지만 김종규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하다디의 전담 수비수로는 적합하지 않다. 신장은 200cm이지만 파워가 강한 오세근 그리고 하다디를 막아본 경험이 있는 이승현의 역할이 중요하다.
맨투맨(man-to-man), 대인방어를 시도할 때는 그렇다. 한국은 이란전에서 3-2 형태의 지역방어를 자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대표팀이 대회 내내 활용해 효과를 보고 있는 수비다.
지역방어의 활용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종현의 부상으로 대표팀 빅맨 자원이 부족해졌고 또 하다디를 1대1로 막기에는 분명 어렵기 때문이다.
대표팀은 드롭존(dropzone) 수비를 펼치고 있다. 3-2 형태에서 앞선 가운데에 서는 선수는 신장 200m의 포워드 최준용이다. 그는 높이와 스피드를 모두 갖춘 선수다.
앞선에서 키 큰 선수가 상대 수비를 견제하면 골밑으로 가는 패스 길을 막을 수 있다. 만약 이란이 외곽 45도 지역에서 골밑 패스를 노릴 때에는 최준용이 하이포스트 혹은 골밑까지 내려가 하다디를 포함한 상대 빅맨을 미리 견제할 수 있다.
이 경우 외곽 수비에 구멍이 뚫릴 수 있다. 최준용의 스피드가 중요한 이유다. 드롭존 수비에서는 최준용 위치에 서는 선수의 빠른 기동력과 판단력이 핵심이다. 언제 골밑으로 내려갈지, 어느 타이밍에 다시 올라올지 등을 빠르게 결정하고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과거 3-2 드롭존의 대표주자 원주 동부는 김주성, 윤호영 등 발 빠르고 수비 이해도가 뛰어난 선수들을 앞선 중앙에 배치해 '동부산성'의 위엄을 뽐냈다.
3-2 지역방어에도 약점은 있다. 뒷선 2명은 골밑에서 움직이는 하다디를 견제하기 위해 미리 붙을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베이스라인 구석이 비게 된다. 그쪽으로 패스가 빠르게 전달되면 오픈 기회가 생긴다. 결국 5명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빈 공간을 막아내느냐가 수비의 관건이다.
하다디는 공격뿐만 아니라 수비에서도 상당한 존재감을 자랑한다. 이번 대회에서 평균 1.8개의 블록슛을 기록했다.
대표팀은 김선형을 주축으로 하는 가드진의 돌파 그리고 수비를 위해 따라나오는 상대 센터의 뒷 공간을 파고드는 김종규 등 빅맨진의 움직임을 통한 득점을 많이 올렸다. 여기서 상대 수비가 흔들리면 외곽 기회도 많이 생겼다.
하다디는 한국의 중요한 공격 방식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은 선수다. 하다디가 골밑에 정박하면 대표팀 빅맨들이 이전보다 과감하게 중거리슛을 던질 필요가 있어보인다. 또 하다디가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골밑 돌파를 자제했다가는 이란은 어렵지 않게 외곽 수비에 '올인'할 것이다. 가드진에게도 빠르고 정확한 판단력이 요구되는 경기다. 이래저래 쉽지 않은 상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