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택 이후 14년 10개월 만에 ATP(남자프로테니스) 투어 정상에 오른 한국 남자 테니스의 간판 정현(21·세계랭킹 54위)이 13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황진환기자
'한국 테니스의 간판' 정현(21 · 삼성증권 후원)이 금의환향했다. 한국 테니스에 14년 만의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정현은 13일 인천공항을 통해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귀국했다. 전날 ATP 넥스트 제너레이션 파이널스에서 우승한 정현은 곽용운 대한테니스협회장의 꽃다발 등 가족, 팬들의 환호 속에 입국장을 빠져 나왔다.
한국 선수가 ATP 투어 정상에 오른 것은 14년 만이다. 2003년 1월 이형택(41)이 아디다스 인터내셔널 우승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이와 함께 정현은 최연소 우승 기록도 세웠다. 2003년 당시 이형택은 만 28살이었다.
2017년을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정현은 투어 대회 우승 1회, 4강 1회의 성적을 냈고, 메이저 대회에서는 프랑스오픈 3회전(32강)까지 올랐다. 시즌 성적은 29승19패, 상금은 104만 511 달러(약 11억6000만 원)을 찍었다.
입국 뒤 인터뷰에서 정현은 "우승이 실감이 나느냐"는 질문에 "취재진과 팬들을 보니 이제야 실감이 좀 나는 것 같다"고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이렇게 많은 취재진이 몰린 것은 윔블던 주니어대회 준우승(2013년) 이후 처음"이라면서 벅찬 소감을 밝혔다.
당시보다 더한 인기를 실감했다. 정현은 "환영 인파와 취재진의 관심을 보니 이래서 선수들이 '우승을 하고 싶다'고 하는 것 같다"며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4년 전 윔블던 대회에서도 많은 취재진이 왔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었다"고 미소를 지었다.
이형택 이후 14년 10개월 만에 ATP(남자프로테니스) 투어 정상에 오른 한국 남자 테니스의 간판 정현(21·세계랭킹 54위)이 13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황진환기자
넥스트 제너레이션은 랭킹 포인트가 걸린 대회는 아니다. 그러나 21세 이하 유망주들 중 상위 랭커 8명이 출전한 엄연한 ATP 대회다. 전 세계 테니스 유망주들과 경쟁에서 정현은 5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정현은 "선수들이 이 대회 출전 자격을 얻기 위해 1년 동안 열심히 노력했다"면서 "출전 선수 중에는 이미 투어 우승을 한 적이 있는 경쟁력 있는 상대들도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승을 해서 정말 좋았다"면서 "이 대회 우승을 통해 많은 경험을 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우승으로 정현은 테니스의 김연아, 박태환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다. 상대적으로 비인기 종목인 테니스의 위상을 높일 재목으로 꼽힌다는 것이다. 본인도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정현은 "그런 선수들과 비교를 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라면서 "아직 테니스가 비인기 종목이지만 모든 선수들이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몇 년 뒤에는 수영이나 피겨처럼 인기 종목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올 시즌 스스로 매긴 점수는 다소 박하다. 정현은 "올해 내가 매긴 점수는 80점"이라면서 "부상으로 몇 달 쉬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올해와 같은 성적으로 부상 없이 투어를 치른다면 내년에는 100점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목표도 정했다. 정현은 "투어 우승, 랭킹 20위, 메이저 16강 같은 목표가 있나"라는 질문에 "이제 시즌이 끝나 구체적으로 생각하진 않았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이형택의 남자 선수 최고 랭킹인 36위를 넘어서고 메이저 대회 우승까지 주위 기대가 크다"는 말에 "내년에 깰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언젠가는 깰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조금씩 가까워져 가는 느낌이고, 메이저 우승과 같은 큰 그림도 아직은 이르지만 조금씩 그려 나갈 것"이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인터뷰 이후 정현은 공항에 있던 팬들과 일일이 사진을 찍어주며 우승의 기쁨과 유명세를 만끽했다. 정현은 "이래서 선수들이 우승을 하고 싶어한다"고 거듭 만면에 웃음을 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