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 충격 그리고 다시 찾아온 감격.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불펜투수 아치 브래들리가 팀의 운명이 걸린 포스트시즌 무대에서 혼자 드라마를 찍었다. 시시각각 변한 브래들리의 표정은 치열했던 승부의 흐름을 그대로 보여줬다.
5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체이스필드에서 열린 애리조나와 콜로라도 로키스의 2017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와일드카드 결정전.
6-0으로 앞서가다 6-5로 쫓긴 애리조나는 7회말 2사 1,2루 기회를 잡았다. 내셔널리그 규정에 따라 투수가 타석에 들어설 차례였다. 애리조나의 투수는 브래들리였다.
1점차 득점권 기회였기 때문에 대타를 기용할만한 했다. 애리조나는 브래들리를 바꾸지 않았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올시즌 3승3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1.73을 기록한 브래들리는 사실상 애리조나의 불펜 에이스다. 39세이브를 기록한 마무리 페르난도 로드니가 뒤에 있긴 했다. 하지만 대타 기용 후 다음 이닝인 8회초에 마무리 투수를 올리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로드니는 시즌 내내 불안했다. 시즌 평균자책점도 마무리로서는 비교적 높은 4.23이다. 게다가 8회초에는 놀란 아레나도를 비롯한 콜로라도의 중심타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애리조나는 브래들리를 뺄 수 없었다.
대반전이 펼쳐졌다. 브래들리가 콜로라도의 정상급 불펜투수 팻 네섹을 상대로 좌중간을 깨끗하게 가르는 2타점 3루타를 때린 것이다.
브래들리는 메이저리그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포스트시즌 역사상 불펜투수가 타석에서 3루타를 때린 것은 브래들리가 처음이다.
불펜투수가 포스트시즌에서 결정적인 안타를 때린 사례를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승부처에서 투수 타석이 오면 대부분 대타가 나오기 때문이다. 애리조나는 사실상 득점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8회초 콜로라도 중심타자들과의 승부를 중요하게 여겼다.
브래들리는 3루타를 때리고 마치 올림픽에서 금메달이라도 딴듯한 표정과 세리머니를 펼쳤다. 3루쪽 애리조나 덕아웃은 축제 마당으로 변했다. 애리조나는 8-5로 앞서갔고 그대로 승부가 기우는듯 보였다.
또 한번 반전이 펼쳐졌다.
3루까지 전력 질주한 여파일까. 브래들리는 8회초 숨을 헐떡이는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기면 디비전시리즈로 가지만 패하면 시즌이 끝나는 경기에서 콜로라도는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브래들리는 1사 후 아레나도와 트레버 스토리에게 연속 솔로홈런을 얻어맞았다. 스코어는 순식간에 8-7로 변했다. 계속된 2사에서 대타 팻 발라이카에게 2루타를 맞았다. 추가 실점을 없었지만 브래들리의 얼굴에서 웃음은 완전히 사라졌다.
로드니의 과거를 감안하면 1점차 리드는 애리조나에게 불안했다. 브래들리는 초조한 표정으로 경기를 바라봤다.
애리조나 타자들이 브래들리의 표정을 바꿔놓았다. 애리조나는 8회말 안타 4개를 몰아쳐 3점을 추가, 11-7로 앞서갔다. 콜로라도는 마무리 투수 그렉 홀랜드를 마운드에 올렸지만 애리조나 타선의 폭발을 막지 못했다.
8-7에서 A.J 폴락의 2타점 쐐기 3루타가 터지자 브래들리는 마치 세상을 다 가진듯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기뻐했다.
아니나 다를까 로드니는 9회초 1점을 내줬다. 추가 실점은 없었다. 결국 애리조나가 콜로라도를 11-8로 누르고 와일드카드 결정전 단판승부에서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내셔널리그 승률 1위 LA 다저스와 디비전시리즈에서 맞붙을 자격을 손에 넣었다.
브래들리는 하루동안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기록은 화려하다. 마운드에서는 1⅓이닝 3피안타 2탈삼진 2실점을 올렸고 타석에서는 1타수 1안타 2타점을 기록했다. 브래들리가 기록한 '2타점, 2실점'은 치열했던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상징하는 숫자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