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역배우 허율 양이 18일 오후 서울 논현동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tvN 수목드라마 ‘마더’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각오를 밝히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노파심일 수도 있겠다. 아동 학대 문제를 다루는 만큼, 아역 배우들의 비중이 클 수밖에 없는 드라마 '마더'의 촬영 현장에서 그들이 고통 받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말이다.
18일 오후 서울 논현동에 있는 한 호텔에서 열린 '마더' 제작발표회에는 연출자 김철규 감독, 극본을 쓴 정서경 작가와 배우 이보영·이혜영·고성희 씨가 참석해 드라마 이야기를 공유했다.
최근 tvN 드라마 '화유기' 사태 등으로 널리 알려졌다시피, 한국 드라마 촬영 현장의 노동 조건은 몹시도 열악하다.
이날 제작보고회가 시작되기 에 앞서, 극중 학대 받는 여덟 살 아이 혜나 역을 맡은 아역 배우 허율 양이 이보영 씨와 함께 잠시 무대에 올랐다.
이 씨는 "보통 드라마, 영화 촬영을 할 때 어른처럼 현장에서 힘든 것을 견디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아역 배우들과 찍을 때 굉장히 힘들다"며 "사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런 적 없이 의연하고 꿋꿋하게 하고 있어 대견하다"고 말했다.
앞서 배우 허정도 씨는 지난 5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열악한 드라마 촬영장에 관한 고발과 성찰을 담은 글을 통해 현장에서 보호 받지 못하는 아역 배우들의 실상을 전했다.
그는 "저는 정확히 두 번 보았습니다. 몇 겹을 껴입은 어른들도 덜덜 떨던 혹한의 야외촬영 날, 보조출연자로 나온 어린 소녀가 추위를 참지 못해 울고 있는 모습을"이라며 글을 이었다.
"첫 번째 아이는 그나마 운이 좋아 열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열외 사유는 '아이가 힘드니까'가 아니라 '울면 안 되는 장면에서 우니까 튄다'였습니다. 반면, 울어도 되는 장면에서 울었던 그 지질이도 운 나쁜 아이는 긴 시간 동안 연기가 아닌 진짜 눈물을 흘려야했습니다."
이어 "나는 왜 그 아이를 보고만 있었을까. 아이가 울고 있다고, 촬영을 잠시 멈추고 이 아이가 몸을 좀 녹일 수 있게 해주자고, 왜 그 한마디를 못했을까"라며 "과연 우리가 하는 일이 울고 있는 아이의 눈물을 멈추게 하는 것보다 그리도 중요하고 대단한 일이었을까"라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만약 그 아이가 감독의 아이였다면, 혹은 지체 높으신 누군가의 딸이었다면 우린 그 아일 그렇게 사시나무 떨 듯 떨게 놔두었을까. 이루 말할 수 없이 부끄럽고 또 미안했습니다. 한동안 저를 무기력하게 만든, 마음 속 깊은 상처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이 모든 아픔들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도 침묵했다는 것."
다행히도 '마더' 현장에 대해 이보영 씨는 "솔직히 대본을 처음 봤을 때 혜나 역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다. 저 역시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몰라도 되는 세상까지 알게 되는 것에서 충격이나 상처를 받지 않을까라는 마음에, 어떻게 설명하고 촬영해야 하나라는 걱정을 많이 했다"며 "제작진은 (허율 양이) 학대 받는 장면을 찍은 날에는 심리 상담을 통해 '연기와 너는 분리된 것'이라는 이야기를 계속 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허정도 씨의 지적처럼, 아역 배우들은 힘든데도 불구하고 힘들다고 말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제작진과 출연진이 특별히 염두에 두고 챙겼을 때, 이 드라마가 전하려는 메시지 역시 시청자들에게 더욱 깊숙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