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X
올해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열린 MWC 2018은 몇가지 점에서 흥미로운 행사였다. 주요 모바일 제조사들이 '혁신' 보다는 '안정'을 택하면서 볼거리가 크게 줄었고, 기술적인 측면에서 서로 비슷한 기능을 모방하거나 평준화된 수준을 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의 갤럭시S9을 필두로 한 안드로이드 진영에서는 혁신적인 변화가 있다고 할 만한 신제품이 나오지 않아 모바일 기술 평준화와 높아지는 가격 부담, 프리미엄 스마트폰 성능의 향상으로 교체 주기가 길어지면서 제조사들이 숨고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MWC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삼성의 갤럭시S9은 뛰어난 카메라 성능을 앞세웠지만 전작인 S8과 별다른 차이점을 체감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대신 아이폰X에서 선보인 3D '애니모지' 기능과 흡사한 'AR 이모지'를 선보였지만 2D 이미지를 3D로 변환하는 수준인데다 정교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슈퍼 슬로우 모션 기능은 아이폰7에서 먼저 지원한 슬로우 모션보다 뛰어나지만 지난해 소니가 엑스페리아 XZ 프리미엄을 통해 이미 선보인 기능이다. 갤럭시S9은 HD 해상도(720p) 960fps를 지원하는 반면 소니가 새롭게 공개한 엑스페리아 XZ 2에서는 더 향상된 풀HD(1020p) 960fps를 지원한다. 3D 스캐닝도 가능하다.
전반적인 스마트폰 사양은 갤럭시S9이 한 수 위라는 평가지만 일부 베젤리스 디자인과 플렉서블 엣지, OLED 디스플레이를 제외하면 최근 스마트폰 간 기술·성능 격차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그런 가운데 안드로이드 진영에서 대놓고 아이폰X 모방하기가 한창이다.
아이폰X은 지난해 11월 출시된 애플의 아이폰 출시 10주년 기념작으로 물리 홈버튼 제거, 최초 5.8인치 OLED 슈퍼 레티나 디스플레이 적용, 3D 얼굴인식이 가능한 트루뎁스 카메라 시스템을 이용한 얼굴 생체인식이 페이스 ID 도입, 증강현실(AR)을 지원하는 신경 엔진을 내장해 최강의 프로세서 성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A11 바이오닉 칩을 탑재했다.
역대 아이폰 중 가장 큰 기술적 진화와 함께 상단 트루뎁스 카메라가 위치한 'M자형' 노치(Notch)' 디자인을 제외하면 베젤이 거의 없는 풀 스크린 스마트폰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1000달러를 훌쩍 넘는 비싼 가격과 '탈모폰'이라는 비아냥이 이어지면서 노치 디자인에 대한 호불호도 엇갈렸다.
올해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아이폰X의 노치 디자인을 안드로이드 진영에서 적극 베끼고 있다는 점이다.
화웨이가 V10 발표 현장에서 애플 트루뎁스 카메라 시스템을 모방한 카메라 시스템을 공개하고 있다. 아래는 애플 노치 디자인을 닮은 P20 모델
애플·삼성과 함께 세계 3대 스마트폰 회사로 급부상한 중국 화웨이는 지난해 11월 아이폰X 출시 이후 '아너 V10' 패블릿폰 공개행사에서 애플의 트루뎁스 카메라 시스템을 모방한 노치 디자인의 스마트폰을 개발하고 있다고 깜짝 공개했다. 여기에 '애니모지'와 흡사한 3D 이모티콘까지 공개해 대놓고 아이폰X을 베꼈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최근에는 IT 유명 블로거인 에반 블래스가 공개한 화웨이 P20 유출 이미지에 노치 디자인이 적용된 것으로 확인돼 눈길을 끌었다. P20은 27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대규모 신제품 공개행사에 등장할 예정이다.
동유럽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크로아티 기반의 노아 모바일(Noa Mobile)도 MWC에 노치 디자인을 채택한 스마트폰을 공개해 주목을 끌었다. 6.18인치 AOU LCD가 적용된 노아 N10은 하단 베젤을 제외하면 흡사 아이폰X을 닮았다.
IT 매체 더버지는 "아이폰X의 노치는 기술적 측면에서 페이스 ID 기술을 수용하기 위해 적용됐지만 노아 N10의 노치는 최신형 아이폰을 가지고 있는 듯한 착각을 제공하는 식별 기호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노치 디자인이 적용된 노아 N10, 화웨이 원프러스6, 우레폰의 우레폰 X
대만 아수스는 신형 젠폰5(Zenfone 5) 및 젠폰5Z(Zenfone 5Z)를 공개한 자리에서 "과일(Fruit: 애플)보다 우리의 노치가 26% 더 작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단순히 디자인으로만 적용한 노치를 더 작게 만들었다고 기술적으로 더 뛰어난 것처럼 홍보한 것은 문제가 있다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 외에도 우레폰(Ulefone)이 우레폰 X와 우레폰 T2 Pro에 노치 디자인을 적용했고, 중국 휴대폰 업체 아우키텔(Oukitel)과 리구(Leagoo)도 흡사한 노치 디자인을 내놨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이 미미한 이들 업체 외에도 중국 최대 스마트폰 제조사 중 하나인 원플러스(OnePlus)도 MWC에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최근 온라인을 통해 신제품 원프러스 6(OnePlus 6)로 알려진 노치 디자인의 신형 폰이 공개돼 구설수에 올랐다.
올해 MWC 공개를 미룬 LG전자의 G7도 노치 디자인을 적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스라엘 매체 와이넷은 지난 달 28일(현지시간) LG전자가 MWC 비공개 부스를 통해 선보였다며 G7(Neo) 실물 이미지와 상세 스펙을 보도했다.
이들 제품의 특징은 제조사와 상관 없이 디자인은 대동소이하다는 점이다. 상단과 좌우는 아이폰X의 베젤리스 디자인을 꼭 닮았지만 하단에 약간의 베젤이 돌출되어 있다. 후면에는 세로형 듀얼 렌즈 카메라를 적용했다. 하지만 3D 얼굴인식 기능은 없다.
아수스 젠폰5, LG전자의 G7(네오) 추정 제품
MWC 현장에서 일부 안드로이드 노치 스마트폰을 접한 사용자들은 안드로이드 OS에 최적화 되지 않아 일부 잘리거나 오류가 생기는 현상이 있었다고 전했다.
포브스는 "애플의 노치와 흡사한 디자인을 도입하려는 안드로이드 제조사들이 늘고 있기 때문에 구글이 차세대 안드로이드 OS인 '안드로이드 P'를 설계하면서 화면 디스플레이를 조정 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더버지는 "노치가 없는 삼성과 노키아(HMD 글로벌), 소니의 스마트폰은 수년 간 자체적으로 디자인을 개발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경주해왔지만 일부 안드로이드 제조사들은 단순히 더 많은 제품을 팔기 위해 경쟁적으로 디자인을 베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전문가들과 기술 커뮤니티 활동가들도 "애플의 노치 디자인에는 기술과 디자인 철학이 담겨 있지만 이들 업체들은 기술도 없이 유행을 베끼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며 "용납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