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라디오스타' 방송 화면 갈무리)
작가 겸 방송인 유병재는 스스로 주류와 거리를 두려는 듯한 인상을 준다. 커다란 흐름에 휩쓸리지 않은 채, 작가로서 방송인으로서 자기가 추구하는 색깔을 지켜 가려는 의지.
그는 특별한 고정 프로그램을 갖지 못한 탓에 방송에서 얼굴을 보기 힘들 때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았다. SNS에서 한국 사회를 향한 촌철살인 풍자 글과 영상 등을 꾸준히 올리면서 누리꾼들의 지지를 얻어 온 덕이다.
결국 주류에 편승하고픈 욕구를 스스로 덜어냄으로써, 그러니까 그만큼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을 줄인 상태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풍자 개그를 시도할 여력을 갖게 된 셈이다.
유병재의 이러한 저력은 최근 성황리에 막을 내린 코미디쇼 '블랙코미디'에서 단적으로 확인됐다. 지난 23일 밤 전파를 탄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특별 MC로 나선 그의 면모에서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이날 방송에서 접한 유병재의 몇몇 발언은, 국민의 신뢰를 잃은 현재 MBC의 처지를 떠올리게 만들어 웃음 뒤에 씁쓸함을 더했다.
유병재는 이날 방송 초반 MC들로부터 '블랙코미디의 1인자'라고 소개된 된 데 대해 손사래를 치면서 몹시 쑥스러워했다. 하지만 "(소속사) YG 상대로 블랙코미디를 해보라"는 MC 김구라의 요구에는, 주먹을 불끈 쥔 채 단호하고 열의 가득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직시하면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이제 진짜로, 원래 제가 세상을 조금 깠다면, 요즘 세상이 조금 좋아져서 회사를 까려 한다. 깔 것이 많은 회사다."
◇ "다시는 오고 싶지 않다…TV에서 11번도 지울 것"
(사진='라디오스타' 방송 화면 갈무리)
이날 초대 손님으로 나온 가수 겸 방송인 탁재훈을 두고 MC들은, 복귀 뒤 본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빌빌거리고 있다'('라스' 작가의 표현)는 주변의 걱정을 전했다.
탁재훈은 "복귀해서 1년 4개월 정도는 정말 다 해보려고 이것저것 많이 했었다"라며 "쉬었다 달리고, 또 쉬었다 달리고 하는 것이 인생의 그래프 아니겠나. 넘어져 본 놈이 금방 일어날 수 있으니까"라고 말했는데, 김구라는 "블랙코미디의 장인, 우리 유병재 씨가 봤을 때 탁재훈 씨 요즘 어떤가"라고 물었다.
이에 유병재는 "사실 얼마 전에 (탁재훈 씨가) 'S'(신정환)라는 분 (복귀방송) 도와주신다는 얘기 듣고서 '도와주실 여력이 되시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차근차근 할 말 다 하는 모습으로 폭소를 유발했다.
"유병재 씨는 탁재훈 씨랑 방송할 생각 있나?"라는 MC 윤종신의 물음에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생각 전혀 없다"고 답했다. "이유를 듣고 싶다"는 탁재훈의 요청에 그는 "제가 정확히 실명까지는 못 밝혀도… 저도 이렇게 듣는 (안 좋은) 소문들이 너무 많아서… 저도 (방송을) 편하게 하고 싶다"라며 다시 한 번 자기 생각을 분명히 전했다.
백미는 방송 말미 특별 MC로 나선 데 대한 소감에서 나왔다. 소감을 묻는 MC들의 말에 유병재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 관자놀이를 누르면서 아래와 같이 전했다.
"사실 오늘 오기 전에 걱정을 좀 많이 했다. 왜냐하면 이 자리(특별 MC) 자체가 (출연이) 보장되는 자리가 아니어서, (녹화가) 다 끝났을 때 '내가 되게 하고 싶은데 안 불러주시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을 되게 많이 했다. 조금 다행인 것이 불러주실 것 같지도 않고, 저도 별로 앞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든다.)"
유병재는 이날 방송 녹화 내내 옆자리에서 자신의 어깨 등을 치면서 질문을 독촉한 MC 김구라에 대한 소감을 묻는 말에 "소감 끝났어요, 끝났어!"라고 진저리를 치면서 "소감 끝났고요. 다시는 오고 싶지 않다. (TV에서) 11번도 지울 것"이라고 버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